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관에 평생 바친 의사…환자 보면 휴대폰 번호부터 준다

중앙일보

입력 2021.07.12 18:03

업데이트 2021.07.12 18:16

33년째 복지관에서 근무중인 이미경 재활의학과 의사가 12일 오후 서울 강동구 시립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33년째 복지관에서 근무중인 이미경 재활의학과 의사가 12일 오후 서울 강동구 시립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이미경(63)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재활의학과 전문의는 자신을 찾아온 환자들에게 항상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준다. 복지관을 찾아오는 환자들이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전화하라는 뜻에서다. 그는 진료 시간을 제외하면 새벽이나 늦은 밤에서 전화로 환자와 상담한다. 새벽 2~3시에 전화가 온 적도 있다. 복지관을 방문하지 못하는 중증 장애인을 위해서 왕진도 꺼리지 않는다.

JW그룹의 공익재단인 중외학술복지재단은 장애인 재활 치료를 위해 일평생 헌신한 의사 이미경 씨를 제9회 성천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12일 밝혔다.

이미경 전문의, 제9회 성천상 수상  

이미경 서울시립장애인종합복지관 재활의학과 의사는 1988년 첫 직장으로 복지관을 택한 이후 복지관에서 사실상 33년을 근무했다. 김경록 기자

이미경 서울시립장애인종합복지관 재활의학과 의사는 1988년 첫 직장으로 복지관을 택한 이후 복지관에서 사실상 33년을 근무했다. 김경록 기자

의사의 대부분은 주로 병원·종합병원·대형병원에서 일하거나, 본인이 직접 개원한다. 이미경 전문의는 독특하게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1988년 첫 직장으로 복지관을 택했다. 가톨릭대가 재활의학과 전공의 제도를 처음 도입한 건 1985년. 당시로써는 이 대학이 배출한 재활의학과 전문의가 드물어 마음만 먹었다면 대학에서 교수로 자리 잡는 것도 어렵지 않았던 시기다.

복지관을 선택한 이유로 이미경 전문의는 “인생관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부친은 인천시 중구에서 이내과를 개원했었다. 당시 아버지 병원에 가난한 사람들이 찾아오면 종종 무료 진료를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 모습을 보고 자란 이씨도 아프리카 같은 오지에서 의료 활동을 펼치는 의사가 되자고 다짐했다.

이미경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재활의학과 전문의가 12일 자신의 집무실에서 진료 중인 모습. 이미경 전문의는 자신을 찾아온 환자들에게 항상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준다. [사진 JW중외제약]

이미경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재활의학과 전문의가 12일 자신의 집무실에서 진료 중인 모습. 이미경 전문의는 자신을 찾아온 환자들에게 항상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준다. [사진 JW중외제약]

이상과 현실은 괴리가 있었다. 대학 입학 직후 카톨릭학생회가 강원도에서 진행하는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그런데 주먹만 한 쥐가 튀어나오는 모습을 보고 기겁을 했다. 그는 “나 스스로 행복하지 않은데 남들을 위해 산다는 게 떳떳하지 못하게 느껴졌다”며 “비록 슈바이처 같은 위인은 못되더라도, 내게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의사가 되자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차선으로 선택한 길이 재활의학이었다. 재활의학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직후인 1988년 이씨는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상근 의사를 자임했다. 이후 미국 연수 기간(2년)을 제외하면 평생 복지관에서 일했다. 연수 직후 의사 정원이 없던 시기엔 제주도장애인복지관에서 일했다. 현재 전국에서 유일한 복지관 상근 의사다. 2018년 복지관에서 정년퇴임했지만 이후에도 복지관의 요청으로 현재까지 복지관에서 촉탁 의사로 근무 중이다.

전국 유일 복지관 상근 의사

이미경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은 어린이 환자가 이 전문의에게 그려준 그림. 그의 집무실에는 이처럼 어린이 환자가 그려준 그림과 편지가 걸려있다. 김경록 기자

이미경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은 어린이 환자가 이 전문의에게 그려준 그림. 그의 집무실에는 이처럼 어린이 환자가 그려준 그림과 편지가 걸려있다. 김경록 기자

병원과 복지관 근무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미경 전문의는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가 주로 의료 업무를 담당한다면, 복지관 의사는 다양한 전문가들과 동시에 전인재활 치료법을 접목할 수 있다”며 “복지관 선생님들이 밥을 먹다가도 머리를 맞대고 재활치료 아이디어를 상의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전인재활은 사회복지사·언어치료사·임상치료사 등과 의사가 다 같이 팀을 이뤄 진행하는 장애인 재활 치료 기법이다.

이렇게 전인재활 치료법을 접목하면서 그는 복지관에 다양한 재활 치료법을 정립했다. 미국 연수 과정에서 연구한 소아재활치료법을 국내에 도입하고, 자폐아의 감각 장애를 개선하는 치료법과 뇌성마비 조기 진단법을 도입하는 등 국내 장애인 재활의학 발전에 기여했다.

이 과정에서 갓난아이였던 환자가 어느새 성인이 됐다. 2살 때부터 5~6년간 치료했던 뇌성마비 환자는 올해 32세다. 당시 서울 은평구에 거주하면서도 시내버스를 1시간 이상 갈아타며 고덕동에서 치료받던 이 환자는 요즘 뇌성마비 의사소통 분야에서 활동한다.

그는 “어떤 신념을 좇았다기보다는 여기서 환자를 만나 대화하고 수다 떠는 게 행복해서 수다를 떨다가 33년이 지났다”며 “이번 수상 소식이 알려져 나누고 대화하는 삶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천상은 고(故) 이기석 JW중외제약 창립자의 호(성천)를 따서 2012년 제정됐다. 소외된 곳에서 질병과 외로움으로 고통받는 이웃에게 의술 활동으로 펼친 인물·단체에 포상한다. 중외학술복지재단은 오는 8월 19일 성천상 시상식을 개최하고 이미경 전문의에게 상금을 전달할 계획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