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공사가 땅 장사하나”…참깨밭 팔리게 된 92세 농부 눈물

중앙일보

입력 2021.07.11 06:00

“왜정 때 뺏긴 땅, 농촌公 외지인에 팔아” 

충북 진천군 초평면 초평저수지 일원 한국농어촌공사 소유 영농부지가 올해 매각이 진행되면서 잡풀이 우거져 있다. 주민 변상주씨가 공매 예정 부지를 설명하고 있다. 최종권 기자

충북 진천군 초평면 초평저수지 일원 한국농어촌공사 소유 영농부지가 올해 매각이 진행되면서 잡풀이 우거져 있다. 주민 변상주씨가 공매 예정 부지를 설명하고 있다. 최종권 기자

“평생 농사짓던 밭인데…. 국가기관이 농민한테 이럴 수 있습니까.”

진천 초평 영농부지 공매에 농민 반발

충북 진천군 초평면 화산리에 사는 윤은수(92)씨는 올해 690㎡(200평) 규모의 밭을 놀리고 있다. 농작물이 한참 자라야 할 밭은 빈 고랑만 가득했다. 인근 초평저수지와 맞닿은 윤씨의 밭은 저수지를 관리하는 한국농어촌공사 소유 땅이다.

일제강점기 말인 1943년 초평저수지 조성이 시작되면서 농어촌공사의 전신인 조선수리조합에 수용됐다. 윤씨 가족은 이후 집앞 텃밭을 포함해 60년 이상 농어촌공사에 연간 50만원의 임차료를 지불하고 참깨, 들깨 농사를 지어왔다.

하지만 농어촌공사가 지난해 말 윤씨와 임대차계약을 해지하고, 올해 공매(公賣)로 땅을 팔기로 하면서 더는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됐다. 윤씨는 “왜정 때 땅을 뺏기다시피 하고, 당시 몇 푼 받은 보상금은 해방 후 물가가 수십 배 오르면서 쓸모가 없어졌다”며 “일본 사람한테 뺏기고, 60년 이상 농사짓던 땅을 농어촌공사가 하루아침에 매각한다고 하니 살길이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60년 넘게 임대차계약 한 농민 “기회달라”

충북 진천군 초평면에 사는 윤은수씨가 사는 집 앞에 공매 예정인 밭. 지난해 임대차계약이 해지되면서 빈 고랑만 남았다. 최종권 기자

충북 진천군 초평면에 사는 윤은수씨가 사는 집 앞에 공매 예정인 밭. 지난해 임대차계약이 해지되면서 빈 고랑만 남았다. 최종권 기자

화산리 일원에는 윤씨처럼 농어촌공사에 매년 임차료를 내고 농사를 짓는 농민이 25명에 이른다. 이들은 조상 대대로 이곳에서 농사를 짓다가 초평저수지가 준공되면서 영농목적으로 임대계약을 체결해 왔다.

농어촌공사는 이 같은 농지를 저수지 관리를 위한 ‘시설용지’로 분류했다가, 본래 기능이 상실됐다는 이유로 올해 4~5필지(약 6600㎡)를 매각할 예정이다. 내년에도 같은 규모로 공매를 진행할 예정이다. 공매방식은 전국 참여가 가능한 일반경쟁 입찰방식이다.

주민 변상주(65)씨는 “저수지 개발로 어쩔 수 없이 농지 소유권을 잃은 농민들에게 적어도 입찰 우선권을 주는 게 맞다”며 “농지 원부가 있거나, 일정 기간 화산리에 거주한 주민들이 땅을 살 수 있도록 제한경쟁 입찰로 바꿔 달라고 농어촌공사에 수차례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1m 잡초 수북한 밭…6개월간 방치 상태

충북 진천군 초평면 초평저수지 일원 한국농어촌공사 소유 영농부지가 올해 매각이 진행되면서 잡풀이 우거져 있다. 최종권 기자

충북 진천군 초평면 초평저수지 일원 한국농어촌공사 소유 영농부지가 올해 매각이 진행되면서 잡풀이 우거져 있다. 최종권 기자

변씨는 이어 “현행 방식으로 땅을 팔면 외지인들이 공매에 참여해 저수지 주변이 난개발될 우려가 있다”며 “필지를 쪼개 드문드문 공매하면 땅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간다. 농민을 위해 만든 농어촌공사가 수익 사업에 눈이 멀어 땅장사를 하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공매가 예정인 땅은 올해 농사를 짓지 못하면서 사실상 방치돼 있었다. 지난 8일 현장을 둘러보니 일부 밭은 1m가 넘는 잡초가 빼곡했다. 밭고랑에 비닐이 그대로 붙어있거나, 관리가 되지 않은 논에 수풀이 자라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농어촌공사 땅은 주택 바로 앞에 있는 텃밭, 도로변 자투리땅, 산골짜기 안쪽까지 곳곳에 있었다. 한 노인은 “공매 예정인 땅은 대부분 주택과 인접한 밭이 많다”며 “저수지 주변 마을이라 땅이 팔리면 다른 곳에서 농사를 지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곳 주민들은 지난해 농어촌공사와 국민권익위원회에 진정을 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유재산법이나 공기업·준정부기관 계약사무규칙 등을 근거로 “땅의 위치와 형태, 그동안의 용도를 판단해 경작자들에게 입찰 우선권이라도 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농어촌공사 “농민에 우선권 어려워…매각 진행”

충북 진천군 초평면 초평저수지 인근 논이 관리되지 않고 있다. 최종권 기자

충북 진천군 초평면 초평저수지 인근 논이 관리되지 않고 있다. 최종권 기자

농어촌공사는 내부 지침상 제한경쟁 입찰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농어촌공사 관계자는 “수의계약(제한경쟁 입찰)은 시설용지가 개인 땅에 둘러싸여 있거나, 사유지가 중간에 껴있는 등 조건을 갖춰야 하는데 해당 부지는 이 같은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임대차계약이 종료된 영농부지를 순차적으로 매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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