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계도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1조원 시장 눈앞

중앙일보

입력 2021.07.13 14:36

최근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 아래쪽으로 확장 이전한 페이스 갤러리. [사진 페이스갤러리]

최근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 아래쪽으로 확장 이전한 페이스 갤러리. [사진 페이스갤러리]

페이스 갤러리가 확장 이전 개관 기념전으로 선보인 샘 길리엄의 전시. [사진 페이스갤러리]

페이스 갤러리가 확장 이전 개관 기념전으로 선보인 샘 길리엄의 전시. [사진 페이스갤러리]

1438억원. 올해 상반기 미술 경매 총매출액이다. 1998년 서울옥션이 출범하면서 국내 미술 경매가 본격화된 이후 상반기 기준 최대 규모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가 최근 집계한 국내 경매사 8곳의 경매 결과에 따르면 올해 1~6월 미술 경매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의 490억원보다 3배로 껑충 뛰었다. 올해 반년치 거래만으로 지난해 1~12월 전체 거래액인 1153억원을 넘어선 것. 이 추세가 이어진다면 올해 경매 시장 매출 규모만 3000억 원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해외 유수 갤러리들 서울 진출
내년 키아프,프리즈 공동개최
국내 갤러리들 경쟁력이 관건
"한국 스타작가 발굴.홍보 시급"

한국 미술시장 '1조원 시대'가 다가왔다. 경매 시장만 아니라 아트페어, 갤러리 거래까지 뜨겁게 달아올랐다. 아트페어는 지난 5월 아트부산 한곳의 매출만도 350억원에 달했다. 화랑가에서는 "전시 소식만 들리면 작품이 도작하기 전에 컬렉터들이 대기해 작품을 산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요즘 해외 갤러리 서울지점에선 한 점당 10억원에 육박하는 작품도 속속 팔려나가고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대표 김도일)가 올해 초 발표한 '2020 미술시장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미술시장 규모는2019년 기준 4000억원대 초반. 2017년 4942억원을 기록하며 5000억원을 눈앞에 뒀었지만 2018년 4482억원, 2019년 4147억원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는 지금 같은 경매 시장 추세에 하반기 아트페어, 화랑 매출 등의 성과가 합쳐지면 1조원도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10월 개막 KIAF, 일찍부터 가열

2019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키아프 전시장 전경. [한국화랑협회]

2019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키아프 전시장 전경. [한국화랑협회]

내년 9월 프리즈 아트페어가 키아프가 공동 개최된다. [사진 FRIEZE]

내년 9월 프리즈 아트페어가 키아프가 공동 개최된다. [사진 FRIEZE]

이런 열기는 오는 10월 국내 최대 규모의 아트페어인 키아프(KIAF·한국국제아트페어)에서 정점을 찍을 것으로 기대된다.

올해 키아프는 내년 9월 글로벌 아트페어 프리즈(FRIEZE)와의 공동 개최를 앞두고 일찌감치 가열 조짐을 보였다. 프리즈는 아트바젤·피악(FIAC)과 더불어 세계 3대 아트페어로 꼽히는 미술 장터. 가고시안·데이비드 즈워너 등 해외 특급 갤러리를 포함해 170여 개 갤러리가 참여한다. 이같은 프리즈가 내년부터 향후 5년 동안 키아프와 같은 기간, 같은 장소에서 열리기로 확정되면서 서울이 글로벌 아트마켓으로 주목받게 될 것이란 기대가 더욱 높아졌다.

올해 10월 15~17일 서울에서 열리는 키아프에는 총 280여개 갤러리가 신청을 했고, 이 중 170여 개 갤러리만 참여가 확정됐다. 100여 개 갤러리가 한국화랑협회의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고 '탈락'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협회 측은 "예년보다 30% 이상 많은 화랑·갤러리가 참가를 희망했고, 대형부스를 신청한 곳도 50% 이상 늘었다. 내년에 열릴 큰 시장을 모두 준비하고 있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황달성 한국화랑협회 회장은 "키아프는 지난 20년 동안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지 못하고 여기까지 왔다"면서 "막강한 해외 갤러리 군단을 끌고 오는 프리즈와의 공동 개최를 염두에 두고 올해 참가 기준을 강화했다"고 말했다. "지금 경쟁력을 끌어올려 놓지 못하면 무르익어가는 한국 미술 시장을 오히려 해외 갤러리에 다 내줄 수밖에 없다"는 우려 때문이다. 참가 선정에서 소외된 갤러리들의 반발도 거셌다. 황 회장은 그러나 "아트페어의 본분은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고 기성 작가 신작을 발표하는 것"이라며 "앞으로도 보다 본래 아트페어 기능에 충실한 갤러리 위주로 선정하며 키아프를 명실공히 국제 아트페어로 체질을 다져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시장으로 눈 돌린 해외 갤러리 

