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1병 7000원…일본 노숙인이 겨울에 마시는 위스키

중앙일보

입력 2021.07.13 11:00

업데이트 2021.07.16 18:16

[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128)

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하이볼 한 잔이 마시고 싶어진다. 아직 본격적인 여름도 안됐는데 거의 30도에 육박하는 날씨…. 올여름은 유난히 길고 덥다는데 어떻게 버텨야 할지 걱정이다. 슬슬 에어컨도 청소를 해야겠는데.

그때 문을 열고 한 남자가 들어온다. 그런데 행색이 도저히 말이 아니다. 꾀죄죄한 넝마 같은 옷을 주워 입고 챙이 검게 때 탄 벙거지를 눌러썼다. 얼굴은 매우 탔고 가뭄에 갈라져 버린 논밭처럼 주름이 가득하다. 그리고 신발은 코 부분이 완전히 헤져있는데 조금 더 있다가는 구멍마저 뚫릴 지경이다.

꾀죄죄한 옷을 입고 바로 들어온 한 남자. 새까만 얼굴은 주름이 가득하고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사진 pixabay]

꾀죄죄한 옷을 입고 바로 들어온 한 남자. 새까만 얼굴은 주름이 가득하고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사진 pixabay]

안으로 더 들어오지 못하고 문 앞에서 서성이던 그가 천천히 입을 뗀다.

“주인 양반, 내가 뭐 물어볼 게 있어서 그런데 잠깐 이것 좀 봐주면 안 될까?”

바테이블 안에서 나와 그를 향해 걸어간다. 그런데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코를 찌르는 시큼한 냄새가 역하게 다가온다. 애써 참으며 그의 앞에 이르자 그가 품에서 조심스레 뭔가를 꺼낸다.

“이게 위스키라는 술이라고 하던데….”

그가 꺼낸 건 블랙 닛카 위스키. 1956년에 처음 발매되 2016년에 60주년을 맞은 기념으로 출시된 위스키다.

“아, 이건 블랙닛카라는 위스키입니다. 그중에서도 60주년 기념보틀인데 이게 어디서 나셨어요? 한국에서는 팔지 않는 건데….”

그는 올해 초까지 2년 동안 홈리스를 지원하기 위해 발행되는 한 잡지사에서 일했다. 잡지 판매대금의 일부는 홈리스 출신 판매사원에게 돌아간다.

“들어와서 앉으시겠습니까? 가게에 손님이 아무도 없으니까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가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겨 바테이블에 앉았다. 마치 자기가 의자에 앉으면 병이라도 옮길 것 같다는 생각인지 의자에 엉덩이를 반쯤만 걸쳤다.

“편하게 앉으세요. 여기는 bar입니다. 손님이 불편해선 안 되죠.”

“이거 내가 너무 지저분한 꼴이라…. 그냥 이 위스키가 뭔가 궁금했을 뿐인데.”

그는 홈리스들의 삶의 변화를 도모하기 위한 취지의 행사에 한국 대표로 다녀오기도 했다. 우수한 판매성적을 올리고 체력도 좋았던 그는 한국 대표로 뽑힌 뒤에 정말 열심히 연습을 했다.

“인생을 다시 사는 기분이었어. 그때만큼 내 심장이 빠르게 뛴 적은 없었으니까.”

그는 전 세계 홈리스들과 밥도 먹고 관광도 하면서 우정을 쌓았다. 말은 안 통했지만, 선진국이냐 후진국이냐에 상관없이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 사이에 통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특히 일본에서 온 홈리스 한 명과 친해졌는데, 그가 선물로 준 것이 바로 블랙 닛카 60주년 위스키였다.

“자기가 좋아하는 술이라고 주더구먼. 난 줄 게 아무것도 없었는데 말이야. 그리고 그 친구는 같은 노숙인인데도 뭔가 달라 보였어. 책도 열심히 읽더구먼. 그래서 나도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 친구처럼 멋있는 노숙인이 돼보려고 했는데….”

블랫 닛카 60주년 위스키.

블랫 닛카 60주년 위스키.

그는 한국으로 돌아온 지 며칠 되지 않아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다. 서울역에서 같이 자던 노숙인 중 한 명이 칼에 찔려 변사체로 발견됐는데, 누군가 그를 용의자로 지목한 것이다. 철창신세가 된 그는 ‘범죄 혐의없음’으로 풀려났지만, 좌절은 그를 다시 평범한 노숙인 신세로 전락시켰고, 더 나은 삶을 살아보겠다는 의지를 앗아가 버렸다.

“나도 좀 멋있어지면 이 위스키라는 걸 한 번 마셔보려고 했는데 말이야. 그 일본 친구처럼. 그런데 내 신세가 점점 볼썽사나워지니까…. 도저히 이걸 따서 마시질 못하겠더구먼. 그런데 지나가다 이 가게에 위스키라고 쓰여 있길래 이 술에 대해 알기라도 해볼까 하고….”

“괜찮다면, 제가 그 술을 따서 한 잔 드려도 될까요? 위스키는 한 번 따도 맛이 크게 변하지 않기 때문에 오래 보관해서 드실 수 있거든요.”

“그럼 한 잔 줘보시겠나. 나도 사실은 맛이 너무 궁금했어.”

글렌캐런 잔을 꺼내 블랙닛카를 담아 그에게 건넨다. 잔에 코를 대고 천천히 향을 맡는다.

“달콤하구먼. 아주 달콤해. 나에게는 이렇게 달콤할 수가 없네. 참 쓰디쓴 인생이지만 이런 달콤한 술을 매일 마실 수만 있다면 정말 행복하겠구먼.”

“블랙닛카는 ‘노숙인의 위스키’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매우 싼 술입니다. 지금 마시는 건 한정판이라 좀 비싸지만, 원래는 700mL 한 병에 7000원 정도예요. 소주가 330mL니까 소주와 같은 양이라면 절반인 3500원 정도밖에 안 하겠죠? 그래서 일본의 노숙인들은 겨울이 되면 블랙닛카를 한 병 사서 마시며 언 몸을 녹이곤 하죠.”

“아, 그래서 그 친구가 이 술을 나한테 선물했구먼.”

“아마 그분도 말이 통했다면 제가 지금 드리는 말을 하고 싶었을 겁니다.”

위스키 맛을 보던 그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가 살며시 눈을 감고 감상에 젖는다.

“이건, 정말 맛있구먼. 달콤한 초콜릿을 마시는 기분이야. 일본 노숙인들은 이런 좋은 술을 먹는다는 건가? 정말 이런 좋은 술을 마시다 보면 뭔가 생각하는 것도 달라질 것 같구먼. 소주는 영 머리만 아파서….”

“네, 위스키는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술이 아닙니다. 인간을 살리는 술이죠. 그 어원도 ‘생명의 물’이니까요. 어쩌면, 그 일본인 노숙인이 이 술을 누군가에게 선물하려고 스코틀랜드까지 가져간 건, 자기와 같은 처지에 있는 누군가를 살려보겠다는 마음에서 시작된 건지도 모르겠네요. 잔을 드릴 테니 가져가서 쓰세요. 가끔 한 잔 마시면서 다시 일어날 힘을 얻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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