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가 피난처냐" 비아냥까지…6개월간 사건 처리 0건

중앙일보

입력 2021.07.11 05:00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이른바 ‘윤석열 X파일’이란 문서를 생산하는 데 성명불상의 국가기관 관계자가 관여했단 내용의 고발사건을 정식 접수, 사건분석조사담당관실에서 입건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9일 확인됐다.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이 사건을 고발한 이종배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법세련) 대표는 이날 “공수처가 민원의 취지 등을 면밀히 검토한 후 공정하게 처리한 뒤 결과를 통지한다고 알려왔다”고 전했다.

'1호' 조희연 사건도 감감

공수처가 이 사건을 입건키로 해 정식 사건번호(공제번호)를 부여하고 수사에 착수하면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관련한 공수처 사건은 총 3건으로 늘어난다. 공수처는 현재 윤 전 총장이 ▶2019년 서울중앙지검장 재직 시절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의 옵티머스 펀드 사기 수사의뢰 사건을 부실하게 처리토록 했다는 의혹(공제7호) ▶지난해 3일 임은정 당시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을 한명숙 전 국무총리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수사팀의 모해위증교사 의혹 사건에서 배제해 수사를 방해했다는 의혹(공제8호)에 대해 수사 중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지난달 10일 김진욱 공수처장이 정부과천청사 내 공수처가 입주한 5동 건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지난달 10일 김진욱 공수처장이 정부과천청사 내 공수처가 입주한 5동 건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윤 전 총장이 출마를 선언한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공수처가 이 같은 사건들을 얼마나 신속히 처리할 수 있을진 미지수란 평가가 많다. 윤 전 총장 관련 사건을 포함해 공수처가 정식 수사에 착수한 사건은 총 10건이지만, 아직 이렇다 할 성과가 없기 때문이다. 공수처가 ‘1·2호 사건’으로 선택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출신 해직교사 특혜 채용 의혹 관련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국가공무원법 위반 사건부터 그렇다. 공수처 수사2부(부장 김성문)는 지난 5월 18일 서울시교육청 등을 압수수색했는데, 이후 55일이 지나도록 조 교육감 등 피의자에 대한 소환조사조차 못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이 지난 3월 공수처에 이첩한 ‘3호 사건’ 이규원 대전지검 부부장검사(공정거래위원회 법무보좌관 파견)의 ‘윤중천·박관천 면담보고서’ 허위 작성 및 유출 의혹도 진척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사건을 배당받은 공수처 수사3부(부장 최석규)는 지난 5월 25, 27일과 지난달 1일 세 차례나 이 검사를 소환해 조사했지만, 이후 한 달이 넘도록 구속영장 청구나 기소 여부를 결정하지 않고 있다.

한 법조계 인사는 “이 검사가 재판을 받고 있는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출금)’ 사건 3차 공판준비기일(오는 8월 13일) 전까지는 공수처가 기소 여부를 결정해야 법원이 병합 여부를 검토하든지 할 텐데 지금으로선 난망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2부(부장 김성문) 관계자들이 지난 5월 18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해직 교사 부당 특채 의혹 수사를 위한 서울시교육청 압수수색을 마치고 건물 밖으로 나서고 있다. 공수처는 이후 두 달째 조 교육감 등 피의자에 대한 소환조사를 하지 않고 있다. 뉴스1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2부(부장 김성문) 관계자들이 지난 5월 18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해직 교사 부당 특채 의혹 수사를 위한 서울시교육청 압수수색을 마치고 건물 밖으로 나서고 있다. 공수처는 이후 두 달째 조 교육감 등 피의자에 대한 소환조사를 하지 않고 있다. 뉴스1

수사는 더디지만, 검찰 등 기존 수사기관과 권한 다툼은 적극적인 편이다. 수원지검이 지난 3월 공수처에 이첩했다가 되돌려받은 2019년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의 ‘김학의 불법 출금’ 수사 무마 사건과 관련, 지난 5월 기소된 이성윤 서울고검장을 제외한 나머지 검사 3명(문홍성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김형근 부천지청장 등)에 대한 수사 권한을 두고 대검과 팽팽한 기 싸움을 벌이고 있다.

공수처가 사건을 다른 수사기관에 이첩하며 ‘수사 후 송치’를 요구하는 ‘조건부(유보부) 이첩’의 경우 정식 입건된 사건으로 본다는 공수처 사건사무규칙 14조에 따라 공수처는 이 사건에 ‘공제5호’ 사건번호를 붙이고 수사 중이다. 그러나 검찰은 ‘조건부 이첩’ 개념 자체를 인정하지 않아 같은 사건을 두고 두 기관이 중복 수사 중인 상황이 한 달째 이어지고 있다.

윤 전 총장 관련 사건에 관해선 공수처가 최근 법무부에 지난해 윤 전 총장 징계·감찰 자료를 요청했지만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당했고, ‘4호 사건’ 이성윤 고검장 공소장 유출 의혹은 현재 진행 중인 대검찰청 감찰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상황이다.

'윤중천 면담보고서' 허위 작성 혐의를 받고 있는 이규원 검사는 지난 5월 25, 27일과 지난달 1일 세 차례에 걸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소환조사를 받았다. 사건을 수사 중인 공수처 수사3부(부장 최석규)는 이후 한 달이 넘도록 이 검사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나 기소 여부를 결정하지 않고 있다. 뉴스1

'윤중천 면담보고서' 허위 작성 혐의를 받고 있는 이규원 검사는 지난 5월 25, 27일과 지난달 1일 세 차례에 걸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소환조사를 받았다. 사건을 수사 중인 공수처 수사3부(부장 최석규)는 이후 한 달이 넘도록 이 검사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나 기소 여부를 결정하지 않고 있다. 뉴스1

윤 전 총장 사건의 경우 고발인 조사 없이 입건했지만, 한 차례 언론에 보도된 현직 부장판사의 금품 수수 의혹은 고발인 조사를 마쳤는데도 아직 입건 소식은 없다. 지난 1월 21일 출범 후 8일 현재까지 공수처에 접수된 고소·고발·진정 사건은 1823건. 이 중 불입건한 것 외에 실제 수사 후 사건을 처리한 건 단 한 건도 없다.

기소된 이성윤 고검장과 이규원 검사가 검찰 수사 단계에서 그랬던 것처럼, 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사망 사건 부실 수사 의혹을 받는 전익수 공군본부 법무실장(공군 준장)도 본인 사건을 공수처로 이첩해달라고 요구하는 등 범죄 혐의를 받는 고위공직자가 수사 지연 목적으로 공수처를 ‘피난처’로 여기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마저 나온다.

한 검찰 출신 법조인은 “입건 여부도 자의적 판단이 가능하게끔 장치를 마련한 데다 공수처 검사 임기(3년)가 가까워지면 사건 처리 의욕도 떨어질 것”이라며 “사건이 공수처로 가면 ‘함흥차사’가 되니 피의자의 적법한 이첩 요구도 오해를 사게 만든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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