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염재호 칼럼

새 대통령은 엽관제 철폐부터

중앙일보

입력 2021.07.14 00:57

지면보기

종합 31면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

1881년 7월 2일 미국의 20대 대통령 제임스 가필드는 찰스 귀토라는 청년이 쏜 두 발의 총탄에 쓰러졌다. 워싱턴 볼티모어 포토맥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다 벌어진 일이다.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2개월 후 수술 후유증인 패혈증으로 사망하여 6개월의 짧은 대통령 임기를 마쳤다. 16대 링컨, 25대 매킨리, 35대 케네디와 함께 암살된 역대 미국대통령 네 명 중 한 명으로 기록되었다.

엽관제 폐해로 암살된 미 대통령
공직 임명은 실력있는 전문가로
새 대통령 엽관제 고리 끊어야
실적제로 정치 선진화 앞당기길

암살자 찰스 귀토는 프랑스계 미국인으로 가필드 대통령의 선거유세를 적극적으로 도왔던 열렬 지지자였다. 그는 가필드 대통령이 당선되자 프랑스 연고를 내세워 자신을 파리 주재 미국공사로 임명해달라고 끈질기게 요구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선거에서 승리하면 많은 관직을 선거에 도움을 준 운동원에게 나누어주는 엽관제가 횡행했다. 엽관제는 수렵을 통해 관직을 사냥한다는 뜻으로 미국 7대 대통령 앤드류 잭슨 이후 미국에 만연된 정치행태였다. 잭슨 대통령은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관직을 수행할 수 있다고 믿고 자신의 선거를 도와준 측근들을 대거 관직에 임명했다. 하지만 연방정부의 일이 점점 복잡해지고 전문성이 늘어나면서 선거를 쫓아다니는 지지자들에게 관직을 주는 일은 많은 폐해를 불러일으켰다. 이 와중에 가필드 대통령은 능력이 안 되는 선거운동원 귀토의 집요한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하는 바람에 살해된 것이다.

영국은 1870년 추밀원령을 통해 시험으로 공무원을 선발하는 실적제를 도입했다. 이에 자극받은 미국도 1871년 그랜트 대통령 시절 그랜트위원회를 세워 엽관제를 없애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오랜 전통이 되어버린 엽관제의 폐해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실력은 없지만 관직을 원하는 정치지망생들의 관직 사냥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그러다가 가필드 대통령 암살을 계기로 1883년에 팬들턴법(Pendleton Act)이라는 연방공무원법이 제정되어 시험과 실력에 의한 공무원 임용제도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청년실업과 부동산폭등 문제로 MZ세대의 공정성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청와대 청년비서관 임명에 대한 논란도 실력에 의한 공정성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야당 대통령 후보들도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을 비판하면서 공정성을 공약으로 내세운다. 당연한 상식에 불과한 공정성이 시대정신이 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토론배틀로 대변인을 공개경쟁 선발했다. 그리고 당이 공천하는 모든 공직선거 후보자들에게 자격시험을 실시해 누구나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정치환경을 만들겠다고 한다. 마이클 센델은 최근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시험을 통한 기회의 균등은 절대적인 것은 아니고 불공정을 보완하기 위한 최소한의 대안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준석 대표가 추진하는 자격시험 도입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관직을 사냥하듯 엽관제 자리만 탐내는 정치인에게 최소한의 상징적 견제장치로 작동되길 기대한다.

엽관제의 대표적 사례인 낙하산인사 근절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이었고, 취임초 여야 4당 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공공기관 인사에 부적격자, 낙하산 인사, 보은 인사는 없다고 확약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4년 동안 금융공공기관의 감사나 비상임이사 약 42%가 정치권 낙하산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아시아경제의 평가가 있다. 시사저널의 최근 조사에서도 공기업 36개중 28개 기관 63명, 준정부기관 96개 중 45개 기관 76명, 기타 공공기관 218개 중 68개 기관 107명이 낙하산 인사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 들어 낙하산 인사가 더욱 심화됐다고 지적한다.

선거 때만 되면 캠프에 줄 대려는 사람이 많다. 캠프에서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이들의 접근과 도움을 외면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것은 결국 독배가 되어 돌아온다. 그들이 선거에 도움을 주었다는 이유만으로 당선 후 터무니없는 청구서를 내밀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도 출범부터 드루킹 사태와 오사카 총영사 임명 건으로 발목이 잡혔다. 이제 대통령 후보들은 엽관제의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

엽관제의 만연은 나라를 퇴보시킨다. 공직에는 뛰어난 전문성과 능력을 갖고 나라를 이끌 리더들이 필요하다. 새 대통령은 엽관제 근절을 위해 공공기관에 대통령의 임명영향력을 최소화하고 전문가들로만 임명할 수 있는 구체적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 공공기관의 발전은 보은인사가 아니라 전문가 발탁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무원의 공천도 충성도나 인기도가 아니라 학생종합부와 같이 여러 해에 걸쳐 평가된 내용을 바탕으로 객관적 공천을 하는 시스템을 정당은 마련해야 한다. 거짓말, 막말, 말 바꾸기를 밥 먹듯 하는 품격 없는 정치인들을 걸러내고 전문성과 실력 있는 정치인들을 공천하는 시스템을 갖춘 정당에 유권자들의 지지는 몰릴 것이다. 이준석 대표가 추진하는 정치권의 실적제 실험을 계기로 엽관제가 사라지고 우리 정치의 선진화가 빠르게 진전되길 바랄 뿐이다.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