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권순우의 이코노믹스

고령화와 재정 형편 고려, 취약계층에 집중 지원해야

중앙일보

입력 2021.07.13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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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재난지원금과 기본소득의 경제학

권순우 한국자영업연구원장

권순우 한국자영업연구원장

한국의 재정은 정말 건실한가? 코로나 팬데믹의 경제 충격이 너무 치명적이다 보니 이를 상대하기 위한 대책들도 과거에 볼 수 없을 정도로 파격적이다. 특히 대책으로서 재정의 활용이 압권이다. 이전 같으면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던 재난지원금이 네 차례나 집행되고 그것도 모자라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또 지급하자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파격적인 지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고령화 가속으로 재정 건전성 악화
근로자와 자영업자 소득 격차 확대
재난지원금은 선별 지원이 바람직
기본소득, 한국 재정 현실에 부적합

이처럼 재정이 위기극복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을 두고 논란이 많다. 거시적 측면에서는 재정 건전성 논란이고, 미시적 측면에서는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논란이다. 여러 의견과 방안이 있을 수 있지만, 다음의 두 가지 원칙을 지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첫째 원칙은 적극재정이다. 여기서 적극재정이란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 재정을 활용해 위기를 극복하고 불평등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정의 적극적인 활용은 현실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타당하다. 현실적인 측면에서 보면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피해 규모가 워낙 크고 광범위해서 재정의 적극적 개입 없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논리적인 측면에서도 코로나 팬데믹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한 정부 차원의 규제로 인해 민간에 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 피해를 보전하는 것이 옳다.

고령화가 재정 건전성의 아킬레스건

권순우의 이코노믹스

권순우의 이코노믹스

둘째 원칙은 선택적 재정이다. 한국은 재정과 관련해 다른 나라에는 없는 큰 약점이 있다. 바로 급격한 인구 고령화다. 대한민국의 고령화 속도는 엄청나다. 예측을 계속 갈아치워야 할 정도로 가속도가 붙고 있다. 고령화는 곧 복지비 지출의 증가를 의미한다.

일본의 사례를 들어보자. 일본의 국가부채비율은 1990년 60%에서 2019년 230%로 대폭 증가했는데 국가부채 급증의 가장 큰 요인은 바로 고령화로 인한 사회복지비 지출 급증에 있다. 이 기간에 일반회계 세출에서 차지하는 사회복지비 비중은 16.6%에서 33.0%로 두 배로 높아졌다〈그래프1〉. 같은 기간 중 일본의 고령화율은 12%에서 28%로 크게 높아졌다. 한국도 지금 과거 일본이 겪었던 고령화 과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아니 속도 면에서는 일본보다 더 빠르다. 당연히 복지비 지출도 급격하게 증가할 것이고 국가부채비율 역시 크게 상승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국가부채비율이 낮아 재정이 건전하다는 주장은 현시점에서 보는 단견적 생각이다. 지금과 같은 고령화 추세에 극적인 변화가 없다면 국가부채비율은 필연적으로 높아질 것이다.

일본의 고령화와 세출입 규모 및 사회복지비 지출 비용

일본의 고령화와 세출입 규모 및 사회복지비 지출 비용

정리하면 적극재정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고령화 속도를 고려하면 적극재정을 펴는 데 한계가 있는 것도 분명하다. 재정의 역할 확대와 재정 건전성 유지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서는 적극재정을 펴되 필요한 곳에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선택적 재정이 필수적이다. 적극재정의 전제 조건이 선택재정인 셈이다.

‘선택적 적극재정’ 운용이 답이다

연장 선상에서 재정과 관련된 다음의 두 가지 논쟁에 대한 답 또한 자명하다.

첫째, 코로나19 재난지원금 논쟁이다. 전 국민 보편지원이 옳으냐, 피해계층 선별지원이 옳으냐 하는 이슈다. 당연히 재난지원금도 재정 여력을 고려할 때 피해계층에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선별지원이 옳다. 특히 재난지원금이 선별지원이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정부의 코로나19 확산 억제 대책으로 득과 실을 보는 부문이 명확히 갈렸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산 억제 대책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은 자영업을 중심으로 한 생활서비스업 부문이다. 반면 자영업 부문의 희생 위에 경제의 다른 부문은 상대적으로 충격을 덜 받을 수 있었다.

이런 현실은 바로 소득 양극화 확대에서 확인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자영업자와 무직자 등을 포함한 비임금 노동자 가구의 사업소득은 큰 폭으로 감소했지만 임금노동자 가구(2인 이상)의 임금소득은 오히려 증가세를 유지했다. 그렇지 않아도 심각했던 임금 노동자와 비임금 노동자 간의 소득 격차가 더욱 크게 벌어졌다〈그래프2〉.

