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텔 평정, 10조기업 키웠다…떡볶이 비닐봉지 내밀던 그 형

중앙일보

입력 2021.07.13 06:00

업데이트 2021.07.13 11:47

# 야놀자 입사 2년 차인 김철수(가명) 씨. 밤늦게 야근 중인 그의 어깨를 누군가 툭 쳐 돌아보니 청바지에 면티 차림의 이수진(43) 대표가 검은색 비닐봉지를 들고 서 있다. 이 대표가 “철수씨~ 수고 많아요”라며 건낸 비닐봉지에는 떡볶이와 순대가 가득 들어있었다.

'흙수저' 성공신화 쓰는 이수진 야놀자 대표

서울 강남에 있는 야놀자 사옥에서 3~4년 전만 해도 자주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야놀자 관계자는 12일 “당시 400명이었던 직원 수가 현재 1500명으로 늘었고 방역 문제도 있어 지금은 보기 힘든 장면이지만 몇년 전만해도 이 대표가 떡볶이, 붕어빵, 피자 등을 직접 사와 야근자에게 나눠주곤 했다"고 말했다.

이수진 야놀자 대표. [중앙포토]

이수진 야놀자 대표. [중앙포토]

야놀자, 유니콘 넘어 데카콘 도약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 비전펀드가 8억7000만 달러(약 1조원)의 투자를 결정한 야놀자와 이 대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을 넘어 ‘데카콘’(기업가치 10조원 이상)으로 성장한 야놀자의 이 대표는 전형적인 ‘흙수저’ 출신이다. 4세에 아버지를 여의였고, 6세에 어머니가 집을 떠났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성인이 돼서는 생활비를 아끼려고 숙식을 제공하는 모텔을 맴돌았다. 숙박 관리는 물론 객실 청소까지 도맡아가며 힘든 점을 글로 써 인터넷 카페에 올렸는데 당시의 경험이 야놀자 창업의 밑바탕이 됐다.

청바지에 면티 입는 수수한 이미지 

이 대표는 직원들에게 ‘수수하고 인간적인’ 창업자로 통한다. 이 대표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탄 직원들은 대부분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평소 청바지를 즐겨 입고 옷차림도 수수해서다. 신입사원에게도 깎듯이 존댓말을 사용한다. 익명을 요구한 야놀자의 한 직원은 “회사 사주들은 세련되고 차가운 분위기같은 게 있는데 이 대표는 비싼 옷을 절대 입지 않고 중저가 옷만 입어서인지 그냥 일반 직원 같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담배는 피우지 않지만 술은 종종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전에는 야근하다가 이 대표의 ‘벙개’(번개 같이 빠른 모임) 제의에 ‘치맥(치킨+맥주) 회식’을 한 직원이 적지 않다.

야놀자 초기엔 '이중 수수료' 원성

밖에서 이 대표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모텔업계에선 이 대표에 대한 원성도 높았다. 3년 전만 해도 야놀자는 가맹사업을 했다. 모텔 점주가 일정 비용의 가맹비를 내고 야놀자 회원이 되면 예약 시스템을 적용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가맹비와 예약수수료를 별도로 받는 방식에 대해 ‘이중 수수료’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를테면 100실 규모의 모텔을 소유한 점주는 100실에 대한 가맹비를 내고 매월 실제 예약이 이뤄진 객실 수에 따른 예약 수수료 10%를 또 냈다. 야놀자 가맹점 점주였던 충남 천안에 사는 전모(52)씨는 “공실인 객실에 대한 가맹비를 내고 실제 사용 객실료 4만원 받으면 또 4000원을 떼줬다”며 “여기에 정기 감사에서 지적을 받으면 리모델링도 해야 하니 지금 생각해보면 야놀자 배만 불려준 것 같다”고 말했다. 야놀자는 현재는 가맹사업을 하지 않고 예약 서비스만 제공한다.

모텔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려 

모텔업계의 혁신을 가져왔다는 높은 평가도 나온다. 야놀자가 등장한 2005년을 전후로 모텔 시장 흐름이 확 달라졌다는 것이다. 국내 모텔업계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호황을 맞았다. 정부가 밀려올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숙박시설 마련을 위해 모텔을 대상으로 저금리 대출을 지원했다. 당시 주요 상권의 모텔은 관광호텔 수준의 시설을 갖추게 됐고 공주방, 거울방처럼 객실마다 색다른 주제의 인테리어가 도입됐다. 하지만 2004년 성매매방지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유흥업소와 연계해 음성적으로 영업했던 모텔은 철퇴를 맞았고 손님이 확 줄어 혼란에 빠졌다.

이수진 야놀자 대표. [사진 야놀자]

이수진 야놀자 대표. [사진 야놀자]

이 틈을 뚫고 2005년 모텔 등 중소형 숙박시설 예약업체인 야놀자가 등장했다. 이전에는 모텔 외관만 보고 선택했지만 야놀자 등장 이후 객실 내부 사진에 이용 후기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시기 주요 모텔 이용객이 인터넷 사용에 익숙한 20~30대로 확대됐다. 객실 내부 인테리어뿐 아니라 PC나 게임기 같은 부대시설에 대한 정보까지 공개되면서 모텔은 ‘노는 공간’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했다. 모텔 내부 정보 공개가 음지에 있던 모텔을 양지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행·숙박·놀이 포괄하는 '수퍼앱' 목표  

이 대표의 최종 목표는 여행 관련 모든 정보와 예약 서비스를 제공하는 ‘수퍼앱’이다. 현재 야놀자는 숙박시설은 물론 항공, 고속철도(KTX), 렌터카부터 서핑‧패러글라이딩 같은 액티비티 예약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다. 이 대표는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야놀자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놀이터로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야놀자와 소프트뱅크비전펀드는 오는 16일 전에 투자 관련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야놀자가 이번 투자 계약을 마무리하면 쿠팡처럼 한국이 아닌 미국 증시에서 상장을 추진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야놀자
대표이사 이수진

회사설립 2005년

주요사업 호텔 예약 및 판매 대행

매출액(2020년) 1920억원

영업이익(2020년) 161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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