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권혁재의 사람사진

쉰살 넘어 3000km 걸었다…‘IT업계 신화’ 이유있는 변신

중앙일보

입력 2021.07.14 00:40

업데이트 2021.07.14 08:04

지면보기

종합 26면

권혁재 기자 중앙일보 사진전문기자
권혁재의 사람 사진/ 박재희 도보 여행가 .

권혁재의 사람 사진/ 박재희 도보 여행가 .

 박재희,
현재 그는 도보 여행가, 여행작가, 자기리더십 코치다.

그가 살아온 이력을 보면 현재 모습을 예상하기 쉽지 않다.
2004년엔 한국 EMC의 첫 여성 임원이었다.
이내 EMC 아시아·태평양지역 기업마케팅 총괄 상무가 되었다.
이후 인컴브로더 주식회사 대표,
주식회사 모모인 대표,
액티피오 아시아·태평양지역 16개국
마케팅 총괄대표까지 역임했다.

IT 업계의 신화였던 사람이
뜬금없이 도보 여행가로 변신한 게다.

바닥에 펼쳐진 것은 도보 여행가 박재희씨와 함께 여행하는 물건들이다. 차곡차곡 넣으면 하나의 배낭에 빼곡하게 찬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바닥에 펼쳐진 것은 도보 여행가 박재희씨와 함께 여행하는 물건들이다. 차곡차곡 넣으면 하나의 배낭에 빼곡하게 찬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그가 IT 업계 신화를 내려놓고
두발로 다시 삶을 쓰는 이유가 뭘까?
“내게 언제나 위로가 되었던 친구가
과로사로 갑자기 하늘로 갔습니다.
생각보다 내게
시간이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족과 주변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요.”

“나를 잘 아는 동료들이 반대를 많이 하긴 했습니다만,
남편은 세 걸음 이상 차 타던 제가
뭘 걷겠냐고 생각했을 겁니다.”

“우문입니다만,
회사를 관둘 때 생활 여유가 있었습니까?”

“사실 꽤 큰 보수를 받는 것,
그것을 포기하기 어려워 그만두는 데 오래 걸렸습니다.
일로서 나를 증명할 건 다 했는데,
계속 다닌 이유가 결국 돈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제일 소중한 사람이니,
내가 나한테 월급 주듯
내가 나한테 시간을 못 주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관둘 수 있었습니다.”

2016년 산티아고 순례길 900km를 걷는 40일 동안, 그는 내내 녹색 비옷 차림이었다. 비,눈, 우박 등 온갖 풍상을 겪은 탓이었다. 이 차림 때문에 얻은 별명이 '배추벌레'였다. 그렇게 그는 매일 풍상 맞은 채 약 먹고 바르며, 매일 배추벌레가 되어, 꿈틀꿈틀 40일 동안 걸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016년 산티아고 순례길 900km를 걷는 40일 동안, 그는 내내 녹색 비옷 차림이었다. 비,눈, 우박 등 온갖 풍상을 겪은 탓이었다. 이 차림 때문에 얻은 별명이 '배추벌레'였다. 그렇게 그는 매일 풍상 맞은 채 약 먹고 바르며, 매일 배추벌레가 되어, 꿈틀꿈틀 40일 동안 걸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그의 걷기 인생은 2015년
‘리셋원정대’라 이름 붙인
뉴질랜드 밀포드 트랙이 시작이었다.

이후 프랑스 산티아고 순례길을
40일 동안 900km 걸었다.

그 이후 포르투갈 산티아고 순례길,
우리나라 제주 올레길,
일본 시코쿠길까지 걸었다.

세 발짝 이상 차를 타던 그가
쉰 넘어 첫발을 뗀 후
걸은 거리만 무려 3000km가 넘었다.

맨 처음 길 한가운데 돌을 놓아, 길을 갈 누군가에게 갈 길을 알려준 이는 누굴까? 이 물음은 도보 여행가로서 박재희씨가 두 발로 삶을 다시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진 박재희 제공

맨 처음 길 한가운데 돌을 놓아, 길을 갈 누군가에게 갈 길을 알려준 이는 누굴까? 이 물음은 도보 여행가로서 박재희씨가 두 발로 삶을 다시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진 박재희 제공

최근 그가 ‘리스본에서 산티아고까지 『산티아고 어게인』’
이라는 책을 냈다.

게 중 한 문장에 눈이,
마음이 오래도록 머물렀다.

‘우리 모두 자신을 향한 길을 걷기를….’

그랬다.
그의 걸음은 어디의 누가 아니라
그냥 박재희를 향한 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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