임금노동자,임금노동자외 가구 월평균소득 비교

임금노동자,임금노동자외 가구 월평균소득 비교

그렇다면 득을 보는 부문에서 실이 생긴 부문으로 소득 이전이 이루어지는 것이 합리적이다. 민간에서 직접 이런 이전이 이루어지는 것은 어려우니 정부가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재정을 통한 선별적 소득 보전이다. 선별의 과정이 행정적·정치적으로 부담이 된다고 해서 선별을 포기하고 피해가는 것은 직무유기 아니면 무능함을 자인하는 것에 불과하다.

기본소득 도입하면 취약계층 혜택 줄어

둘째, 기본소득 논쟁이다. 충분히 의미 있는 수준의 전 국민 기본소득이 지급되기 위해서는 재정 여건상 기존의 선별적 복지혜택을 줄여야 한다. 그러면 취약계층이 받던 복지혜택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기존의 복지체계를 유지하면서 의미 있는 수준의 기본소득을 지급할 수 있다는 주장은 잘못된 진단이다. 앞서 논의한 대로 지금의 복지체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고령화 열차에 탄 한국의 국가부채비율은 지속해서 높아질 것이다. 지금 국가부채 비율이 낮은 것은 복지 수준이 낮아서라기보다 고령화의 영향이 온전히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근래의 기본소득 논의는 4차 산업혁명의 성숙으로 인공지능(AI)이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상황을 상정해서 확산된 측면이 있다. AI가 사람의 노동을 대체해 충분한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전제하에 노동의 기회가 사라진 사람에게 기본소득을 주어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시간이 걸리는 훗날의 얘기다. 지금 기본소득 논의가 가능한 곳은 석유 등 부존자원 수입이 인구에 비해 엄청나게 많거나 그동안 쌓아놓은 부가 상당한 나라들에 국한된다. 한국이 그 어느 경우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하다.

재정의 이런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재정논쟁들을 보며 20~30대 MZ 세대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앞으로 정작 비용을 대야 할 사람은 자신들인데 퍼다 쓸 궁리들만 하고 있다고 불안해하지 않을까? 이런 불안이 정치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해 줄 정치세력을 찾는 것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젊은 세대의 정치 관심 증가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재정 운용의 원칙을 제대로 정립하는데 자극제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기존 복지 체계 유지도 버거운 게 현실

자영업자와 임금노동자 간의 소득 양극화가 가속되고 있다. 임금노동자 가구의 임금소득은 최저임금 급등 등의 영향으로 지난 몇 년간 많이 증가했다. 심지어 코로나 팬데믹의 충격이 거셌던 지난해조차도 임금소득은 증가세를 유지하는 하방 경직성을 보였다.

반면에 자영업자와 무직자를 포함한 비임금 노동자 가구의 사업소득은 최저임금 급등과 코로나 팬데믹의 충격이 연이어지면서 큰 폭으로 감소했다. 그렇지 않아도 차이가 큰 임금노동자와 비임금 노동자 간의 소득 격차는 더욱 크게 벌어졌다. 임금노동자 가구의 임금소득 대비 비임금 노동자 가구 사업소득은 2017년 56.7%에서 2020년에는 43.1%로 더욱 크게 떨어졌다. 금액으로 따지면 월평균 소득 격차가 2017년 190만원에서 2020년 283만원으로 93만원이나 더 벌어졌다. 소득 양극화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지금 시급하고도 중요한 것은 기본소득 논쟁이 아니라 이렇게 더 벌어진 격차를 어떻게 원상으로 회복시키느냐는 점이다. 현 상황을 방치하고서는 기본소득을 준다 한들 그 격차를 좁히지 못한다.

소득 양극화를 완화하고 고령화에 대응하는 것만으로도 한국의 재정은 벅차다. 일본의 사례를 다시 들어보자. 1990년 대비 2019년 일반회계 세출 규모는 32조엔 증가했다. 그런데 이렇게 늘어난 세출 규모의 69%에 달하는 22조엔이 사회복지비 지출 증가분이었다. 여타 부문에 쓰이기 위해 늘어난 금액은 2조엔에 불과하다. 고령화에 대응한 복지비 지출 증가만으로도 재정 여력이 완전히 소진된 것이다. 고령화 정도와 속도를 고려하면 한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기본소득은 언감생심이고 기존의 복지체계를 충실히 유지하는 것만도 버거운 것이 한국 재정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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