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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공산당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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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진석 기자 중앙일보 기획취재담당
박진석 사회에디터

박진석 사회에디터

홍콩의 슈퍼스타 청룽(成龍)에게는 이름이 많다. 가장 널리 알려진 ‘청룽’은 리샤오룽(李小龍)의 ‘정무문’을 감독했던 루오웨이(羅維) 감독이 “리샤오룽을 뛰어넘는 진정한 용이 되라”며 지어준 이름이다.

경극학교 스승 위잔위안(于占元)이 붙여준 위안러우(元樓)도 있다. 청룽은 뒷날 당시 사형 훙진바오(洪金寶)가 쓰던 위안룽(元龍)을 물려받은 뒤 원래 성인 천(陳)을 붙여 천위안룽(陳元龍)이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영화판에서의 첫 예명이다.

본명은 천강성(陳港生)이다. 영어 이름 ‘재키 챈’도 여기서 나왔다. 천이 그의 모친 성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건 2000년대 중반의 일이었다. 그의 부친 팡다오룽(房道龍)은 소싯적 중국 국민당 경호원으로 일했다. 비밀첩보원이었다는 설의 진위는 불투명하지만 어쨌든 주로 완력을 썼던 인물이었고, 그 대상은 필연적으로 주적인 중국공산당원들이었다. 그 역시 공산당원들의 총격으로 목숨을 잃을 뻔한 적이 있었다.

1949년 중국공산당의 최종 승리는 그에게 악몽이었다. 상처한 홀아비였던 그는 두 아들을 남겨둔 채 야반도주했고, 역시 전쟁통에 남편을 잃고 두 딸과 간신히 대륙을 탈출한 한 여성과 결혼했다. 그 둘 사이에서 청룽이 태어났다. 공산당의 추적이 두려웠던 팡다오룽은 새 아내의 성을 딴 가명을 사용했고, 막내아들에게도 아내의 성을 붙였다. 그는 만년이 돼서야 이런 사실을 청룽에게 담담하게 털어놨다. 그때부터 청룽은 천강셩과 팡스룽(房仕龍)을 모두 본명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 청룽이 아버지의 주적이었던 중국공산당 당원이 되고 싶다고 공개 선언했다. 그의 친중 행보가 낯선 건 아니지만, 중국공산당이 홍콩의 민주주의를 노골적으로 위협하고 있는 작금에 아부 강도를 높이는 모습은 영 마뜩치가 않다. 명색이 ‘홍콩 출생’(港生)이라는 본명을 갖고 있는 데다가 일평생 홍콩 및 구미 국가들의 자유를 만끽하면서 성장하고 성공했던 그인데 말이다.

대마초 흡연으로 한때 구속됐던 아들이 발목을 잡았다는 동정론도 있지만, 그보다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자본주의화한 공산당에 아부하고 있다”는 일침이 더 진실에 가까워 보인다. 한국과도 인연이 얕지 않은 옛 영웅의 퇴락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