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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아기에게 새로운 시작 선물”…장기기증 등록 청소년들

중앙일보

입력

김나원(18)양의 주민등록증엔 장기기증 희망 등록 스티커가 붙어있다. 장기기증 희망등록자에 한해 등록증과 해당 스티커를 제공한다. 주민등록증 아래 카드는 장기기증 희망 등록증. 김나원양 제공

김나원(18)양의 주민등록증엔 장기기증 희망 등록 스티커가 붙어있다. 장기기증 희망등록자에 한해 등록증과 해당 스티커를 제공한다. 주민등록증 아래 카드는 장기기증 희망 등록증. 김나원양 제공

“아픈 아기들이 꿈을 가져보지도 못하고 병원에 계속 있는 게 너무 마음 아프더라고요. 저는 끝이지만, 아기들은 저로 인해 새로운 시작을 선물 받는 거잖아요.”

장기기증 희망 등록을 한 김나원(18)양의 결심은 확고했다. “나중에 아픈 아기들에 제 장기가 기증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부모님께 허락은 따로 받지 않았다. 법 개정으로 인해 부모 동의 없이 희망 등록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김 양은 “저는 꿈도 많고 버킷리스트(bucket list·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도 많은데 장기를 기증하는 게 제 인생의 마지막 버킷리스트”라고 말했다. 이어 “법이 바뀌자마자 등록했고 등록증을 받고 나서야 부모님께 말씀드렸다”고 덧붙였다.

장기기증 희망 등록이란 뇌사하거나 심장마비 등으로 숨질 경우 자신의 장기나 인체조직을 기증하겠다고 미리 약속하는 절차다. 지난 2019년 7월 16일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만 16세 이상부터 부모 동의 없이 장기기증 희망 등록이 가능해졌다. 기존에는 만 19세 미만이 장기기증 희망자로 등록하려면 부모 등 법정대리인의 서명과 가족관계 증명서 같은 증빙 서류가 필요했다. 희망자로 등록했다고 해서 숨졌을 때 병원에서 가족의 의사와 무관하게 장기 이식을 진행하는 건 아니다. 희망 등록은 법적 구속력이나 강제성이 없다.

나이 기준 낮추자 2년 만에 2배 이상 증가

전체 장기기증 희망등록자 중 만16~18세는 2018년 0.32%(7만 763명 중 231명)에서 2020년에는 5%(6만 7160명 중 3380명)로 15배 가량 증가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전체 장기기증 희망등록자 중 만16~18세는 2018년 0.32%(7만 763명 중 231명)에서 2020년에는 5%(6만 7160명 중 3380명)로 15배 가량 증가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장기기증 희망 등록 기준 나이가 낮아지면서 청소년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국립장기조직 혈액관리원에 따르면 만 16세~만 18세의 장기기증 희망 등록자 수는 지난 2018년 231명, 2019년 1618명, 2020년 3380명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측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대면 캠페인의 위축으로 비교적 높은 연령대의 장기기증 희망등록자는 크게 줄었지만, 청소년 등록자는 급격히 늘었다”며 “모바일이나 컴퓨터를 통해 간단하게 신청할 수 있고 만 16세 이상이면 자신의 의사만으로 등록할 수 있어 청소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드라마 보고 장기기증 알게 됐다”

의학 드라마의 영향도 있었다. 지난해 초 방영된 한 의학 드라마에서 주취자를 구조하던 중 머리를 맞아 뇌사 상태에 빠진 소방 구급대원의 어머니가 장기기증 희망등록 스티커가 붙어있는 딸의 신분증을 의사에게 내미는 장면이 나왔다. 소방관이 꿈이라는 조정화(18)양은 “이 장면을 보고 용기 내서 장기기증에 대해 인터넷에 찾아봤는데 그렇게 무서운 일이 아니더라”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장기 기증은 최대 9명한테 생명을 선물해줄 수 있어 너무 행복한 일인 것 같아 작년 5월에 등록했다”고 했다.

지난 3월 생일을 맞아 장기기증 희망 등록을 한 김수안(17)양도 “지난해 드라마를 보고 장기기증에 대해 처음 알게 됐다. 의미 있는 생일을 보내고 싶어 생일이 되길 기다렸다가 등록했다”고 말했다. 김양은 부모님 반응에 대해 “하고 나서 말씀드렸다”며 “어차피 화장(火葬)하면 몸이 다 타서 없어지는데, 그것보단 제 기관이 다른 사람 몸에서 살아 움직이면 부모님이 덜 슬퍼하시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청소년 장기기증 홍보에 앞장서”

왼쪽부터 김나원(18)양, 김수안(17)양, 조정화(18)양이 '청소년 생명나눔 홍보단'으로 캠페인 활동하고 있는 모습.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왼쪽부터 김나원(18)양, 김수안(17)양, 조정화(18)양이 '청소년 생명나눔 홍보단'으로 캠페인 활동하고 있는 모습.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김나원양, 김수안양, 조정화양은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서 ‘청소년 생명 나눔 홍보단’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 5월부터 시작해 주로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장기기증 관련 인식을 개선하고 주변 청소년들에게 장기기증 희망 등록을 독려하고 있다.

이들은 “장기기증을 하면 시신 처리를 제대로 안 한다는 등 아직도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며 “인식 개선과 함께 올바른 정보에 대해 홍보도 하고 싶어 이런 활동까지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장기 기증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를 풀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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