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파이·요요처럼 되기 싫다…‘보톡스 운명’ 걱정하는 엘러간

중앙일보

입력 2021.07.10 05:00

보툴리눔 톡신을 시술하고 있는 환자. [중앙포토]

보툴리눔 톡신을 시술하고 있는 환자. [중앙포토]

“타사의 보톨리눔 톡신 제품이 ‘보톡스’로 표기·언급되지 않도록 협조 요청드립니다.”
중앙일보가 지난 5일 보톡스 기사를 보도하자 당일 아일랜드 제약사 엘러간이 중앙일보에 발송한 협조 요청문이다. ▶중앙일보 5일 경제2면 ‘[View&Review] 보톡스가 뭐길래, 대기업이 눈독 들일까’

협조 요청문에서 엘러간은 “‘보톡스’는 엘러간이 판매하고 있는 보톨리눔 톡신 주사제 제품의 명칭”이라며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200여개 이상의 국가에서 등록 상표를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허청도 “보톡스는 앨러간이 등록한 의약품 명칭이 맞다”고 설명했다.

통상 보톡스로 불리는 제품을 엘러간이 “보톡스라고 부르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 건 상품의 상표권을 뺏길 가능성이 있어서다. 특정인이나 특정 기업의 상표를 대중들이 범용적으로 사용하면서 해당 상품 자체를 지칭하는 현상을 ‘관용표장화’라고 부른다. 특정 상품이 관용표장화되면 상표의 가치를 상실한다. 상표권을 보유했던 상표권자라도 상표권을 주장할 수 없게 된다는 의미다.

엘러간이 지난 5일 중앙일보에 발송한 협조 요청문. 문희철 기자

엘러간이 지난 5일 중앙일보에 발송한 협조 요청문. 문희철 기자

관용포장화가 뭐길래…보톡스 상표 고민하는 엘러간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중소벤처기업부·특허청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각기 다른 제조업체의 초코파이를 들고 특허청장에게 질의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중소벤처기업부·특허청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각기 다른 제조업체의 초코파이를 들고 특허청장에게 질의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대표적인 사례가 초코파이다. 초코파이는 원래 1974년 동양제과(현 오리온)가 상표 등록한 제품이다. 하지만 워낙 초코파이가 유명해진 게 오히려 화근이었다. 이제 초코파이라고 하면 누구나 동그란 빵과자에 초콜릿 코팅을 입히고 마시멜로를 끼워 넣은 제품을 연상한다.

초코파이가 유명해지면서 특허청은 초코파이의 상표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1979년 동양제과가 ‘롯데 초코파이의 상표 등록을 취소해달라’고 요구한 특허심판에서 특허청은 “일반 수요자나 거래자 사이에서는 초코파이가 상표로 인식되기보다는, 특정 과자류를 지칭하는 명칭으로 인식되고 있다”며 “초코파이라는 용어가 보통명칭 혹은 관용표장이 돼 상품의 식별력을 상실했다”고 판단했다. 전주한옥마을 등에서 ‘초코파이’를 팔거나 심지어 롯데제과·풍년제과 등 경쟁사가 초코파이라는 제품을 출시해도 상표권 위반이 아닌 이유다.

물론 이는 국가마다 판단이 다를 수 있다. 한국에선 초코파이를 누구나 쓸 수 있지만, 베트남에선 다르다. 오리온은 지난 1994년 베트남에서 초코파이 상표를 출원·등록했다. 그런데 2015년 베트남 현지 제과업체가 ‘ChocoPie’ 상표를 무단으로 사용해 제품을 생산·수출하면서 오리온과 상표권 분쟁이 발생했다.

초코파이 상표권 취소 심판에서 베트남특허청(NOIP)은 “초코파이는 베트남에서 오리온이 독점적·배타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상표권”이라며 베트남 현지 업체의 상표권 취소 요청을 기각했다.

오리온이 베트남에서 판매하는 '초코파이 다크'. 오리온은 한국과 달리 베트남특허청으로부터는 초코파이 상표권을 인정받았다. [사진 오리온]

오리온이 베트남에서 판매하는 '초코파이 다크'. 오리온은 한국과 달리 베트남특허청으로부터는 초코파이 상표권을 인정받았다. [사진 오리온]

초코파이처럼 뺏기나, 스카치테이프처럼 지키나

외국인이 불닭볶음면을 먹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면서 불닭이 화제였다. 불닭은 관용표장의 대표적 사례다. [유튜브 캡쳐]

외국인이 불닭볶음면을 먹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면서 불닭이 화제였다. 불닭은 관용표장의 대표적 사례다. [유튜브 캡쳐]

불닭도 비슷한 관용표장 사례다. 지난 2001년 ‘불닭’이라는 상표를 처음 특허청에 등록한 건 강원도 원주시 소재 부원식품이다. 부원식품은 2003년 서울 마포구 불닭 프랜차이즈 홍초불닭이 자신들의 상표권을 침해했다며 홍초불닭의 등록 무효심판을 청구했다. 또 전국에 있는 400여 불닭 상호 사용업체에 경고장을 발송하고 상표 사용의 전면 중지를 요구했다.

하지만 특허법원은 2008년 “‘불닭’은 국립국어원의 신조어 사전과 인터넷 국어사전·백과사전에 등재된 명사이며, 업종 분류에서도 찜닭 등과 함께 독립적인 닭고기 요리로 분류돼 있다”며 “절반 이상의 소비자가 불닭을 보통명사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불닭’이라는 표현은 상표로서의 식별력을 잃었다”고 판단했다.

국내에서 관용표장화된 상표는 이 밖에도 부지기수다. 앱스토어·요요·호치키스·나일론·아스피린·매직 블록·드라이아이스 등이다.

특허청이 정부대전청사에서 상표권 위조상품 단속품들을 점검했다.   사진은 위조상품 단속 물품. [사진 특허청]

특허청이 정부대전청사에서 상표권 위조상품 단속품들을 점검했다. 사진은 위조상품 단속 물품. [사진 특허청]

반면 누구나 범용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여전히 상표권을 인정받고 있는 경우도 있다. 미국의 광학·제어 장비 제조업체 3M의 스카치테이프가 대표적이다. 1930년대에 스카치테이프를 고안한 3M사는 ‘스카치’라는 상표가 유명해지자 상표권을 유지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스카치’가 3M 상표라는 내용의 광고를 집행하고, 언론이나 사전에 스카치가 상품명인 것처럼 사용되면 시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보톡스가 중앙일보에 협조요청문을 발송한 것도 같은 이유다.

목성호 특허청 상표디자인심사국장은 “상품명과 구분되지 않은 상표는 상표권이 없어질 수 있기 때문에, 보톡스처럼 새로운 유형의 상품에 사용된 상표의 경우 관용표장화 가능성이 있다”며 “상표의 관용표장화를 예방하려면 상표권자가 세심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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