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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총에 얼굴 절반 날아갔다···'수술 22번' 그녀의 이색 복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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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아프가니스탄 출신 여성 인권 운동가 샤킬라 자린. [자린 인스타그램 캡쳐]

아프가니스탄 출신 여성 인권 운동가 샤킬라 자린. [자린 인스타그램 캡쳐]

“제가 행복하고 강해 보인다고요? 그 뒤엔 슬프고 어두운 이야기가 있어요. 전 항상 말합니다. 폭력은 내 무릎을 꿇리지 못했다고요.”

아프가니스탄의 여성 운동가 샤킬라 자린(25)은 지난 12일(현지시간)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담담히 이렇게 말했다. 9년 전 자린은 자신을 죽이려는 남편을 피해 어머니 집으로 도망갔다. 그런 그에게 남편은 총을 쐈다. 얼굴을 정조준했다. 한쪽 눈과 코, 입, 턱이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스물두 차례에 걸쳐 수술을 받았지만, 예전 얼굴로 돌아가진 못했다. 이후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아프가니스탄의 여성을 위해 헌신하기로 다짐한 것이다.

BBC는 12일(현지시간) 샤킬라 자린의 일생을 조명했다. BBC는 최근 미국 등 군대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면서 아프간 여성의 인권이 더 악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BBC 캡쳐]

BBC는 12일(현지시간) 샤킬라 자린의 일생을 조명했다. BBC는 최근 미국 등 군대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면서 아프간 여성의 인권이 더 악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BBC 캡쳐]

BBC에 따르면 자린은 어린 시절부터 여자라는 이유로 학대를 당했다. 남자 형제들에게 맞는 일은 다반사였다고 한다. 12세까지 학교에 다녔지만, 이후엔 무화과와 살구 등을 따서 팔거나 카펫을 짜는 일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챙겼다. 아프간 군대 소속이었던 아버지가 탈레반과의 총격에서 중상을 입은 뒤 수입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었다. 자린은 “어렸을 적 내가 웃은 적이 있는지 기억조차 안 날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샤킬라 자린의 어린시절 모습. [자린 인스타그램 캡쳐]

샤킬라 자린의 어린시절 모습. [자린 인스타그램 캡쳐]

16세가 되던 해 14살 연상 남성과 강제로 결혼했다. 남편은 결혼 직후 채찍을 보여주며 “넌 여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맞아야 한다”고 했다. 남편의 형제들도 폭행에 가담했다. 자린이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렇게 때리냐”고 물으면 “여자가 어딜 반항하고 말대꾸를 하냐”는 답이 돌아왔다.

경찰에 도움을 청해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자 자린은 어머니의 집으로 피했지만 몇 시간 뒤 남편에게 변을 당했다. 차로 7시간 거리에 있는 수도 카불의 한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지만, 얼굴의 절반은 사라졌다.

샤킬라 자린은 남편에게 얼굴에 총을 맞은 뒤 모두 스물두 차례 수술을 받아야했다. [BBC 캡쳐]

샤킬라 자린은 남편에게 얼굴에 총을 맞은 뒤 모두 스물두 차례 수술을 받아야했다. [BBC 캡쳐]

언론을 통해 사연이 알려진 뒤 자린은 인도 정부의 도움을 받아 3년 동안 아홉 차례 수술을 받았다. 유엔은 그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하고 미국에 정착을 요청했다. 2016년 미국 정부는 이를 조건부로 승인했지만, 약 1년 뒤 취소됐다. “안보와 관련된 문제”라는 게 이유였다. 캐나다 방송인 CBC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뒤 결정이 번복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2018년, 자린은 미국 대신 캐나다 행을 선택했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을 더는 숨기지 않기로 했다. 가정 폭력 생존자 등 여성단체를 찾아 연설하고 난민 인권 운동에 나섰다. 같은 아프간 난민 출신으로 캐나다 민주제도부 장관에 오른 마리암 몬세프를 만나 난민 정책을 의논하기도 했다. 그는 “만약 내가 나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면 그저 고통 속에서 죽어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샤킬라 자린이 한 여성 인권 행사에서 연설하는 모습. 그는 "내 권리를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면 그저 고통 속에서 죽어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린 인스타그램 캡쳐]

샤킬라 자린이 한 여성 인권 행사에서 연설하는 모습. 그는 "내 권리를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면 그저 고통 속에서 죽어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린 인스타그램 캡쳐]

BBC는 최근 미국·독일 군대의 연이은 아프가니스탄 철수로 안보·치안이 나빠져 여성 인권이 더 악화할 수 있다는 점을 조명했다. 여성 인권이 최악인 나라 중 하나로 꼽히는 아프가니스탄은 최근 탈레반 세력에 국토 곳곳을 장악당한 상태다. BBC는 “자린이 태어나고 자란 아프가니스탄 북부 지역 바글란도 오랫동안 탈레반과 정부군이 교전을 벌인 지역 중 하나”라며 “최근 몇 주 사이에 수많은 구역이 탈레반 세력에 넘어갔다”고 전했다.

지난해 아프간에서 벌어진 여성 폭력 피해는 3500건으로 집계됐지만, 여성이 쉽게 신고에 나서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하면 실제 수치는 훨씬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CBC는 UN 보고서를 인용해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87%는 어떤 형태로든 폭력에 노출돼있다”며 “더 큰 문제는 잔인한 행동을 한 이들을 처벌할 법 집행기관이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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