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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족 생기고 온라인 감상도…전국 달구는 ‘이건희 컬렉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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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달 29일부터 오는 8월 29일까지 두 달간 이건희 컬렉션 21점을 전시 중인 대구미술관에서 관람객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사진 대구미술관]

지난달 29일부터 오는 8월 29일까지 두 달간 이건희 컬렉션 21점을 전시 중인 대구미술관에서 관람객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사진 대구미술관]

지난 11일 오전 10시 대구 수성구 대구미술관 앞. 오는 8월 29일까지 두 달간 ‘이건희 컬렉션’ 21점을 소개하는 특별전 ‘웰컴 홈: 향연(饗宴)’을 보려는 관람객들이 길게 줄을 섰다. 미술관 측에 따르면 이날 대구미술관에는 하루 최대 관람객 수인 1500명이 관람 예약을 했다. 문현주 대구미술관 홍보팀장은 “이건희 컬렉션 21점이 지난 4월 대구에 기증됐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전시를 묻는 문의 전화가 쏟아지기 시작했다”며 “전시 시작 후 2차례 진행된 주말 전시가 모두 매진될 정도”라고 말했다.

‘이건희 미술관’의 건립지를 놓고 논란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대구와 광주 등에서 일부 작품을 기증받아 전시 중인 ‘이건희 컬렉션’의 인기가 전국 곳곳을 달구고 있다. 이건희 미술관은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모은 2만3000여 점의 미술품을 전시할 시설이다.

대구미술관은 이건희 컬렉션 공개 12일 만에 관람객이 1만명을 돌파했다. 지난달 29일 전시 첫날 하루 780명의 최대 관람객을 기록한 뒤 지난 1일부터 관람객 수를 1500명으로 늘렸는데도 매진사례가 이어지며 1만777명이 찾았다. 이건희 컬렉션 전 일주일간 1292명 수준이던 대구미술관 관람객은 컬렉션 공개 후 6277명으로 약 5배 증가했다.

최은주 대구미술관 관장은 “중장년 관람객이 크게 늘어난 게 이번 컬렉션 특징”이라며 “아마도 삼성의 창업과 성장의 토대가 된 대구 제일모직이나 삼성라이온즈 등 삼성과 관련된 추억을 상기하려는 노년층들이 자식들과 함께 작품을 보러 오시는 게 많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광주 북구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아름다운 유산_이건희 컬렉션, 그림으로 만난 인연' 전시를 준비하는 미술관 관계자가 김환기의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광주 북구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아름다운 유산_이건희 컬렉션, 그림으로 만난 인연' 전시를 준비하는 미술관 관계자가 김환기의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건희 컬렉션을 전시 중인 다른 지역 미술관에서도 관람 열기가 뜨겁다. 이 회장 유족은 지난 4월 서울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2만3000여 점, 광주시립미술관에 30점, 전남도립미술관에 21점, 대구미술관에 21점, 강원도 양구 박수근미술관에 18점, 제주 이중섭미술관에 12점을 기증했다. 현재 대구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양구 박수근미술관, 서울 덕수궁미술관에서 관련 전시를 진행 중이다.

광주시립미술관은 지난달 29일부터 개막한 ‘아름다운 유산_이건희 컬렉션 “그림으로 만난 인연”’ 전시를 오는 8월 15일까지 온라인 예약을 통해 접수받고 있다. 전시 중인 이건희 컬렉션은 김환기·오지호·이응노·이중섭·임직순 작가의 작품 30점이다.

미술관 측은 이건희 컬렉션을 보려는 관람객들이 급증하자 입장 인원을 조정하기도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지침에 따라 기존 하루 6회, 300명(회당 50명)이던 관람객을 지난달 1일부터 하루 8회, 480명(회당 60명)으로 늘렸다. 광주시립미술관 관계자는 “이건희 컬렉션을 전시하는 동안 관람객이 급증해 코로나19 방역 상황을 최대한 반영해 인원과 전시 횟수를 소폭 늘린 것”이라고 말했다.

강원 양구군 박수근미술관에 설치된 고 이건희 삼성 회장에 대한 감사 글귀 뒤로 삼성 측이 기증한 작품들이 비치고 있다. 연합뉴스

강원 양구군 박수근미술관에 설치된 고 이건희 삼성 회장에 대한 감사 글귀 뒤로 삼성 측이 기증한 작품들이 비치고 있다. 연합뉴스

강원도 양구 박수근미술관은 지난 5월 6일부터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한가한 봄날, 고향으로 돌아온 아기 업은 소녀’를 열고 있다. 특별전이 시작되면서 주말과 휴일엔 300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고 있다.

이번 특별전에는 이건희 회장의 유가족이 기증한 박수근 1962년 작 ‘아기 업은 소녀’, 1964년 작 ‘농악’, 1950년대 작 ‘한일’(閑日ㆍ한가한 날), 1963년 작 ‘마을풍경’ 등 유화 4점과 드로잉 14점 등 18점이 전시되고 있다. 이와 함께 기존에 박수근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던 박수근 화백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특별전은 10월 17일까지다.

특별전 열기가 가열되면서 지난 5월 한 달간 박수근미술관을 찾은 관람객은 총 5235명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1744명)보다 3배가량 증가한 수치다. 엄선미 박수근미술관장은 “인근 강원도 지역뿐만 아니라 대구, 김해, 부산, 제주도 등 전국 각지에서 관람객이 찾아오고 있어 자원봉사자들이 미술관 운영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적으로 전시가 열리면서 이건희 컬렉션을 모두 보기 위한 투어 족도 생기는 추세다. 대구미술관의 경우 인터넷 예매 사이트를 통한 분석 결과 관람객의 82%가 대구·경북에서, 18%가 타 지역에서 온 것으로 파악됐다.

대구미술관 문현주 팀장은 “이건희 컬렉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타 지역 전시를 찾아가는 전국 투어 족도 미술관 내에 틈틈이 보인다”며 “또 코로나19로 실제 오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온라인에 올린 전시 설명 영상도 조회 수가 높다”고 말했다.

실제 대구미술관에서는 이건희 컬렉션의 작가 및 작업 세계를 소개하는 영상 3편을 시리즈로 제작해 유튜브 공식 채널과 누리집 내 디지털 미술관에 게재했다. 영상 조회 수는 8000회를 넘을 정도로 관심이 뜨겁다.

한편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7일 이건희 미술관의 건립 최종 후보지로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와 용산구 용산가족공원 인근 땅 2곳을 결정했다. 지난 4월 이 회장 유족이 기증한 작품 2만3000여 점의 감정가는 3조원, 시가는 10조원가량으로 추정된다.

황희 문체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 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 방안’을 발표하면서 “전문성을 갖춘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인근에 들어서야 보존과 전시에 필요한 경험과 인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접근성도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어 “연간 한 두 달 정도 2000~2500점은 지역 순회 전시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그동안 이건희 미술관 유치전에 뛰어들었던 지자체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부산시는 보도자료를 통해 “(정부의 후보지 선정 결과는) 지역을 무시한 것이고, 최소한의 공정한 절차도 거치지 않은 일방적 결정”이라며 “깊은 유감을 표함과 동시에 강력히 반발한다”고 밝혔다.

대구시도 “정부가 강조해 온 문화 분권, 균형발전 정책 기조에 역행하는 결정”이라며 반발했다. 경남 창원과 진주시는 발표 철회를 요구하며 “수도권 집중 현상을 더욱 부채질하는 망국적 결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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