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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병상의 코멘터리

사면초가 이준석..국민의힘 현주소다

중앙일보

입력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12일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만찬 회동을 마친 후 인사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12일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만찬 회동을 마친 후 인사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12일 '재난지원금 전국민지급'합의 번복..'대변인 실수' 변명 #이준석의 실수이긴 하지만..대표 인정않는 당내 분위기 심각

1.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사면초가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12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찬회동에서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에 합의했기 때문입니다. 국민의힘 기존 당론과 다른 전격적 합의에 당내 반발이 심각하자 이를 번복하는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13일 여당은 물론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비난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2. 우선 사실관계를 먼저 정리하자면..이준석의 실수가 명확합니다.
이준석과 송영길의 회동 직후인 12일 밤8시..양당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국민의힘 당론과 다른 결정이라 당연히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황보승희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오늘 합의한 것’이라고 확인해주었습니다. 언론사들이 예상치 못했던 뉴스에 다투어 속보를 날렸습니다.

3. 그로부터 100분이 지난 밤 9시44분..황보승희가 문자메시지를 날렸습니다.
‘손실을 입게된 소상공인 자영업자를..충분히 지원하는데 우선적으로 재원을 활용하자는 것이고..그후 만약 남는 재원이 있을 경우 재난지원금 지급대상범위를 전국민으로 확대하는 것까지 포함해..검토하자는 취지로 합의한 것’

4. 브리핑을 번복한 겁니다. ‘재난지원금 전국민지급에 합의’한 것이 아니라 ‘남는 재원이 있으면 전국민지급을 검토하자는 취지’로 바뀌었습니다. 완전히 다른 내용입니다.
이렇게 바뀐 건..당연히 국민의힘 내부의 반발 때문입니다. 이준석은 12일 밤 9시 김기현 원내대표 등과 긴급히 회동한 다음 ‘합의’에서 ‘검토’로 입장을 바꾼 겁니다.

5. 이준석은 이러한 번복에 대해 13일 라디오에 출연해 변명했습니다.
‘송영길 대표의 제안(전국민지급)에 대해 긍정검토하겠고 한 것이다.’
‘방역이 강화돼 저희가 얘기한 내용을 정리해 옆방 대변인들에게 스피커폰으로 전달했다..설명과 질의응답을 대변인들이 했는데, 논의과정 고민이 전달되지 않은게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회동에선 ‘검토’라고 했는데..대변인들이 브리핑 과정에서 정확히 설명하지 못했다..그러니까 대변인의 실수라는 면피성 주장입니다.

6. 이런 궁색한 변명으로 넘어가기에..‘재난지원금 지급방식’은 민감한 문제입니다.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비판이 적확합니다.
‘양당대표간의 전국민지원 합의는 이번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전선을 함몰시켰다..국민을 현혹시킨 전국민 돈뿌리기 게임에 (이준석이) 동조한 것이다..합리적인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가장 날카로운 무기를 망가뜨린 것은 상대방이 아니라, 우리 내부 철학의 붕괴다.’

7. 국민의힘 당론은 ‘피해자들에게 선별지원해야한다’입니다. 따라서 ‘전국민에게 보편적으로 지급하자’는 송영길의 주장은 국민의힘 입장에서 볼 때 ‘돈뿌리기’로 비판해야할 공격포인트입니다. 이런 포인트를 국민의힘 대표가 없애주었고..이는 기본적으로 ‘선별’이냐, ‘보편’이냐..를 판단하는 철학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입니다.

8. 경제통인 윤희숙의 지적은 보수주의 철학이 강조하는 포인트입니다. 이준석은 이런 문제에 대해 윤희숙만큼 잘 알지 못할 겁니다.
이준석이 아무리 당 대표라고 하더라도 기존의 당론과 다른 주장을 즉흥적으로 하면 안됩니다. 당내 의견을 수렴한 다음 당론을 바꾸는 일을 주도할 수 있습니다만..이준석이 경솔했습니다.

9. 그런데 이준석의 잘못에 비해 당내 반발과 비판의 강도가 지나쳐 보입니다.
대선을 앞둔 정당이 늘 그렇지만..현재 국민의힘 구성원들도 관심이 대선후보에 쏠려있기 때문입니다. 후보가 확정되면 당 전체가 후보 중심으로 재편되고, 그 후보가 다음 총선 공천에까지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10. 내심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준석을 대표로 잘 인정해주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이준석은 ‘변화’를 요구하는 지지자들의 압도적 지지(43.8% 득표)로 당선된 대표입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거의 유일하게 이준석을 옹호하고 있는 하태경 의원의 말처럼‘자해정치’가 되어선 안되겠죠. 전당대회 끝난지 32일밖에 안됐습니다.
〈칼럼니스트〉
2021.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