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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장서 김종국 '한남자' 틀어 김 샜다"…웃픈 4단계 첫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헬스장에서 시민들이 운동을 하고 있다. 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뉴스1

지난달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헬스장에서 시민들이 운동을 하고 있다. 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뉴스1

“120bpm을 어떻게 잴 수가 없잖아요. 발라드 중에 그나마 신나는 걸로 틀었죠.”

서울 동대문구의 한 헬스장 직원은 12일 오후 이런 고민을 하고 있었다. 거리두기 4단계 정부 지침이 체육시설 음악의 속도를 100~120bpm(beats per minute·분당 비트수)으로 유지하도록 발표됐기 때문이다. 시행 첫날, 대부분의 헬스장 건물에서 발라드 음악이 흘러나왔다. 이 헬스장에서는 최근 인기를 모으는 예능인 중창단 ‘msg 워너비’의 ‘바라만 본다’가 흘러 나왔다.

노래에 맞춰 운동하는 사람은 10명이었다. 이 노래의 속도는 118bpm이다. 러닝머신을 이용하는 2명의 회원은 달리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러닝머신 사이에는 비말 확산을 막기 위한 칸막이가 설치됐다. 헬스장 관계자 A씨는 “노래 목록을 모두 다 잔잔한 노래로 바꿨다. 아직까진 고객 민원은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노래 속도 120bpm을 잴 수 없으니 발라드나 R&B(리듬앤블루스) 곡을 틀고 있다”고 말했다.

헬스장 발라드 물결…‘금지곡’도 등장

코로나 19 거리두기 4단계에 따라 체육시설에서는 러닝머신 속도를 시속 6km이하로 제한하고 체육 시설 내 음악의 속도를 100~120bpm으로 유지해야한다. 박지영 인턴

코로나 19 거리두기 4단계에 따라 체육시설에서는 러닝머신 속도를 시속 6km이하로 제한하고 체육 시설 내 음악의 속도를 100~120bpm으로 유지해야한다. 박지영 인턴

정부 지침의 핵심은 빠른 노래에 맞춰서 운동하거나 빠른 속도로 달리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격한 운동에 따른 비말 전파를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헬스장 운영진과 이용객들은 당황스러운 표정이다. 일부러 선택한 발라드 곡의 속도가 140bpm에 달해 당황하는 일도 벌어졌다.

거리두기 4단계에 따라 체육시설에서는 러닝머신 속도를 시속 6km이하로 제한하고 체육 시설 내 음악의 속도를 100~120bpm으로 유지해야한다. 이에 음악 재생이 불가능한 목록들이 SNS를 통해 공유되기도했다. [카카오톡 캡쳐]

거리두기 4단계에 따라 체육시설에서는 러닝머신 속도를 시속 6km이하로 제한하고 체육 시설 내 음악의 속도를 100~120bpm으로 유지해야한다. 이에 음악 재생이 불가능한 목록들이 SNS를 통해 공유되기도했다. [카카오톡 캡쳐]

체육시설 내 ‘음악 속도 제한’에 SNS에서는 ‘금지곡’이 공유되는 촌극도 빚어졌다.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138bpm), 코요태의 ‘순정’(137bpm), 싸이의 ‘챔피언’(130bpm)등 10여곡이 꼽혔다. 이날 헬스장을 찾은 대학원생 김모(27)씨는 “아침에 상쾌하게 운동을 하러 나왔다가 김종국의 ‘한 남자’가 나와서 김이 확 새버렸다”고 웃었다. 그러나, 이 노래도 129bpm으로 방역지침을 위반한 곡이다.

정부의 탁상행정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높다. 직장인 박모(29)씨는 “헬스장에서는 개인 이어폰을 꽂고 운동하는 경우도 많다. 관장이 돌아다니며 직접 ‘음악단속’을 해야 하는 거냐”고 지적했다. 그는 “실현 불가능한 규칙을 내세워서 황당할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네티즌들은 “음악속도 제한은 사실상 줌바와 스피닝을 겨냥하고 한 말 같은데, 대놓고 금지하면 (체육시설에서) 난리 나니까 돌려서 말한 것 아니냐”“왜 저런 대책이 나왔는지는 이해하지만, 본질적인 해결이라기보다는 책상다리만 긁는 느낌이다”“말도 안 되는 통제” 등의 지적을 했다.

‘테이블쪼개기’ 꼼수 나오기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델타 변이 확산으로 팬데믹 이후 최초로 사회적 거리두기 최고단계인 4단계가 적용되는 첫날인 12일 서울 중심가의 중구 명동의 한 식당에 휴업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델타 변이 확산으로 팬데믹 이후 최초로 사회적 거리두기 최고단계인 4단계가 적용되는 첫날인 12일 서울 중심가의 중구 명동의 한 식당에 휴업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12일 오후 6시 이후 사적 모임이 2인까지만 가능한 제한을 놓고 벌써부터 ‘꼼수’가 거론되고 있다. 직장인 김모(28)씨는 “4단계에도 상사들과의 저녁식사 자리가 따로 취소되지 않고 그냥 진행되고 있다. ‘테이블 쪼개기로 밥을 먹자’고 했다”고 말했다. ‘테이블 쪼개기’는 허용된 사적 모임 인원에 맞춰 자리를 쪼개서 앉는 방법이다.

이는 5일 이상의 사적 모임을 제한하던 때에도 회식 등과 같은 모임에서 자주 이용됐다. 일부 직장인들은 8명이 두 테이블을 이용하는 식으로 회식을 했다. 김씨는 “자영업자들도 장사가 어려우니 알면서도 눈감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다수라 개인의 양심에 맡겨야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만원 지하철·버스는 뭐냐.자영업자만 죽어나”

자영업자들의 불만은 치솟고 있다. 손님이 줄어든 데다 선택적인 방역이 형평에 맞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서 족발집을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출근길 지하철, 버스에 여전히 사람이 많던데 정부에서는 이렇게 확진자가 나올 때마다 식당과 자영업자들만 죄짓는 것처럼 손님들을 못 받게할 거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코로나로 식당에서 일하던 직원이 10명 중 2명만 남은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날 점심시간에 이 식당을 찾은 손님은 총 두팀(6명)이었다.

수도권 4단계는 12일 0시부터 오는 25일 정오까지 시행된다. 이후엔 코로나19 확산 상황에 따라 4단계를 연장하거나 하향할 수 있다. 사적 모임 인원 제한을 지키지 않으면 개인 최대 10만원, 방역수칙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거나 다수의 위반 사례가 발생한 사업장은 최대 300만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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