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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CEO,이사람] 형지어패럴 최병오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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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전국 100여 개 재래시장 입구에 가면 악어 문양이 그려진 녹색 간판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형지어패럴의 '크로커다일 레이디스(Crocodile Ladies)'다. 재래시장에서 힘을 낸 이 브랜드는 올해 전국 유명 백화점에도 상륙했다. 전국 점포수는 300개. '악어'를 길러낸 조련사는 최병오 회장이다. '브랜드 의류'는 최 회장의 20년 숙원이었다. 숙녀복 도매상 시절 최 회장은 "이름도 없는 옷들을 팔면서 브랜드 티셔츠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고 회고했다.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진선미' '크라운' 등의 상표를 특허청에 등록해 두기도 했다.

최 회장은 1982년부터 동대문 시장에서 의류장사를 했다. 소문난 개미였다. 새벽 4시면 시장에 나와 공장과 부자재 시장을 발로 뛰며 물건 댈 준비를 했고 부인은 새벽시장에서 소매상들을 상대했다. 한 집에 살고 일터도 같았지만 일하는 시간이 달라 사실상 주말부부였다고 한다. 앞만 보고 뛰었지만 10년 후 그는 쓴맛을 봤다. 발행한 어음이 부도나면서 93년 가게문을 닫았다. 꿈을 접기에는 너무 억울했다. 이때 어머니가 새마을 금고에 넣어두었던 2000만원을 아들 앞에 내놓았다. 남평화 시장에 반 평짜리 매장을 얻어 곧 자리를 잡았지만 마음 한 쪽은 늘 공허했다.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 '크로커다일'이라는 상표를 우연히 발견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악어문양을 쓰는 L브랜드와 비슷해보이면서도 달랐다. 6개월 동안 국내 에이전시를 수소문한 끝에 국내 판권을 따냈다. 96년 동대문에 이 브랜드를 내놨다. 크로커다일은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남성복 회사였지만 최 회장은 여성복에 이 브랜드를 접목했다. 유명 브랜드와 유사한 상표 덕분에 많이 팔리기도 했지만 '짝퉁'이미지를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동대문 바닥 최초로 유명 탤런트를 모델로 내세워 마케팅을 했다.

하지만 97년 외환위기로 동대문 상권이 어려워지면서 또 한번 위기를 맞았다. 최 회장은 "의류업 전반이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덕분에 대기업 출신 전문가들을 영입해 회사의 틀을 갖출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공략 대상을 서민층 30~40대 주부로 좁히고, 청소년 캐주얼과 남성복 사업은 접었다. 주부들의 발길이 잦은 재래시장 초입을 중심으로 대리점 확보에 나섰다. 전략은 적중했다. 지난해 매출은 1950억원. 옛 논노의 대표 브랜드인 샤트렌을 사들여 중고가 여성 캐주얼 시장에도 진출했다. 최 회장은 요즘 버는 일만큼 쓰는 일에도 열심이다. 소외계층을 위한 공부방 설립 지원, 구호단체 지원에 매년 2억원을 쓰고 있다. 임직원들과 어린이집을 정기적으로 찾아 직접 봉사활동도 할 계획이다. 최 회장은 "싱가포르 크로커다일의 창업주인 탄(TAN) 회장에게서 회사 지분 85%를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경영권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느낀 바가 많았다"고 말했다.

글=임장혁 기자, 사진=김도훈 인턴기자

◆ 형지어패럴은 …

-설립 : 1996년 3월

-본사 소재지 : 서울 강남구 포이동

-종업원수:320명

-2005년 매출 : 1950억원

-보유 브랜드 : 크로커다일 레이디스, 샤트렌, 끌레몽트, 카텔로 레이디스(중국 진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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