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끼리 싸움, 거길 왜 끼나"…대선 리스크 된 '이준석 입'

중앙일보

입력 2021.07.14 05:00

업데이트 2021.07.14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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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정부와 여당이 서로 떠넘기던 불씨를 이준석 대표가 덜컥 받아와 당 전체에 옮겨 붙였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13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당내 상황에 대해 이렇게 토로했다. 이 대표가 전날(12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만찬 회동 뒤 합의안에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담았다가 당 안팎의 반발에 직면한 것을 두고서다. 당시 이 대표는 당 대변인을 통해 전 국민 지급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가, “남는 재원이 있을 시 지급 대상을 소득 하위 80%에서 전 국민으로 확대하는 것까지 검토하기로 했다”고 정정했다.

재난지원금을 어디까지 줄 것인가 하는 문제는 그간 여권 내 뜨거운 감자였다. “전 국민 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는 민주당 지도부에 기획재정부가 “선별지원” 원칙을 고수하며 맞서왔다. 여권 대선주자들 간에도 갑론을박이 벌어지면서 야당 입장에선 '강 건너 불구경'하는 이슈였다. 그런데 전날 이 대표가 합의사항에 ‘전 국민 지급’이란 문구를 집어넣으면서 졸지에 제1야당이 논쟁에 끼어든 모양새가 됐다. 논란이 커지자 이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송 대표와 저의 합의는 정치적 입지를 고려한 쌍무적 합의”라고 말했다. 송 대표가 기재부를 상대로 ‘전 국민 지급’ 요구의 압박 수위를 높이기 위해 국민의힘을 끌어들이는 걸 알고 있었지만, 상호 원하는 걸 주고받기 위해 받아들였다는 의미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13일 국회에서 취재진을 만나 전날 양당 대표 회동 관련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 임현동 기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13일 국회에서 취재진을 만나 전날 양당 대표 회동 관련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 임현동 기자

두 대표 간의 ‘딜’때문에 국민의힘은 벌집 쑤신 상황이 됐다. 익명을 원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어찌 됐든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주겠다고 했다가 다시 거둬들인 꼴이 됐고,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은 제1야당에 뒤집어쓰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대표가 송 대표와 합의한 사안들은 원내 지도부와 아무런 교감이 없었다고 한다. 원내 지도부의 한 의원은 “연동형 비례제 같은 경우 여권의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와 이에 대한 반발 과정에서 재판까지 이어진 무거운 이슈”라며 “아무리 당 대표라지만 덜컥 합의해올 성질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비판이 계속되자 이 대표가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확정적 합의보다는 가이드라인에 가까운 것”이라고 해명하고, 김기현 원내대표도 “당의 입장은 달라진 게 없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당은 종일 시끄러웠다.

당장 당 안팎에선 “실망스러운 판단”(원희룡 제주지사), “월권행위를 자제해야 한다”(김태흠 의원), “여당의 포퓰리즘 매표 행위에 날개를 달아준 꼴”(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같은 공개 비판이 터져 나왔다. 전날 이 대표를 겨냥해 ‘제왕적 당 대표’라고 비판했던 당내 대선주자인 윤희숙 의원은 이날도 페이스북에 “전 국민 돈 뿌리기 게임에 동조한 것이다. 정권 교체를 바라는 국민의힘 지지자를 꼿꼿이 세우고, 합리적인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가장 날카로운 무기를 망가뜨린 것은 상대방이 아니라, 우리 내부 철학의 붕괴”라고 적었다. 당 내 반발이 거세지면서 익명을 원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당 대표가 대선 리스크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13일 국회에서 취재진을 만나 전날 양당 대표 회동 관련 질의응답을 하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임현동 기자

13일 국회에서 취재진을 만나 전날 양당 대표 회동 관련 질의응답을 하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임현동 기자

이런 우려는 이준석발 논란이 ‘재난지원금’에 한정된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당내에선 토론 배틀로 당 대변인단을 선출하는 등 새로운 시도와 ‘30대 0선 당대표’라는 참신함으로 당 지지율 상승을 견인했지만, 제1야당 대표의 발언이 갖는 무게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당내 불만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분출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로 취임 한 달을 맞은 이 대표는 그동안 여러 발언으로 당 안팎의 논란거리가 됐다. 지난 13일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는 중국에 대해 ‘잔인함’(cruelty)이라는 표현을 썼고, 보도가 나간 당일 주한 중국 대사를 면전에 두고 홍콩 문제 등을 거론하며 우려를 전달한 것도 구설에 올랐다. 개인 자격으로서야 비판적 견해를 드러낼 수 있지만, 야당 대표로서는 세련되지 못하고 부적절한 외교적 발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앞서 이 대표가 선제적으로 띄운 여성가족부·통일부 폐지론도 디테일과 신중함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당 안팎의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이날 MBC 라디오에서 “부처 폐지론의 내용이야 다 훌륭한지만, 집권해서 다시 이야기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며 “여가부 폐지도 여성들이 반대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조금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좋다”고 주장했다. 권영세 의원도 “쓸데없는 반(反)통일세력의 오명을 뒤집어쓸 필요가 없다”고 비판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이 대표는 대선까지 제1야당을 이끌 중책을 맡고 있다. 조해진 의원은 “이 대표 취임 후 소소한 mistake(실수)가 있어도 관망했지만, 이제 더는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며 “당 대표의 잘못은 당에 타격을 주고, 본인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나아가 정권교체의 희망을 날려버리는 최악의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이번 사태가 '예방주사'일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대선까지 8개월여 남은 시점에서 제1야당 대표 발언의 무게를 실감했으니 학습 능력이 뛰어난 이 대표가 좋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을 거란 기대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 대표도 자신이 하는 말의 무게를 생각하는 기회가 됐다”며 “그가 당내 숙의 절차를 거친 후 메시지 내는 등 앞으로 변화된 모습 보이면서, 청년 표심 견인하는 효용 가치를 계속 높여나갈지가 주목 포인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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