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판 곡성, 신내림 대물림되는 무당 가족의 잔혹사

중앙일보

입력 2021.07.13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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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영화 ‘랑종’은 태국 산골마을에서 신내림이 대물림되는 무당 가문이 겪는 세달간의 파국을 그린 영화다. [사진 쇼박스]

영화 ‘랑종’은 태국 산골마을에서 신내림이 대물림되는 무당 가문이 겪는 세달간의 파국을 그린 영화다. [사진 쇼박스]

나홍진(47) 감독이 프로듀서로 나선 태국 공포 영화 ‘랑종’(감독 반종 피산다나쿤)이 예매율 1위에 올랐다. 14일 개봉을 이틀 앞두고서다.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의 12일 낮 12시 기준 예매량은 5만 7000여장. 수도권에 적용된 4단계 거리두기 속에서도 선전하는 분위기다.

나홍진 제작 ‘랑종’ 내일 개봉
태국 현지 촬영, 무속인 30명 만나
일상 스며든 초현실적 공포 담아
“무섭다” 입소문에 예매율 1위

‘랑종’은 태국 산골 마을에 사는 한 무당 가문이 겪는 세 달간의 파국을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태로 담았다. 대대로 조상신인 ‘바얀 신’을 모셔온 무당 ‘님’(싸와니 우툼마)은 자신을 취재하러 온 촬영팀과 집안 장례식에 갔다가 조카 ‘밍’(나릴야 군몽콘켓)에게서 이상한 기운을 느낀다.

이 영화는 나 감독이 5년 전 680만 관객이 본 공포영화 ‘곡성’(감독·각본 나홍진) 이후 일광(황정민) 캐릭터의 전사를 그려보고자 속편 격으로 구상한 이야기다. 그가 원안과 제작·기획을 맡았고, 연출은 ‘셔터’(2004) ‘샴’(2007) 등 세계적 인기를 끈 태국 공포영화 감독 반종 피산다나쿤(42)에게 의뢰해 태국이 무대인 독특한 무속공포가 탄생했다. 투자·배급은 한국의 쇼박스, 제작은 나 감독의 영화사 노던크로스가 맡았다. 태국 영화사 GDH 559가 현지 제작사로 함께했다.

귀신이 씌는 캐릭터 밍(사진 가운데). 신인 배우 나릴야 군몽콘켓이 연기했다. [사진 쇼박스]

귀신이 씌는 캐릭터 밍(사진 가운데). 신인 배우 나릴야 군몽콘켓이 연기했다. [사진 쇼박스]

‘랑종’은 태국말로 무당이라는 뜻. 영화의 주제의식은 ‘곡성’을 잇는다. 일상적인 공간에 초현실적 공포를 침투시켜 평범한 인간들의 원죄를 들추고, 신의 존재와 믿음의 본질을 되묻는다. 동생 님과 달리 무당의 운명을 비켜나 잘 사는 줄 알았던 밍의 엄마 노이(씨라니 얀키띠깐)는 알고 보면 시댁의 업보를 죄의식 없이 대물림해온 인물이다. 딸 밍이 그 가혹한 대가를 쓰나미처럼 뒤집어쓴다. 갈수록 처참해지는 밍을 보노라면 ‘곡성’에서 어린 효진(김환희)이 아버지 종구(곽도원)에게 눈을 까뒤집으며 하던 “뭣이 중헌디”란 명대사가 떠오른다.

나홍진

나홍진

8일 화상 인터뷰로 만난 피산다나쿤 감독은 “태국말 영화를 한국의 넓은 시장에 선보이게 돼 영광”이란 말부터 했다. “나홍진 감독은 저의 아이돌”이라 밝힌 그는 “5년 전 방콕 예술센터 문화축제에서 ‘추격자’ 상영회 때 만나 제가 만든 영화 DVD를 드렸는데, 이렇게 연락해주실 줄 몰랐다”면서 “‘랑종’은 제가 접해보지 않은 새로운 차원의 영화였다”고 했다. 또 “한국의 천재 감독이 지켜본다는 부담감에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그는 영화 주 무대인 북동부 이산 등 1년간 태국 전국을 다니며 무당 30여명을 만났다. 피산다나쿤 감독은 “태국 무속신앙을 잘 몰랐는데, 태국 돈 39바트(한국 돈 1000원) 받고 질병을 치료해준 무당도 만났다”면서 “진짜인지 아닌지보다 지역 주민에겐 정신과 의사 같은 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태국은 마을마다 믿는 신이 다르고, 귀신 모시는 신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교회나 중국 절도 있다”고 전했다.

피산다나쿤

피산다나쿤

2일 시사회 후 기자간담회에서 나 감독은 “‘곡성’을 준비할 때 무속인들이 기도 올리는 절에서 몇 달 같이 지냈는데, 귀신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피산다나쿤 감독은 “(귀신의 존재는) 절대 믿지 않는다”고 했다.

‘랑종’의 순제작비는 23억원으로 한국영화론 저예산이지만, 통상적인 태국영화의 두 배 수준. 덕분에 다양한 로케이션 촬영으로 리얼리티를 살릴 수 있었다고 했다.

페이크 다큐 형식은 나 감독이 원안부터 택한 것. 피산다나쿤 감독은 “태국의 무속신앙을 직접 파워풀하게 느끼게 하는 데 적절하다고 판단했다”면서 “다른 공포영화와 차별화를 위해 무당이 되려는 한 여성의 인생을 최대한 실제에 가깝게 묘사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했다.

이를 위해 태국에서도 대중에게 얼굴이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을 기용했다. 무당 님 역의 싸와니 우툼마는 연극 무대의 베테랑, 밍 역의 나릴야 군몽콘켓은 수차례 오디션으로 발탁한 신인이다. 군몽콘켓은 촬영 중 체중을 10㎏ 감량하며 귀신에 씐 밍의 극과 극 변화를 표현했다. 밍이 귀신에 빙의한 동작들은 ‘곡성’ ‘부산행’에 참여한 박재인 안무가가 신체 부위별로 몸동작을 디자인한 비디오를 만들어 현지에 보낸 것을 참고했다. 배우 연기나 촬영 모두 장면의 큰 틀만 잡고 디테일한 대사나 동선은 즉흥적으로 촬영하며 수정해 나갔다고 한다.

등급은 청소년관람불가. 후반부 악귀로 인한 표현 수위가 극단으로 치닫는다. “다수의 공포영화가 시각과 청각으로 두려움을 끌어낸다면, ‘랑종’은 촉각적으로 다가온다”(평론가 이동진)는 등의 호평에 ‘무섭다’는 입소문이 나며, 롯데시네마는 상영관에 불을 켜놓고 관람하는 ‘‘랑종’ 겁쟁이 상영회’까지 내놨다. 극 중 여성의 신체를 부각하는 방식, 반려견 학대 장면 등은 지나치다는 반응도 있다.

피산다나쿤 감독은 “절대 잔혹함이나 선정적인 장면을 팔아서 영화를 흥행하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지 않았다. 수위 또한 영화 내용과 메시지 전달에 꼭 필요한 장면에 맞춰서 구현했다”고 강조했다. 나 감독은 간담회에서 “(피산다나쿤) 감독님께 제가 동조만 했다면 아마 상영이 안 됐을 것이다. 좀 자제하면서 연출과 사운드로 효과의 극대화를 노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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