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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아들의 그림값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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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박현영 기자 중앙일보 경제에디터
박현영 워싱턴특파원

박현영 워싱턴특파원

아버지는 대통령이다. 아들은 예술을 한다. 아들은 아버지가 현직에 있을 때 자신이 그린 작품을 팔고 싶어한다. 조 바이든(78) 미국 대통령과 차남 헌터(51) 이야기다. 헌터는 올가을 뉴욕의 한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연다. 생애 첫 개인전이다. 그는 예일대 로스쿨을 나온 변호사지만 헤지펀드 투자자, 벤처투자가, 로비스트, 우크라이나 에너지 기업 이사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쳐 최근 전업 화가가 됐다. 로스앤젤레스 자택 차고를 개조한 스튜디오로 매일 오전 5시에 ‘출근’해 그림을 그린다.

갤러리 홈페이지는 그를 소개하면서 “바이든은 글과 시각 예술에 자신의 예술 경력을 바친 평생 예술가”라고 적었다. 바이든 대통령과의 관계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소개 글이 아예 헌터를 ‘바이든’으로 부른다. 작품 가격은 7만5000달러(약 8600만원)에서 50만 달러(약 5억7350만원)로 예상된다. 첫 전시회를 여는 ‘무명’ 아티스트에게는 이례적인 가격이라고 화랑가는 평가한다. 대통령 아들 후광이 없었다면 책정받기 어려운 가격이라는 의심의 눈초리도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13년 부통령 취임 선서하는 모습을 차남 헌터가 지켜보고 있다. 오른쪽은 헌터 바이든 작품 ‘019’. [EPA=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13년 부통령 취임 선서하는 모습을 차남 헌터가 지켜보고 있다. 오른쪽은 헌터 바이든 작품 ‘019’. [EPA=연합뉴스]

고심 끝에 백악관이 내놓은 윤리적 해법은 작품 거래와 관련된 모든 것을 비밀에 부치는 것. 갤러리 측은 입찰자와 최종 낙찰자 정보를 헌터와 행정부에 알리지 않기로 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우리도 알지 못하고, 헌터 바이든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 (행정부에) 영향력을 끼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바이든 부자를 향하는 로비가 차단될 수 있을까. 미술 거래의 특성상 구매자가 최종 소유자가 아닌 경우가 많다. 수 억원 주고 구입한 작품을 창고에 보관만 할까. 외국 정부가 백악관 환심을 사기 위해 구입할 수도 있지만, 협박용으로 쓸 수도 있다. 바이든이 적성국으로 간주하는 러시아나 중국 부자가 구매한 뒤 이 사실을 흘려 바이든 대통령을 압박할 수도 있다.

백악관은 모든 대통령 자녀는 직업을 추구할 권리가 있으므로 작품 판매 자체를 막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보수 언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아버지가 현직에 있는 동안 전시회를 미룰 수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차라리 모든 걸 투명하게 공개하는 게 차선책이라고 제안한다. 누가 얼마에 샀는지 공개하고, 그와 대통령의 관계를 상시 감시하는 체계 말이다.

내년 중간선거를 앞둔 백악관으로서는 악재가 될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왜 아들을 말리지 못했을까. 헌터가 미술전문지와 한 인터뷰에 그 답이 있다. 대통령이 아들의 예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헌터는 “아버지는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사랑한다. 그쯤 해 두겠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