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에 괴담학교 열렸다…'킹덤' 작가 김은희의 명품드라마 노하우

중앙일보

입력 2021.07.11 12:56

업데이트 2021.07.11 13:07

1일 부천아트벙커B39에서 진행된 김은희(49) 작가의 괴담 기획개발 캠프 마스터클래스. 8일 제25회 부천국제영화제(BIFAN) 개막에 앞서 '괴담 캠퍼스' 제작지원 프로그램 일환으로 진행됐다. [사진 BIFAN]

1일 부천아트벙커B39에서 진행된 김은희(49) 작가의 괴담 기획개발 캠프 마스터클래스. 8일 제25회 부천국제영화제(BIFAN) 개막에 앞서 '괴담 캠퍼스' 제작지원 프로그램 일환으로 진행됐다. [사진 BIFAN]

사이버 수사대를 내세운 ‘유령’(SBS‧2012), 과거·현재를 잇는 타임슬립 형사물 ‘시그널’(tvN‧2016) 등으로 수사드라마의 새 지평을 열었다. 조선 좀비 사극 ‘킹덤’(2019~)은 한국 첫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로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켰다. 장르 드라마 귀재 김은희(49) 작가의 주요 이력이다. 오는 23일 공개될 스핀오프 ‘킹덤: 아신전’, 가을에 방송할 주지훈·전지현 주연 ‘지리산’(tvN) 등의 신작은 올해 하반기 드라마 최고 화제작으로도 꼽힌다.
그가 장르 덕후들의 아지트,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마스터클래스에 나섰다. 8일 영화제 개막에 앞서 부천시와 손잡고 진행한 ‘괴담 캠퍼스’의 괴담 기획개발 캠프에서다. 올해 첫 출범한 이 캠프는 미완성 괴담을 전문가 멘토링, 마스터클래스 등을 통해 개발하는 제작지원 프로그램. 4월 공모한 극영화·시리즈 프로젝트 108편 중 엄선된 8편의 창작자들을 대상으로 김은희 작가, 나홍진 감독 등이 가진 마스터클래스는 각각 14일·13일 영화제 공식 유튜브 계정에서 축약본도 공개될 예정이다.

김은희 작가 마스터클래스 포스터 이미지. [사진 BIFAN]

김은희 작가 마스터클래스 포스터 이미지. [사진 BIFAN]

1일 부천아트벙커B39에서 1시간 가량 열린 김 작가의 마스터클래스는 남편인 장항준(52) 영화감독이 사회를 맡았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 거장, 한국의 아가사 크리스티…” 장 감독의 소개에 수줍게 웃은 김 작가는 “오자마자 올 곳을 왔구나 했다”면서 “기괴하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BIFAN을 향한 애정을 아낌없이 풀어냈다. 현장에서 취재한 ‘김은희 드라마 월드’ 비결을 7가지로 정리했다.

#1 ‘사람’을 보라

드라마 '지리산' 주연 전지현. 산과 사람,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사진 tvN]

드라마 '지리산' 주연 전지현. 산과 사람,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사진 tvN]

장르를 넘나드는 스토리텔링의 영감은 어디서 얻을까. 창작자들의 첫 질문이다. 김 작가는 “살아있는 모든 시간”이라 명쾌하게 답했다. “술자리에서 장항준 감독과 이야기하다가, 여러 사람과 대화하다가, 영화 보다가, 예전에 읽던 책에서 무의식적으로 얻는다”면서 “드라마 작법 책보다는 사람을 많이 만나고 관찰하는 데”에서 나온다고 했다.
한 예가 올 하반기 방영 예정인 신작 ‘지리산’이다. 지리산 비경 속에 죽으러 오는 자, 죽이러 오는 자, 살리러 오는 자가 뒤엉키는 내용.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면서 구상한 이야기였어요. 크리스마스 지리산의 가족 이야기.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에 지리산 오는 사람이 있을까. 영화나 단막극 정도 생각했는데 하다 보니까 더 긴 얘기를 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해 쓰게 됐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괴담 캠퍼스
김은희 작가 마스터 클래스
장항준 감독 진행
'킹덤' '시그널' '지리산' 등 명품 드라마 비결
"얇고 넓게 다독…쉽게 써지면 의심해야죠"

#2 결핍이 동력이다

‘김은희 월드’에는 유난히 정의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제가 정의롭지 못해서죠. 겁 많고 타협하고 그냥 참는 제가 못 하는 것을 드라마 속 인물에게 많이 시키는 게 아닐까요.” 장르물을 좋아하는 것도 긴장감 있는 이야기와 더불어 “권선징악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게 장르물”이어서다. 중학교 땐 아버지가 즐겨 보던 무협지에 덩달아 빠지기도 했단다.

