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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비 돈 꼬라박는다" 출산율 비상에 과외 금지 때린 中[베이징흥신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중국 베이징의 한 학원 수업 모습. 수업료는 1회당 300위안(5만1000원)을 호가한다. [바이두 캡쳐]

중국 베이징의 한 학원 수업 모습. 수업료는 1회당 300위안(5만1000원)을 호가한다. [바이두 캡쳐]

그렇게 비싸?

베이징에 와서 지내다 보니 서울보다 싼 게 있고 비싼 게 있더군요. 싼 건 식자재와 교통비입니다. 제철 과일은 체감상 한국의 절반 정도 값이면 제법 괜찮은 걸 사먹을 수 있습니다. 버스비는 1위안(170원), 지하철은 기본 구간 3위안(510원)에 택시 기본요금도 13위안(2200원)이면 됩니다. 기초 생활과 관련된 비용이 적은 게 '공산국가라 그런가'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듭니다.

베이징 왕징 지역의 한 수영장 교습 신청 화면. 수업료는 10회 강습에 2031위안(34만원)이다. [다종디앤핑 앱 캡쳐]

베이징 왕징 지역의 한 수영장 교습 신청 화면. 수업료는 10회 강습에 2031위안(34만원)이다. [다종디앤핑 앱 캡쳐]

반면 교육 관련 비용은 상당히 비쌉니다. 공교육 말고 사교육 얘기입니다. 수영 강습 한 번 받는데 200위안(3만4000원), 일주일에 1시간씩 3번 배우려면 40만원이 훌쩍 넘습니다. 아이들에게 가르치려고 알아보다가 그냥 한국 가서 가르쳐야겠다 하고 포기했습니다. 공부 가르치는 학원, 말할 것 없죠. 영어 학원은 1회 2시간에 300위안(5만1000원)이 기본입니다. 방학 한 달 주 5회를 보내려면... 51,000원X22회=120만 5000원. 이걸 보내야 돼 말아야 돼 고민하다 결국 두손 들었습니다. 서울도 학원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베이징이 더 비싼 거 아닌가 싶네요.

교육비 부담에 애 안낳는다 #과외와의 전쟁, 학원 단속

중국인들도 그런가?

중국인들의 관점에서 보겠습니다. 인상 깊게 봤던, 우리로 치면 블로그의 글을 소개합니다. 제목은 “끔찍해요. 베이징에서 아이를 키우는 게 그렇게 비싼가요?” 여기 두 가지 사례가 언급되는데요, 길지만 생생해서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웨이신 '중국신청년' 계정에 올라온 글. “끔찍합니다. 베이징에서 아이를 키우는 게 그렇게 비싼가요?”라는 제목 아래 베이징 어머니의 사연이 소개돼 있다. [웨이신 캡쳐]

웨이신 '중국신청년' 계정에 올라온 글. “끔찍합니다. 베이징에서 아이를 키우는 게 그렇게 비싼가요?”라는 제목 아래 베이징 어머니의 사연이 소개돼 있다. [웨이신 캡쳐]

“(베이징) 하이뎬구(海淀區)에 살아요. 아이 교육비 지출을 피할 수가 없네요. 축구반 1시간에 150위안씩 매월 600위안(10만원), 레고반 1시간 반 220위안씩 880위안(15만원), 온라인 영어수업 1학기 1700위안(29만원) 이건 적으니 무시해도 되고요. 영어 과외 1시간 반에 400위안, 주 2회 한 달에 3200위안(55만원)이에요. 유치원 포함 한 달 교육 비용만 1만1000위안(187만원) 정도 되네요. 생활비 지출은 적어요. 밥은 대충 먹고, 옷은 그냥 유니클로에서 사구요. 신발은 조금 더 비싼 걸 사요.”

언급된 하이디앤구는 베이징대와 칭화대, 인민대 등이 모여 있어 베이징시에서도 교육 중심지 같은 구인데요, 즉 베이징의 학군지입니다. 서울 강남에 빗댈만한 학군지는 베이징 천안문 서쪽 시청구(西城區)라는 지역인데 중국 최우수 고등학교가 밀집해 있습니다. 두 구 모두 교육비 부담으론 베이징에서 제일 가는 곳들인데 유치원 아이 1명 키우는 데 200만 원 가까이 든다고 얘기합니다.

사연 하나만 더 보겠습니다.

다른 여성은 7월 교육비 지출이 월 수입 3만 위안(510만원)을 넘었다고 털어놨다. [웨이신 캡쳐]

다른 여성은 7월 교육비 지출이 월 수입 3만 위안(510만원)을 넘었다고 털어놨다. [웨이신 캡쳐]

“이번 여름에 제 딸 교육비로 지출한 돈. 미국 연수 10일 2만위안(340만원), 평일 아이를 돌봐주는 아주머니 급여 5000위안(85만원), 주 2회 피아노 강습 2000위안(34만원), 수영 강습 2000위안(34만원), 영어, 올림피아드 수학, 작문 3과목에 6000위안(102만원), 합계 3만5000위안(595만원).” 

