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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호정의 왜 음악인가

주커만은 왜 그랬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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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호정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호정 문화팀 기자

김호정 문화팀 기자

‘못된 사람’이라 욕하고 끝내면 간단하지만, 어딘가 이상하다. 지난달 25일 미국 뉴욕에서의 일이다. 바이올리니스트 핀커스 주커만(73·사진)이 줄리아드 음악원 초청으로 온라인 공개 레슨을 했다. 두 명을 가르치다가 주커만이 이렇게 말했다. “거의 완벽한 연주였다. 이건 칭찬이다. 하지만 어떻게 ‘표현’할지 생각해봐야 한다. 노래를 불러보라. 한국인들이 노래하지 않는다는 건 안다. 유전자에 없다.”

가르침을 받던 연주자들은 아시아계였다. 둘 중 하나가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일본계 혼혈”이라고 하자 주커만은 “일본인 역시 노래하지 않는다”고 대꾸했다. 이어 특이하게 노래하는 흉내를 내며 “이건 노래가 아니고, 바이올린도 기계가 아니다”라고 했다. 이 발언은 음악 뉴스를 전하는 온라인 매체 ‘바이올리니스트닷컴’이 알리며 화제가 됐고, 줄리아드 음악원과 주커만이 잇따라 사과했다.

바이얼리니스트 주커만

바이얼리니스트 주커만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의 망언으로 보기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주커만은 1967년 레벤트리트 콩쿠르에서 정경화와 동시에 우승했고, 같은 이반 갈라미안 교수에게 배웠다. 한국에도 자주 왔고, 한국의 젊은 연주자 공개 레슨을 했다. 2019년 서울에서 음악 영재들을 가르쳤던 현장에 대해 음악 잡지 『객석』은 “살갑고 세심한 가르침”이었다고 전했다. 또 2016년엔 10세 바이올리니스트 고소현과 연주하고 “기적 같은 재능”이라며 지금까지도 가르치고,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한국 연주자들의 ‘노래’를 확인했을 기회는 차고도 넘친다.

스탠퍼드대학교의 제니퍼 에버하트 교수는 『편견』(스노우폭스북스)에서 차별의 메커니즘을 설명한다. 많은 정보를 처리하는 인간의 효율성을 높이는 본능적·신경생물학적 현상이 편견이다. 빨리 구분 짓고 도망가거나 맞서 싸우도록 하는 본능, 편견은 악의가 없어도 생기고 기술이 발전해 판단 속도가 빨라지면 더 단단해지기까지 한다. 문명사회에서 편견은 여전히 원시적인 이유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부모님을 둔 주커만이 인종차별주의자라거나, 평소에도 아시아계 연주자들을 무시해왔다고 볼 근거는 희박하다. 다만 무의식의 분류작업을 해왔다고는 볼 수 있다. 기술이 완벽하고, 음악성은 그에 비해 덜한 아시아계 연주자들의 특징에 대해서 말이다. ‘열정이 느껴지는 러시아 피아니스트’ 또는 ‘오로라가 떠오르는 아이슬란드 작곡가의 곡’이라는 표현이 얼마나 보편적인지 생각해보면 이해가 된다. (좋은 말이라도 편견이다.)

에버하트는 편견이 강력한 본능인 만큼 극복 노력은 막대하고, 따라서 모두 같이 해야 한다고 결론 내린다. 앞뒤가 안 맞는 주커만 에피소드도 그걸 증명한다. 한 연주자의 못된 망언이라기보다는 모두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