1일 김은희 작가 마스터클래스는 남편이자 드라마 ‘싸인’(SBS, 2011), 영화 ‘기억의 밤’을 연출한 장항준 감독이 사회를 맡아, 괴담 창작자들의 질문을 중심으로 한시간여 진행됐다. [사진 BIFAN]

1일 김은희 작가 마스터클래스는 남편이자 드라마 ‘싸인’(SBS, 2011), 영화 ‘기억의 밤’을 연출한 장항준 감독이 사회를 맡아, 괴담 창작자들의 질문을 중심으로 한시간여 진행됐다. [사진 BIFAN]

무서운 게 많은 그에겐 “공포도 상상력을 자극”하는 힘이다. “저는 겁이 많아서 지하주차장에선 뛰어다녀요. 어디서 좀비가 나올 것 같고. 내가 무서운 상황이 좋은 상상력이 되죠.”

#3 쉽게 써지면 의심하라

“쉽게 써지면 의심한다”는 건 그의 가장 중요한 철칙이다. “이렇게 대본이 쉽게 써질 리 없는데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느껴지는 드라마 대본은 9화까지도 모니터링을 받는다. 뻔히 예상되는 장면, 재미없는 대본일 가능성이 높은 탓이다.
무엇보다 처음 기획의도가 탄탄해야 한다고 했다. “이 드라마를 통해 뭘 얘기하고 싶은지 출연 인물, 나이, 직업 캐릭터 등을 정리하며 1회 구성과 시놉시스를 써내려가죠. 매회 정확한 사건보단 몇회쯤 이런 감정선이 됐으면, 하고 감정선에 대한 구상을 더 많이 넣고 들어가는 것 같아요.”
집필할 땐 식사 때 말고는 노트북 앞을 지키는 편. “밤을 새우고 아침 7시쯤 뭔가 풀리죠. 그때 자면 하루를 날린 거죠. 피곤한 걸 참고 쓰다 보면 나와요.”

#4 독서는 얇고 넓게, 한달에 20권

“다독가가 많지만 김은희 작가처럼 다양한 책을 보는 분을 못 봤어요. 호기심과 관심이 많죠. 이런 걸 왜 보나 싶은 책을 많이 보죠.” 장항준 감독이 ‘인증한’ 다독습관이다. 김 작가는 “얇고 넓게, 한 달에 20권 정도 본다”면서 “한 권을 읽다 보면 다른 의문점이 생겨 같은 분야 책을 세 권 더 사게 된다”고 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 시즌2. 시즌1은 조정이 부패한 조선시대 배고픔에 괴물이 된 백성들의 참상을, 시즌2는 권력과 핏줄에 집착한 권세가들의 파멸을 그렸다.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 시즌2. 시즌1은 조정이 부패한 조선시대 배고픔에 괴물이 된 백성들의 참상을, 시즌2는 권력과 핏줄에 집착한 권세가들의 파멸을 그렸다. [사진 넷플릭스]

‘킹덤’을 집필할 땐 조선 지리학자 김정호 지도첩 『대동여지도』 해설본을 보곤 했다. 당시 지형을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릴 수 있어서다. “행주산성 주변은 당시 어땠을까 이런 걸 알아내는 게 어렵다. 궁궐에 대한 기록은 많지만 백성들 기록은 정말 100권 중에 하나 찾아낼까 말까”라며 사극을 준비하는 작가들에게 『대동여지도』를 추천했다.