이 분은 "저희 월수입은 3만 위안(510만원)"이라면서 "교육에 들어간 비용이 월수입보다 많았다"고도 했는데요. 설마 이 정도까지인가 싶어 주변 중국 지인들에 물었더니 "굉장히 현실적이고 정확한 얘기"라는 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보통 월급의 절반 이상은 교육에 넣는다. 최소 1만 위안(170만원) 이상은 교육에 쓴다고 보면 된다”는 답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중국 부모들 역시 안 먹고 안 입어도 자식들은 최고로 교육시키겠다는 이 분위기…. 한국이나 중국이 어떻든 비슷한 문화권이구나란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애 안 낳겠단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중국도 젊은 층들이 아이를 안 낳으려고 합니다. 하나만 낳아서 잘 키우겠다거나 아니면 굳이 결혼하지 말고 내 생활 즐기겠다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가 지난 5월에 고육지책으로 세 자녀 출산까지 허용했지만 반응은 그야말로 ‘시큰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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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이유는 역시 교육비입니다. 자녀 1명을 키우는 양육비용이 크다는 문제였죠. 제 자식 제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다 똑같습니다.

세 자녀를 낳을 의향이 있냐는 질문에 '그렇다'는 응답은 18~24세 그룹에서 4.90%, 25~29세에선 6.92%에 그쳤다. [웨이보 캡쳐]

세 자녀를 낳을 의향이 있냐는 질문에 '그렇다'는 응답은 18~24세 그룹에서 4.90%, 25~29세에선 6.92%에 그쳤다. [웨이보 캡쳐]

최근 한 여론조사를 보면 세 자녀를 낳을 의향이 있냐는 질문에 18~24세 그룹에선 4.9%, 25~29세에선 6.92%만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45~49세 연령대에서 16%로 제일 높게 나와 재밌습니다. 나이와 출산 의지는 정확히 반비례합니다.

그냥 넘어갈 리가 없지

어떤 후속조치가 나올지 궁금했습니다. 낮은 출산율은 고령화와 장기적 국가 성장을 위협하는 첫 번째 위협 요인이라고 지목한 중국 정부가 미온적으로 넘어갈 리 없을 텐데 싶었습니다. 역시 중국 스타일 대책을 내놨습니다. 비싼 사교육비 '척결'에 착수한 것이죠.

중국 교육부는 6월 15일 사교육 감독기구인 ‘교외교육훈련감독부 신설’ 방침을 발표했다. [중국 교육부 홈페이지 캡쳐]

중국 교육부는 6월 15일 사교육 감독기구인 ‘교외교육훈련감독부 신설’ 방침을 발표했다. [중국 교육부 홈페이지 캡쳐]

지난달 15일 중국 교육부 발표 내용입니다. ‘교외교육훈련감독부 신설’. 우리로 치면 사교육 감독 기구가 등장했습니다. 사상 처음입니다. 그것도 성ㆍ자치구ㆍ시ㆍ현 등 중국의 모든 행정 단위 교육국에 동시에 신설토록 했습니다.

15일 중국 교육부 기자회견. 교육부장관 격인 중국 교육부장 천바오셩이 주관했다. [웨이보 캡쳐]

15일 중국 교육부 기자회견. 교육부장관 격인 중국 교육부장 천바오셩이 주관했다. [웨이보 캡쳐]

발표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목적은 사교육의 기능을 원래 자리로 돌려놓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3가지에 중점을 두는데 첫째 모든 교육교외기관이 법적 자격을 갖도록 하고, 둘째 허위 홍보·유명 교사 포장·불법 요금 부과를 방지한다, 셋째 교육 범위를 명확히 하고 선행학습을 금지한다는 겁니다.

말이 규제지 

중국에서 취재하면서 많이 보는 장면들인데요, 당국은 통제가 필요할 때 규정 준수를 앞세웁니다. 원래 규정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지만 허용 폭은 해석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죠. 필요할 때 완벽한 준수를 요구하는 것, 그러면 이를 어긴 사람은 따지지도 못하고 따라야 합니다. '전에는 됐는데 지금은 왜 안 되나요' 이런 거 안 됩니다. 그때그때 융통성의 폭을 바꿔 조였다 풀었다 하는 방식, 과거 사드 사태 때 우리 기업들이 중국 정부의 '합법적인 정책'에 피해를 입은 것도 이런 식이었죠.

발표를 보면 사교육 제재가 비슷한 상황입니다. 법적 자격이 있는지 따지겠다는 건 기존에 허가 없이 운영되던 소규모 학원들을 일제히 폐쇄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허위 홍보, 교사 자격, 적정 학원비…맘 먹고 단속하면 얼마나 걸려들지 알 수도 어렵습니다. 개인 과외는 말할 것도 없이 전부 불법이 되고요.

또 하나 눈길을 확 끄는 건 선행 학습을 금지한 건데요. 학원에서 학교 진도보다 빨리 배우거나 관련 숙제를 내줘선 안 된다고 못박았습니다. 학교 수업을 보충하는 용도로만 학원에 나가라는 건데, 이건 거의 학원에 다니지 말라는 말과 비슷하게 받아들여집니다.

