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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얻게 된 여성에 찾아온 천사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현예슬의 만만한 리뷰(113) 영화 ‘펭귄 블룸'

아기가 걷기 위해서는 약 3000번을 넘어지고 일어서는 걸 반복해야 한다고 합니다. 지금 아무렇지 않게 걷고 있는 우리도 예전엔 무려 3000번이나 넘어졌다는 거죠. 하지만 막상 걷게 되기 시작하면서 우리가 넘어졌던 시절이 있었다는 걸 잊는 것 같습니다. 마치 처음부터 잘 걸었던 것처럼요.

오늘 소개해드릴 영화는 누구보다도 잘 걸었던 한 사람이 인생에서 넘어지게 되면서 겪는 이야기입니다. 다시는 일어설 수 없다고 단정 지어 버리고는 세상과 담쌓으려 하는데요. 한 ‘특별한 존재'를 만나게 되면서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죠. 무엇보다도 이 이야기가 실화라는 점에서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영화 ‘펭귄 블룸' 입니다.

 한순간의 사고로 인생이 바뀌어버린 샘 블룸 역의 나오미 왓츠. [사진 넷플릭스]

한순간의 사고로 인생이 바뀌어버린 샘 블룸 역의 나오미 왓츠. [사진 넷플릭스]

서핑하다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된, 그야말로 바다가 이어준 엄마 샘(나오미 왓츠 분)과 아빠 캠(앤드루 링컨 분) 사이에는 세 아들 노아, 루번, 올리가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활동적이었고 아이들을 사랑했던 샘은 휴가를 맞아 가족들과 함께 떠난 태국 여행이 인생에서 돌이킬 수 없는 후회로 남게 됩니다.

여행 중 한 건물의 옥상에 올라갔던 샘은 난간에 기대어 앉으려던 동시에 부식된 나무 지지대가 부러지게 되면서 바닥으로 추락했던 거죠. 병원으로 바로 옮겨졌지만 팔 아래로는 전혀 움직일 수도 없고 감각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오랜 병원 생활 끝에 집으로 돌아온 샘은 모두 그대로인 반면 오직 자신만이 달라진 모습에 적응하지 못하는데요. 친구와의 만남도 병원 외의 바깥 외출도 모두 피합니다.

한편 첫째 아들 노아는 바다로 놀러 나갔다가 새끼 까치 한 마리가 위협받는 상황을 목격하는데요. 그 길로 바로 집으로 데려옵니다. 작은 바구니로 둥지를 만들어준 노아는 까치에게 ‘펭귄'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죠. 그렇게 블룸 가족에게 여동생이 한 마리(?) 생겼습니다.

집에 혼자 있는 날이 많은 샘에게 펭귄은 귀찮은 존재였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고 집안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어질러놓는 통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게 되었는데요. 막상 꿀통에 빠져 허우적대는 모습을 보자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꿀 통에 빠진 펭귄을 구해내는 샘. [사진 넷플릭스]

꿀 통에 빠진 펭귄을 구해내는 샘. [사진 넷플릭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장면에서 샘은 펭귄을 자신과 동일시한 것 같습니다. 영화 중간중간 샘은 물속에 빠져 헤매다 깨는 꿈을 꾸는데 그 상황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거든요. 펭귄이 비슷한 상황을 겪게 되자 주저 없이 꺼내주고 보살펴주는 모습을 보면서 본인도 누군가에 의해 꺼내졌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친 건 아니었을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 일을 계기로 샘은 펭귄을 당분간 집에서 키울 수 있도록 허락합니다. 펭귄은 막내딸로서 가족에게 기쁨을 주지만 모든 상처를 극복하기엔 역부족이었나 봅니다. 어느 날 샘은 집 한켠에 붙어있던 자신의 사진 액자를 깨부숴버립니다. 그 사진들은 더이상 제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외출하고 돌아온 남편과 아이들은 그런 샘에게 점점 지쳐갑니다.

이때 샘의 곁에 있던 펭귄은 보란 듯 샘을 지나쳐 처음으로 바깥세상을 날아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어미 새가 없어 나는 법을 가르치지 못해 걱정하던 가족들이 무색할 정도로 멋진 비행이었죠. 펭귄의 비행을 직접 본 샘의 마음에도 작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녀도 과연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고 날아오를 수 있을까요.

영화의 실제 모델인 샘 블룸과 펭귄. [사진 샘 블룸 인스타그램 캡처]

영화의 실제 모델인 샘 블룸과 펭귄. [사진 샘 블룸 인스타그램 캡처]

특히 사고를 당한 후 그렇게 좋아했던 물 근처에 가까이 가지도 않던 샘이 펭귄으로 인해 캬악을 시작하게 되는데요. 첫 수업에서 선생님은 이런 말을 합니다. “오늘 훈련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에요. 물에 빠지세요."

다리가 자유롭지 못한 샘은 말도 안 된다며 강하게 거부하는데요. 남편과 아들들이 보고 있는 상황에서 포기할 수 없었던 샘은 용기를 내어 배를 뒤집습니다. 처음엔 허우적대던 샘은 금세 자연스럽게 물 위로 떠오르는데요. 이 장면을 통해 꿈에서 물에 빠져 허우적대던 자신을 꺼낼 수 있던 건 가족도 펭귄도 아닌 오직 자신뿐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

원작을 보면 ‘세상에는 다양한 모습과 크기의 천사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블룸 가족에게 있어 평생 ‘막내딸’이 될 펭귄은 그야말로 천사가 아니었을지.

펭귄 블룸

영화 '펭귄 블룸' 포스터.

영화 '펭귄 블룸' 포스터.

원작: 캐머런 블룸, 브래들리 트레버 그리브의 ‘펭귄 블룸'

감독: 글렌딘 어빈
각본: 해리 크립스, 숀 그랜드
출연: 나오미 왓츠, 앤드류 링컨
음악: 마르첼로 자르보스
장르: 드라마
상영시간: 95분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개봉일: 2021년 1월 27일 (넷플릭스 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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