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만의 웨딩사진···아내에 반지 대신 5만원 건넨 웃픈 사연[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7.13 06:00

업데이트 2021.08.23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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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스튜디오 웨딩사진을 찍은 결혼 35년 차 권재교(왼쪽)·오동수 부부입니다. 김경록 기자

생애 첫 스튜디오 웨딩사진을 찍은 결혼 35년 차 권재교(왼쪽)·오동수 부부입니다. 김경록 기자

저는 결혼 35년 차에 접어든 중년입니다.   

1984년,
출퇴근길에 가끔 스쳐 지나가던 20대 남자 직원이
어느 날 저에게 급히 돈을 빌려 달라고 하더군요.

저는 정말 다급한 사정이 있나 보다 싶어서
5만원을 빌려주었지요.

그 후로 가끔 전화 와서
회사 근처 다방에서 만나자고 하기에
빌린 돈을 갚으려나 보다 하고 나갔지요.

그런데 빌린 돈은 안 갚고
이런저런 세상 사는 이야기만 하고 헤어졌습니다.
몇 번을 그렇게 영등포 폭포수 다방에서 만나다 보니
정이 들었고 2년 정도 지나
가난한 동거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우린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있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보증금 없는 월세 3만원,
방 하나에 부엌 딸린 집을 얻어 살았습니다.

첫 딸을 출산한 뒤,
1986년 때늦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이후 둘째 딸 낳고,
작은 우리 집도 장만했죠.

지금은 두 딸 모두 결혼시키고
손주 5명인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 있네요.

그러다 2019년 11월 29일,
남편이 갑자기 뇌경색으로 쓰러졌습니다.
응급실을 늦게 간 탓에 반신마비가 되었죠.

그래도 재활 치료 열심히 받고
꾸준히 운동해 많이 회복되었답니다.
가끔 여행도 다니고 주변 산책도 하며
소소한 행복을 즐기고 있습니다.

더는 건강이 나빠지지 않고,
딱 이대로 함께 노년을 보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인생 사진 한 컷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그때 빌려준 5만원을 지금까지 받지 못하고 있어요.
여보세요, 오동수 씨!
웬만하면 이젠 5만원 갚으시죠.

권재교 드림

이 계단처럼 굽이굽이 인생길을 함께 걸어온 부부.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 계단처럼 굽이굽이 인생길을 함께 걸어온 부부.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사연을 읽고 컨셉을 리마인드 웨딩 사진으로 정했습니다.

두 분이 결혼할 때 사정이 여의치 않았을뿐더러
당시엔 스튜디오에서 찍는 웨딩 사진이 흔치 않았을 겁니다.

삶의 고난을 함께 헤쳐온 부부에게 더할 나위 없는
인생 선물이 되리라 판단한 겁니다.

사연 당첨 소식을 전화로 전하며
웨딩 사진 컨셉을 제안했습니다.
아내는 남편과 상의를 한 뒤
가부를 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다음날까지 연락이 없었습니다.
다시 전화했습니다.
아내는 남편 설득에 실패했다며,
남편 몸이 불편하니 집 주변에서 잘 찍어보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틀 뒤, 아내로부터 다시 문자가 왔습니다.
“웨딩 사진이 좋을 거 같네요.
남편을 설득해볼 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하루 뒤, 급기야 기다리던 소식이 왔습니다.
웨딩 사진을 찍겠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컨셉이 확정되기까지
꽤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역시 아내를 이길 수 있는 남편은 없다는 게 증명됐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눈부신 웨딩드레스와
멋들어진 턱시도를 입고서
스튜디오 카메라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사진 찍는 내내 부부는 미소를 잃지 않았습니다. 또 언제 이렇게 찍어보겠냐며 마냥 행복한 모습입니다. 김경록 기자

사진 찍는 내내 부부는 미소를 잃지 않았습니다. 또 언제 이렇게 찍어보겠냐며 마냥 행복한 모습입니다. 김경록 기자

촬영에 앞서 아내가 보낸 사연을 봤는지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남편은 금시초문이라 답했습니다.

이에 종이에 프린트된 사연을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글자가 너무 작아 못 읽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직접 읽어드릴 것을 제안했습니다.

아내가 사연을 담담하게 읽어내려갔습니다.
차마 아내 얼굴을 바라보지 못하고
조용히 듣고 있던 남편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덩달아 아내도 같이 울었습니다.
아픔을 함께 겪고 이겨낸 고마움과 미안함의 눈물인 겁니다.

얼른 화제를 돌려야 할 상황이 돼버렸습니다.
애써 한 신부 화장이 지워지면 낭패입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우스개를 했습니다.
“오늘 여기서 웬만하면 5만원 갚으시죠.
37년간이나 안 갚은 5만원이요.”

“허허, 집 사주고 했으니 수천 배로 갚은 거죠.”
“그 5만원과 집은 다른 거죠. 빌린 건 빌린 거니 갚으셔야죠.”
“허 참! 이거 어쩌나?”

빌린 지 37년,
이자가 불어도 엄청나게 불었어야 할 그 ‘5만원’
과연 남편은 갚았을까요?

정답은 아래 사진에 있습니다.

참!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는 두 분 사연에 공감한
〈조슈아벨브라이덜〉에서 협찬했습니다.

남편은 드디어 37년 만에 5만원을 갚았습니다. 무릎을 꿇고 프러포즈하는 자세를 취하며 불어난 이자를 대신했습니다. 김경록 기자

남편은 드디어 37년 만에 5만원을 갚았습니다. 무릎을 꿇고 프러포즈하는 자세를 취하며 불어난 이자를 대신했습니다.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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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에도 여러분의 소중한 사연을 받습니다.

어떠한 사연도 좋습니다.
소소한 사연이라도 귀하게 모시겠습니다.

가족사진 한장 없는 가족,
오랜 우정을 쌓은 친구,
늘 동고동락하는 동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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