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삯바느질로 모은 돈으로 세운 제천여성도서관…남성 출입 논란 가열

중앙일보

입력

인권위 권고, 지난 1일 남성 출입 허용  
충북 제천여성도서관 남성 출입 허용을 둘러싸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제천여성도서관. 최근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에 따라 남성 출입을 허용했다. 연합뉴스

제천여성도서관. 최근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에 따라 남성 출입을 허용했다. 연합뉴스

14일 제천시에 따르면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에 따라 제천여성도서관은 지난 1일부터 남성에게 2층 자료열람실 출입을 허용했다. 남성도 이곳에서 책을 읽거나 빌릴 수 있다. 이 도서관이 ‘금남의 벽’을 허문 것은 1994년 문을 연 지 27년 만이다.

하지만 책을 대출한 남성은 지금까지 14명으로, 하루 1명 꼴이다. 반면 여성은 하루 최다 300명이 찾는다. 도서관 관계자는 “점차 남성 이용자가 차츰 늘 것”으로 예상했다.

제천시가 인권위 권고를 받은 것은 지난해 11월이다. 인권위는 지난해 7월 "공공도서관이 여성 전용으로 운영되는 것은 차별"이라는 취지의 진정이 접수되자 실태조사를 했다. 이어 "남성 이용자가 완전히 배제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하라"고 권고했다. 당시 인권위는 여성도서관이 행정력과 공적 자원으로 운영되는 공공시설임에도 합리적 이유 없이 남성의 이용을 배제한다고 판단했다.

인권위 권고는 2011년에도 있었다. 이에 제천시는 2012년 12월 도서관 1층을 남성도 이용할 수 있는 북카페로 단장했다. 시는 공부방 기능을 하는 3층 행복열람실(84석)은 종전대로 여성만 이용하도록 하고 있다.

제천여성도서관 입구에 세운 준공표지석. 연합뉴스

제천여성도서관 입구에 세운 준공표지석. 연합뉴스

삭바느질로 돈 모은 할머니 기부로 만들어
전국 유일의 여성전용 도서관에 남성 출입이 허용되자 오히려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이번 결정은 여성도서관 부지 제공자의 뜻에 어긋나고, 여성도서관은 성차별과 전혀 관계없다는 주장 등도 나온다.

제천시 장락동에 있는 이 도서관은 삯바느질과 가축 사육 등으로 돈을 모은 김학임 할머니가 여성들이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달라며 1991년 기부한 땅(당시 13억원 상당)에 제천시가 8억원을 보태 1994년 개관했다. 도서관은 344㎡의 터에 지상 3층(965㎡)규모로 지었으며, 보유한 책은 5만8000권이다. 김 할머니는 1997년 75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A씨는 제천시 홈페이지에 '개인의 뜻으로 지은 여성도서관이 무슨 남성차별입니까'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여전히 여성들은 많은 차별과 희롱의 위협 속에 사는데 남성들이 그곳에서 책을 못 빌리는 게 큰일이냐. 여성 전용으로 온전히 돌려달라"고 했다.

"본래 취지 살려야"지적도 
제천시 홈페이지에는 애초 건립 취지대로 여성도서관을 운영하라는 항의 글이 9건 올라와 있다. 인권위 홈페이지 자유토론방에도 이번 결정을 비판하는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제천여성도서관 열람실 내부. 연합뉴스

제천여성도서관 열람실 내부. 연합뉴스

박모씨는 "제천여성도서관은 과거 한국 여성이 교육에서 배제된 삶을 살아왔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차별을 겪었던 여성의 삶을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여성전용'으로 남겨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인권위는 김학임 선생님의 뜻을 가벼이 여긴 것을 사과하고, 여성전용이 성차별이 아니라고 외치는 사람 의견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제천여성도서관 남성 도서 서비스 중단·폐지를 요구합니다'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글은 현재 4만2000여명이 동의했다.

제천시는 "여성 학습공간을 위해 재산을 기부한 김학임 여사님의 뜻은 지키되 시대 변화에 맞춰 모든 시민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볼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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