쾨닉 갤러리에서 소개한 독일 출신 작가 요란데 포그트 작품. [사진 쾨닉갤러리]

쾨닉 갤러리에서 소개한 독일 출신 작가 요란데 포그트 작품. [사진 쾨닉갤러리]

페이스갤러리에서 미국 조각가 조엘 사피로(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사진 페이스갤러리]

페이스갤러리에서 미국 조각가 조엘 사피로(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사진 페이스갤러리]

해외 갤러리들의 서울 공략도 거세지고 있다. 세계적인 다국적 갤러리인 페이스 갤러리 서울지점은 지난 5월 한남동 리움미술관 인근 건물로 확장·이전했다. 총면적 793㎡(240여 평)에 천장 높이 3m 달하는 새 전시장은 기존 전시장의 4배 규모다. 이곳에서 열린 89세의 미국 흑인 작가 샘 길리엄의 아시아 최초 개인전은 성황을 이뤘다. 이 작가의 그림은 한 점당 약 5~10억원의 높은 가격임에도 개막과 동시에 모두 판매됐다.

오스트리아 갤러리 타데우스 로팍도 오는 10월 한남동에 지점을 연다. 잘츠부르크·런던·파리에 이어 해외지점을 내는 서울은 타데우스 로팍의 아시아 첫 진출지다. 앞서 독일의 쾨닉 갤러리는 지난 4월 서울 청담동 MCM 하우스의 5층과 옥상에 지점을 열고 소속 작가 20여명의 작품 40여 점을 전시했다.

서울이 아시아의 아트 허브?  

지난달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서울이 홍콩을 대신해 아시아의 '아트 허브'로 떠오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2019년 이후 홍콩에서 반중 시위가 거세지고 지난해 6월부터 시행된 국가보안법 등으로 정치적 혼란이 심해지면서 미술시장도 얼어붙고 있다는 것. 아트·디자인 매체 월페이퍼도 11일 "세계적인 갤러리들이 서울로 몰려들고 있다"고 보도하며 "서울이 아시아의 새로운 미술 수도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영주 페이스 갤러리 디렉터는 "한국 미술 시장이 급속도로 커 가는 추세에 충분한 잠재력이 있는 것은 맞다"면서도 "그러나 아직 서울을 홍콩과 비교하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아트바젤과 후원사 UBS가 낸 아트마켓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미술시장 매출은 10조3000억원 규모. 실제론 고미술 시장까지 합치면 30조를 넘을 것으로 추산돼, 기존 4000억원 규모의 한국 시장과 당장 비교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황달성 한국화랑협회 회장은 "미술 시장은 금융 시장과 함께 큰다"며 "아시아 아트 허브가 될 가능성은 아직은 '희망' 단계로 보는 게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도 프리즈가 과감하게 서울을 택한 이유는 나름대로 그 잠재력을 보았기 때문"이라며 "한국 화랑들이 긴장하고 글로벌 시장에 단단히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의식에 기반해 한국화랑협회는 최근 '갤러리스트 아카데미' '시가감정 아카데미' 등의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나섰다.

한 갤러리 관계자는 "아트페어의 활성화, 프리즈와 해외 갤러리들의 서울 진출은 결과적으로 한국 작가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열어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최근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승격시켰듯이, 한국에도 이제야 제대로 된 미술시장이 생기게 된 것으로 본다"면서 "좋은 작가들을 열심히 찾고, 양질의 전시를 이어가며 내실을 다지는 것으로 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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