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살에 하반신 마비된 의대생, 의사→변호사 유튜버 된 사연 [별터뷰]

중앙일보

입력 2021.07.10 08:00

업데이트 2021.07.10 14:55

서울 서초구의 한 변호사 사무실. 자격증 2개와 은색 액자가 눈에 띄었다. 그런데, 그 증명서를 보니 사무실 주인의 정체는 더 헷갈렸다. 변호사,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그리고 유튜브 ‘실버버튼’의 주인…. 실버버튼은 구독자가 10만명이 넘는 유튜브 채널 운영자에게 주어진다.

박성민 변호사의 사무실 로비에 놓인 '의사명허증', '전문의 자격증', '형사전문 변호사 등록증'과 유튜브 '실버버튼'. 정진호 기자

박성민 변호사의 사무실 로비에 놓인 '의사명허증', '전문의 자격증', '형사전문 변호사 등록증'과 유튜브 '실버버튼'. 정진호 기자

사무실의 별난 주인 박성민(36)씨는 의사 출신 변호사 겸 유튜버다. 직업이자 스펙을 나열하자 그는 “주변 사람들은 ‘박쥐 아니냐’고까지 말한다”며 쑥스러워했다. 그의 다재다능은 포유류이자 조류인 박쥐의 양면성을 가볍게 뛰어 넘는다. 고등학교 때 꿈은 로봇을 만드는 과학자였다. 그 꿈을 찾아 카이스트(KAIST)에 지원해 합격했다. 그러나, 수능이 끝나고 봉사를 위해 찾은 꽃동네에서 목표가 바뀌었다.

그는 카이스트가 아닌 인하대 의대에 진학한다. 의대에 합격하더라도 진학할 생각은 없었던 박씨는 봉사 활동 중 손과 발을 닦아드렸던 할머니가 눈앞에서 갑자기 사망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 집으로 올라가는 버스 안에서 과학자가 아닌 의사의 길을 걷기로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그는 2년 뒤 다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노는 게 좋아서 스키 동아리에 가입한 21살의 의대생이었다. 그러나, 스키를 타다 점프한 뒤 넘어지면서 허리로 바닥에 떨어졌다. 이후 그는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됐다. 허리가 골절되면서 하반신 마비가 왔다. 병원과 재활센터에서 1년간 재활했지만, 그는 지금 휠체어를 탄다.

불편해진 몸으로 의대를 계속 다녀 차석으로 졸업하고 의사면허증도 땄지만, 그는 의사 가운을 입지 않았다. “의료인은 몸을 많이 쓰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서 잘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법조인은 아무래도 앉아서 하는 일이 많은 것 같았다.” 박씨가 2010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입학한 이유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별을 찾았다. 2014년 로펌에서 의료사건만 맡으며 진료기록부만 보다 한계를 느껴 병원으로 다시 들어가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지금은 다시 변호사로 활동한다. 그 파란만장한 인생에서 어떤 순간이 가장 강렬했을까. ‘지금의 박성민을 만든 한순간’을 꼽아달라고 했더니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유튜브를 시작한 것.”

실버버튼을 갖게 된 그의 유튜브 이야기는 일문일답 속에 담겨 있다.

당신은 어떤 별이라고 생각하나.
시간이 지나도 비슷한 밝기로 빛나는 별. 별도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서 색이랑 밝기가 변한다고 한다. 그런데 저는 변하지 않는 별이 되려고 한다. 그렇게 밝게 빛을 내진 않아도 항상 잔잔하고 은은하게 같은 자리에 있는 그런 별 말이다.
학교도, 직업도 많이 바뀌었는데.
그때마다 일어난 일이 있었다. 상황에 따라갔을 뿐이다. 시간을 돌려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아마 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다.
21살의 의대생이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을 때의 심경을 물어도 될까.
막상 다쳤을 때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던 것 같다. 실감이 안 나기도 했고, 제가 다쳤을 때 ‘줄기세포 개발에 성공했다’는 분이 있었다. 그 사람(황우석 박사)이 TV에 나와서 강원래씨 손을 붙잡으면서 일으켜 세워주겠다고 하는 것을 보면서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고야 줄기세포 상용화가 멀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병원을 나와 학교로 복학하고 사회로 나오면서 화장실도 제대로 돼 있지 않고, 계단이 많으니까 ‘아 힘들구나’ 생각했다.
허리를 다쳐 하반신 마비가 오기 전인 2004년 20살의 박성민씨. [박 변호사 제공]

허리를 다쳐 하반신 마비가 오기 전인 2004년 20살의 박성민씨. [박 변호사 제공]

지금의 박성민을 있게 한 장면을 꼽는다면.
지금의 박성민은 아무래도 변호사 박성민이잖아요. ‘닥터프렌즈’라는 의사 유튜버 친구를 따라서 ‘로이어프렌즈’라는 유튜브를 시작한 게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는데 변호사 유튜브를 하는데 의사를 하고 있으면 안 되니까 변호사를 계속하게 됐다. 그 전까지는 사실 변호사와 의사 중에 어떤 것을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유튜브에 남다른 애정을 가진 이유가 있나.
사회적으로 관심받은 이슈가 터졌을 때 서로 생각을 나누는 게 좋다. 제가 가진 생각을 얘기하면 다른 사람들도 공감을 해주거나 제 생각과는 다른 얘기를 하기도 한다. 얘기를 주고받는 기회 자체가 유튜브를 통해 많이 생기고 있다. 많은 분이 좋아하니까 목표하는 바를 위해 계속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의사, 변호사, 유튜버 중엔 유튜버가 제일 재밌다.
앞으로의 목표는.  
가까운 목표는 가정을 꾸리는 거다. 지금 가장 큰 고민도 결혼이다. 30대 후반인데 만나는 사람은 없다. 장기적으로는, 제 이야기가 꼭 맞는 건 아니더라도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쳤으면 한다. 유튜버든, 강연이든, 정치든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인물이 되고 싶다. 장애인으로 사회생활을 활발히 하다 보니까 고치고 싶은 게 한둘이 아니다.
어떤 별로 기억되고 싶나.
북극성으로 기억되고 싶다. 내비게이션 기술이 발달하기 전엔 별을 보고 항해하고 길을 찾았다고 한다. 무조건 제 의견이 맞아서 따르는 건 아니더라도 박성민이라는 사람의 의견을 궁금해하고, 들어보는 그런 정도의 사람은 되고 싶다. 북극성처럼 하나의 기준점이 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