#5 자료조사가 차이를 만든다

“자료 조사가 된 거랑 안 된 거랑 천지 차이죠. 머릿속에서 나온 건 내가 봐도 재미없고 뜬구름 잡는 소리여요. 당시 글귀 하나, 자료 하나라도 들어가야 살아있는 느낌이죠.”
사극이든 현대극이든 취재와 고증도 중요하다. 김 작가는 “신인 작가일 때 자료조사를 많이 해야 하는데 어렵다”면서 의학 수사물에 도전한 ‘싸인’(SBS‧2011) 때를 돌이켰다. “부검의에 대한 이야기인데 건너건너 어떻게든 법의관을 섭외하려 했지만 절대 나타나지 않았어요.” 결국 장 감독이 다니던 치과 의사의 소개로 어렵게 법치의학자를 만나게 됐다.
사전 취재 과정에서 해당 직업 종사자를 최대한 친구처럼 알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캐릭터가 나온다는 김 작가  설명에 장 감독도 자신의 노하우를 덧붙였다. “(자료 조사) 후보군에게 전화해서 음료수를 사 들고 직접 찾아가서 얼굴 보고 말씀하세요. 멀리서 찾아온 사람은 대하는 게 달라요. 웬만하면 거부 못 하죠.”

#6 중심은 작가가 지킨다

쓰던 작품이 막혔을 때 김 작가는 주위에 모니터링을 청한다. 좋은 모니터 요원이라면 읽은 것을 솔직하게 말해주되 인신공격을 하지 않아야 한다.

김은희 작가 대표작 ‘시그널’. [사진 tvN]

김은희 작가 대표작 ‘시그널’. [사진 tvN]

김 작가는 “모니터를 듣는 자세가 열려 있어야 한다. 내 글이 재미없을 수 있고 어떻게 하면 재밌게 만들 수 있지, 자기 잘못을 알아야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서도 “중심은 작가가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무리 잘 나가는 감독이 얘기해도 전체 구상은 작가한테 있다”면서 “‘시그널’은 첫 기획을 SBS와 했는데 2부까지 대본을 내고 무전기를 빼라는 얘기를 들었다. 무전기와 과거를 빼고 현재 형사들로만 하자더라”면서 “그걸 빼면 ‘시그널’이 ‘시그널’이 아니게 돼서 장항준 감독 생각을 물으니 ‘네가 옳다’고 했다”고 돌이켰다. 장 감독은 “때로는 기성 창작자들이 가진 것을 깨야 한다”면서 “진짜 내가 납득이 안 되면 세상에 내가 맞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7 완성형 작가는 없다

“작가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사람이죠. 완성형이 될 수 없어요. 초기에 고생하면 노후가 좋아지죠.” 김 작가는 힘든 시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죽을 만큼의 노력”이라면서, 드라마 각본 데뷔작 ‘위기일발 풍년빌라’(tvN‧2010) 때를 떠올렸다. “1년 반 동안 뭘 쓰기만 하면 다 한숨만 쉬었다. 어디가 문제라고 얘기할 수 없을 정도로 다 문제라더라”면서 “나는 작가밖에 할 수 없는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가보자 했다. 1년 반 쓰고 12고가 나왔는데 건드릴 게 없다는 말을 듣고 눈물이 핑 돌았다”고 했다.
시너지가 좋았던 연출가로는 ‘킹덤’의 김성훈 감독을 “소통이 좋았다”고, ‘시그널’ 김원석 감독은 “더 넓은 세계를 볼 수 있게 해줬다”며 꼽았다. ‘지리산’ 대본을 마친 지금은 다음 작품 집필에 돌입했다. 쉼 없이 글 쓰는 동력은 “칭찬"을 꼽았다. "재미없다는 소리를 들으면 속상하니까 좋은 대본을 쓰려고 노력한다”면서다. 좋은 대본은 과연 어떻게 탄생할까. “쉬지 않고 쓰고 또 쓰고가 방법이죠.”

 지난해 시즌2에 이어 오는 7월 23일 넷플릭스를 통해 190여개국에 공개될 스핀오프 '킹덤: 아신전'. [사진 넷플릭스]

지난해 시즌2에 이어 오는 7월 23일 넷플릭스를 통해 190여개국에 공개될 스핀오프 '킹덤: 아신전'. [사진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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