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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이름 외계어냐···10자 넘어 네비게이션 찍을때도 불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옛 개포 주공 1단지를 새 아파트로 탈바꿈하는 공사 현장.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란 긴 이름이 눈길을 끈다. 함종선 기자

옛 개포 주공 1단지를 새 아파트로 탈바꿈하는 공사 현장.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란 긴 이름이 눈길을 끈다. 함종선 기자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 '과천센트럴파크푸르지오서밋', '래미안서초에스티지S'….외계어가 아니다. 최근 입주했거나 입주를 앞둔 새 아파트 단지 이름들이다. 열 글자가 넘어가는 곳도 적지 않다.

강남 재건축 단지 중심으로 10자 이상 속출 #조합원들 "이름 멋져야 아파트값 오를 것" #긴 이름에 불편 겪는 사회적 약자 적지 않아 #전문가들 "단지명의 공공재적 측면 고려해야" #

아파트 단지 이름이 길어지고 있는 게 요즘 아파트 시장의 특징이다. 재건축 사업을 통해 새 아파트로 거듭난 곳은 재건축 조합원들이 새 아파트 이름을 짓는다. 조합원들은 자신들의 아파트에 제일 멋진 이름을 짓고 싶어한다. 건설사 브랜드와 아파트 이름에 따라 아파트값이 달라질 것이란 생각도 조합원들의 '작명' 욕구를 부추긴다.

옛 개포 주공 2단지를 재건축한 래미안블레스티지의 경우 래미안 뒤에 붙이는 이름을 놓고 럭스티지, 트리스티지, 포레스티지,블레스티지를 후보로 올려놓고 조합원 설문을 했었다. 위신,명예를 뜻하는 ‘prestige’의 ~티지 앞에 ‘luxury’(호화로움), ‘trinity’(삼위일체), ‘forest’(숲), ‘bless’(축복)를 넣은 영어사전에도 없는 합성어다.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는 옛 개포주공 1단지의 새 이름인데, 현대산업개발과 현대건설이 공동으로 짓다 보니 두 건설사의 브랜드(현대산업개발 아이파크, 현대건설 디에이치)가 같이 들어가 이름이 길어졌다. 현대건설과 GS건설이 같이 짓는 옛 개포주공 8단지의 새 이름도 '디에이치자이개포'다.

옛 개포주공 8단지가 재건축 공사를 끝내고 입주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디에이치자이개포'란 새 아파트 이름이 현수막에 걸려 있다. 함종선 기자

옛 개포주공 8단지가 재건축 공사를 끝내고 입주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디에이치자이개포'란 새 아파트 이름이 현수막에 걸려 있다. 함종선 기자

이전에는 여러 건설사가 같이 공사를 하는 경우 건설사 브랜드를 쓰지 않고 독자적인 단지 이름을 짓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현대건설 등 3개 건설사가 지은 도곡렉슬(2006년 1월 완공) 등이 대표적이다. 1970~1980년대에 입주한 아파트는 반포 주공,압구정 현대,개나리,진달래 등 단순하고 쉬운 이름이었다. 이후 2000년대 들어서서 건설사들이 경쟁적으로 자사의 아파트 브랜드를 내세우기 시작했다. ‘래미안’ ‘자이’ ‘힐스테이트’ ‘푸르지오’ 등이 대형 건설사의 브랜드이고 '반포 자이' 등이 건설사 브랜드를 사용한 단지 이름이다.

그런데 최근 건설사 브랜드가 집 값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유명 건설사가 시공하는 경우 조합원이나 건설사 모두 각 건설사 브랜드를 단지명에 넣고 싶어하고, 그 결과 아파트 단지 이름이 길어지고 있다.

이렇게 긴 아파트 이름을 놓고 불만도 잇따른다. 대단지 아파트의 경우 아파트 이름이 지명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사용하기 불편하다는 것이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전업주부 김모씨(45)는 "요즘 코로나 때문에 음식을 시켜먹거나 빠른 배송으로 물건을 주문하는 경우가 많은데 긴 아파트 이름을 일일이 입력하기 불편하다"고 말했다.

개인택시 기사 김모(51)씨는 "요즘 손님들은 네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하고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운행하길 바라는 경우가 많은데, 손님이 말하는 아파트 이름이 어려워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토로했다.

강남구 개포동의 한모(51)씨는 "아파트 이름이 '김수한무~'가 돼선 곤란하다"며 "공익을 위해 행정 당국이 아파트 이름 자수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은 한 아버지가 자식에게 오래 사는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 긴 이름을 지어 주었는데, 그 이름 때문에 자식이 위기에 처한다는 옛이야기다.

브랜드 컨설팅 회사인 메타브랜딩의 박항기 대표는 "정체불명의 외래어를 섞은 긴 아파트 이름은 그런 이름을 어려워하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지 않은 것"이라며 "아파트 이름의 공공재적인 성격을 고려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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