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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톱워치 들고 뛰어야한다, 도쿄의 '편의점 15분 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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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통제된 올림픽’.

[장진영 기자의 여기는 도쿄] #입국자 격리기간 편의점 이용 제한 #선수·기자, 일본 활동 계획서 제출 #2주 동안은 대중교통 이용 못해 #사상 초유의 통제된 올림픽 실감

11일 일본 도쿄 나리타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이 말이 더 실감났다.

오는 23일 개막하는 도쿄 올림픽 취재를 위해 선발대 자격으로 일본에 먼저 입국했다. 조금 과장하자면, 분쟁 지역에 취재온 듯한 기분이다. 도쿄 올림픽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대회 개최를 강행했다. 각국 선수단과 취재진이 속속 입국하고 있다. 올림픽 참가 선수단과 관계자 등 일본 입국 인원은 8만여 명에 이른다.

출국 사흘 전인 지난 8일 일본 정부는 코로나19 상황이 악화하자 12일부터 도쿄 지역에 긴급사태를 발효한다고 밝혔다. 결국 사상 초유의 ‘무관중 올림픽’이 결정됐다. 이날 도쿄에 도착한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10일 “선수들은 경기장에서 외로워할 이유가 없다”며 무관중 경기를 치르게 된 선수들을 위로했다. “여러분의 진정한 팬들과 가족, 친구들의 응원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여러분은 대회 준비에만 최선을 다하면 된다.” 절절한 메시지였다.

비행기에서 내리며 알아보니 인천~나리타행 비행기는 일반인 탑승을 40명으로 제한한다고 했다. 올림픽 관계자들은 도착 후 입국 심사에 앞서 코로나19 검사부터 받았다. 공항 환승 통로에 임시 검사소가 설치돼 있었다.

검사 방식은 침을 검체로 이용하는 ‘타액 PCR(유전자증폭) 검사’다. 제출해야 하는 침의 양은 은근히 많다. 벽에 우메보시(매실 절임)와 레몬 그림이 붙어 있는데 침 분비를 촉진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싶다. 며칠 전 입국한 프랑스 기자는 5시간 공항에 갇혔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다행히 기자는 1시간15분 만에 음성 판정을 받았다. ‘개막일이 가까워지면 들어오는 비행기도 많아질 텐데 어떻게 하려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

코로나19 음성 증명서(입국 96시간 내 2회), 건강 증명서, 서약서 등을 제시하고 확인을 받았다. 휴대전화엔 건강관리 앱 ‘오차(OCHA)’도 깔았다.

“편의점 이용 땐 살 물건 외엔 만지지 마라” 지침

2020 도쿄 올림픽 개막(7월 23일)을 앞두고 11일 오후 일본 나리타공항에 입국한 한국 취재진이 서류 확인 및 코로나19 검사를 위해 공항 내에서 대기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2020 도쿄 올림픽 개막(7월 23일)을 앞두고 11일 오후 일본 나리타공항에 입국한 한국 취재진이 서류 확인 및 코로나19 검사를 위해 공항 내에서 대기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이미 출국 전부터 산더미 같은 서류를 준비하느라 진이 빠진 터다. 선수단처럼 취재진도 도쿄 올림픽 조직위원회에 ‘액티비티 플랜’을 제출했다. 입국 후 2주간 일본 내의 동선 보고다. 격리일, 경기장 등 예정 방문지를 엑셀 파일에 기입해 e메일로 제출한다. 각 언론사 대표 CLO(Covid19 Liason Officer)가 통합 페이지인 ICON(Infection Control Support System)에 등록하는 절차를 거친다. 상당히 복잡한 과정이다.

CLO 담당부서로부터 ‘조직위가 지정한 미디어 호텔에만 묵어야 한다’ ‘14일간 대중교통 이용을 금지한다’ 등 동선 수정을 요청하는 연락이 왔다. 이에 따라 오는 28일 남자축구 한국-온두라스전이 열리는 요코하마로 취재를 갈 때는 고속열차를 이용할 수 없다.

기자는 출국 사흘 전에야 최종 승인을 받았다. 반면에 국내 한 언론사는 출국 당일 새벽에 조직위로부터 ‘일본 정부가 입국을 승인하지 않았다’는 e메일을 받았다. 최종 승인이 나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는 매체도 한두 곳이 아니다.

같은 날 공항 입국장에서 사전에 예약한 버스를 타기 위해 이동하고 있는 취재진. 장진영 기자

같은 날 공항 입국장에서 사전에 예약한 버스를 타기 위해 이동하고 있는 취재진. 장진영 기자

올림픽은 ‘지구촌 축제’인데, 공항 입국장은 썰렁하기만 했다. 도착부터 출국장까지 나오는 데 걸린 시간은 3시간. 나오자마자 폭우가 쏟아졌다. 동남아처럼 덥고 습했다. 30분간 비를 피하다가 방역 차량을 타고 호텔로 이동했다. 입국 날은 ‘0’일로 간주하고 이후 총 4일간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

격리 기간 호텔에서 편의점을 다녀올 경우 15분 이내에 돌아와야 한다. 이른바 ‘편의점 15분 컷’이다. 조직위가 준 가이드북엔 "편의점에서 살 물품 외엔 만지지 말고 최대한 빨리 구입해 나와라”고 적혔다. 위치 확인을 위해 휴대전화 GPS 기능을 항상 켜둬야 한다. 스톱워치로 스스로 시간을 재는 수밖에 없다. 마치 TV 예능의 미션 수행 프로그램 같다. 그나마 편의점을 하루 한 번만 갈 수 있는지, 여러 번 다녀와도 되는지는 아직 모른다. 다행히 배달앱으로 식사 주문은 가능하다고 한다. 한번 시도해 볼 참이다.

오차 앱에 체온 등을 입력했다. 매일 해야 하는 숙제다. 선수들을 가까이서 취재하는 사진기자들은 대회 기간 내내 자가 키트로 코로나19 검사를 하고 보고해야 한다. 호텔 TV에선 일본 내 코로나 상황 뉴스가 이어진다. 일본 정부와 대회 조직위는 ‘안전 올림픽’을 외치고 있다. ‘이제 시작이다(Here We Go).’ 도쿄 올림픽 조직위원회 구호다. 팬데믹에 지친 지구촌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안전한 올림픽이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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