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고정애의 시시각각

친일파가 세운 나라?

중앙일보

입력 2021.07.12 00:38

지면보기

종합 30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재명(左), 윤석열(右). 이재명 경기지사가 이달 초 "친일세력들이 미(美) 점령군과 합작해서 다시 그 지배 체제를 그대로 유지했지 않는가"라고 말한 데 대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이념에 취해 국민의식을 갈라치고 고통을 주는 것에 반대한다"고 강하게 반박하면서 두 진영 사이 '역사논쟁'이 붙었다. [중앙포토]

이재명(左), 윤석열(右). 이재명 경기지사가 이달 초 "친일세력들이 미(美) 점령군과 합작해서 다시 그 지배 체제를 그대로 유지했지 않는가"라고 말한 데 대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이념에 취해 국민의식을 갈라치고 고통을 주는 것에 반대한다"고 강하게 반박하면서 두 진영 사이 '역사논쟁'이 붙었다. [중앙포토]

얼마 전 작고한 6·25전쟁 영웅이자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선친인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이 5월 발간한 자서전(『바다를 품은 백두산』)엔 이런 대목이 있다.

몽양이 월북시킨 일본군 출신
친일 프레임으론 설명 못 해
냉전 맞물린 복잡함 알아야

1950년 7월 북한군에 중과부적으로 밀리던 우리 군이 여수에서 철수할 때였다. 서남지구전투사령관인 이응준 소장이 백두산함이 계류한 부두에 도착하자 최용남 함장이 사관실로 안내했다. 이 장군은 사양하며 의자만 내달라고 했다. 해가 진 후에도 여전했다. “지금 내 부하들이 목숨 걸고 적과 싸우고 있습니다. 제가 어찌 안전한 배 안에서 편하게 잘 수 있겠습니까. 저는 오늘 밤 여기 있겠습니다.” 백두산함의 갑판사관이었던 최 대령은 “이 장군이 일본도(日本刀)를 곧추세워 두 손으로 꼭 잡고 부두에서 밤을 새웠다”고 썼다.

여수 철수 후 이 장군은 백두산함 장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감사 인사를 하곤 마산으로 보내 달라고 했다고 한다. 낙동강 전선이었다. 최 함장에겐 “감사의 표시로 오랫동안 간직해 왔던 권총을 드리겠으니 받아 달라”고 했다. 권총은 이 장군이 1914년 일본 육사를 졸업할 때 일본 천황으로부터 받은 것이었다.

일본도와 일본 천황이 하사한 권총을 지닌 일본 육사 출신. 똑 떨어지는 ‘친일’ 증명일 수 있다. 실제 이 장군은 2000년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분류됐다. 그런데도 최 대령의 기술엔 전혀 부정적 어감이 없었다. 오히려 “갖은 악조건하에 싸워야 하는 장군의 비통한 마음과 부하를 생각하는 지휘관의 애틋한 심정이 밤하늘의 달빛같이 애잔히 비추었다”(일본도), “두 분은 전쟁터에서 끈끈한 전우애를 나누고 반격의 승리를 다지면서 헤어졌다”(권총)고 적었다.

오늘날의 시선으론 생경하지 않은가. 당대 미국 외교관이었던 그레고리 헨더슨의 관찰이 도움이 될 수 있겠다. 그는 군인들에게 권총·일본도는 실력(무훈)을 드러내는 장치였다며 “독립운동에 참가해 애국적 활동을 한 것만큼이나 그 사람의 위치를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썼다. 또 “많은 ‘대일협력자’들은 설사 일본에 협력은 했지만 일본 진영 내에서 반쯤 숨긴 태극기를 손에 들고 있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몽양 여운형 선생의 선택을 떠올려보는 것도 좋겠다. 그는 자신이 주도한 사회주의 독립운동단체(건국동맹)와 연계된 만주군 출신들에게 1946년 “월북해서 북한의 군대 창설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고 권유했다. “만약 전쟁이 발발한다고 해도 건국동맹 계열의 장교들이 몇 개 사단을 장악하고 있으면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취지”였다고 한다. 실제 만주군 출신 8명(2명은 간도특설대)이 응했다. 이른바 ‘여운형 그룹’이다. 민주화 세력이 높이 평가하는 몽양이 일본군 출신(이른바 ‘친일파’)에게 구국의 사명을 맡긴 걸 어찌 봐야 할까.

해방과 정부수립 공간이 얼마나 복잡미묘하게 전개됐는지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일제 청산을 했다는 북한도 일본군 출신들을 기용했다. 상당한 ‘숙군(肅軍)’ 작업이 이뤄진 후에도 북한 공군의 주력은 일본군 출신이었다. 더욱이 “북한이 ‘반혁명 세력’을 배제하고 북한 지역을 완전히 친소·친공 진영으로 전환시켰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반혁명 세력’은 월남해 반소·반공 세력으로 전환됐고 남한의 반소·반공세력과 결합함으로써 한반도의 반소·반공 진영을 강화시켰다”(『조선인민군』)는 점도 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최근 “친일이냐, 반일이냐 하는 문제와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것이냐, 공산주의에 찬성해 그 체제하에서 살기를 원하는 것이냐 하는 완전히 다른, 더 복합적이고 더 중요한 선택이 우리를 강제하는 상황에 놓였다”고 한 이유일 것이다.

그러므로 “친일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했다”는 진보 일각의 인식은 너무나도 단순하고 안이할 뿐만 아니라 의도까지 감안하면 나쁘다.

고정애 논설위원

고정애 논설위원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