그래서 진짜 학원들이 없어졌어?

연초 대비 중국 최대 영어학원 체인인 신동팡(新東方)의 주가가 59%, 온오프라인 대형 교육업체인 이치교육(一起教育), 가오투집단(高途集團), 하오웨이라이(好未來)의 주가가 각각 69%,75%,71% 급락했다. [중국증권망 캡쳐]

연초 대비 중국 최대 영어학원 체인인 신동팡(新東方)의 주가가 59%, 온오프라인 대형 교육업체인 이치교육(一起教育), 가오투집단(高途集團), 하오웨이라이(好未來)의 주가가 각각 69%,75%,71% 급락했다. [중국증권망 캡쳐]

시장 반응은 즉각적이었습니다. 일단 교육 관련 회사들의 주식이 폭락했습니다. 중국 최대 영어학원 체인인 신동팡(新東方)은 발표 5일 만에 21.69% 하락, 연초 대비 59%가 떨어졌습니다. 우리로 치면 종로, 대성, 메가스터디 같은 온·오프라인 대형 교육업체인 이치교육, 가오투집단, 하오웨이라이의 주가는 70% 이상 급락했습니다. 앞으로 교육 학원들이 안 될 거라고 시장이 판단한 것이죠.

허난성 정저우시에 문을 닫은 학원. 지난 8일부터 중단한다는 안내문을 붙였다. [샹스핀 캡쳐]

허난성 정저우시에 문을 닫은 학원. 지난 8일부터 중단한다는 안내문을 붙였다. [샹스핀 캡쳐]

지역에서 소규모로 운영되던 학원들은 줄줄이 문을 닫고 있습니다. 영어 학원, 예체능 학원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허난성 정저우시에서 보도된 영상을 보면 학원 담당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최근 조사가 엄격했습니다. 지역의 모든 기관들이 수업을 중단했습니다. 수업은 언제 재개될지 알 수 없습니다.”

지난 8일 중국 샤먼에선 공안이 대형 영어학원을 찾아 단속을 벌이는 과정이 보도됐다. [샤먼위성방송캡쳐]

지난 8일 중국 샤먼에선 공안이 대형 영어학원을 찾아 단속을 벌이는 과정이 보도됐다. [샤먼위성방송캡쳐]

중국 관영 CCTV나 지역 매체들은 공안(경찰)의 단속 장면을 연일 방송하고 있습니다. 샤먼위성방송은 8일 공안이 한 유명학원을 찾아 “미국 교육부 장관이 방문했다”고 홍보한 것을 문제 삼았습니다.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죠. ‘학원 교사 100% 명문대 졸업’, ‘특급 교사 교재 100% 집필’ 등 광고도 잘못됐으며 이를 통해 다른 곳에 비해 2~3배 가량 학원비를 올려 받았다고도 했습니다. 학원들은 문을 닫고 교사들은 졸지에 실업자가 되고 있습니다.

중국 학부모들 반응은?

“학교 안팎에서 어떤 형태의 과외도 없애고 캠퍼스에 순수한 땅을 회복하고 공정성을 교육해야 합니다”  

정부 방침을 지지하는 사람도 있고

“학원이 문제라는 게 잘못됐어요. 자기가 아이를 가르칠 능력이 있나요. 남들이 더 많이 배울까 두렵습니다”  

경쟁을 위해 학원이 꼭 필요하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학교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치지 않아요. 교사부터 정비해야 합니다”

관련 기사의 많은 댓글을 살펴보면 중국 학교 교육 자체가 더 충실해져야 한다는 주문이 많다는 것도 느낄 수 있습니다. 학원 수업을 학교가 따라가지 못하니 부모들이 자꾸 학원을 찾게 된다는 주장입니다.

이에 대한 반론도 있는데 “학교 교사 처우부터 개선하라”는 의견도 많습니다. 이를 통해 방과후 학교 수업을 늘리고 학교에서 아이들을 돌봐줄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입니다. 사실 사교육 논쟁을 보면서 이 대목은 한국과 비슷하구나, 부모의 마음이 대부분 비슷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잘 될까

중국 베이징의 한 학원 내부 모습. [디앤핑 캡쳐]

중국 베이징의 한 학원 내부 모습. [디앤핑 캡쳐]

한바탕 소나기가 될지, 사교육 시장 자체가 상당 부분 축소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정부 단속이 느슨해지면 언제든 재개될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분명한 건 중국 정부가 나서면 사교육도 잡을 수 있다는 ‘이빨’을 드러냈고 여론이 지지하는 쪽으로 흐른다면 출산 문제와 맞물려 더 세게 밀어붙일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선행학습을 중단시킨 조치는 참 중국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건 돈 내고 공부하면 안 된다, 이렇게까지 정부가 정해주는 것이니까요. 선행학습이 사실상 사교육의 핵심이 돼 버린 우리나라 입장에선 과연 가능할까요? 글쎄요.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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