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소
다이애나 로저스
롭 울프 지음
황선영 옮김
더난콘텐츠
우리 집 밥상에 언제부터 현미가 등장했는지 기억을 되짚어봤다. 1980년대 후반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는 그때부터 현미를 섞어 밥을 지었다. 계기는 바로 한 공영방송사가 방송한 재미교포 의사 이상구 박사의 건강 강의였다. 당시 이 박사 강의는 같은 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어머니도 그 프로그램의 열렬한 시청자였다. 방송 다음 날 우리 집 밥상은 ‘저 푸른 초원’이었고, 초원 밥상에는 현미가 잔뜩 섞인 거친 밥이 올랐다. 이 박사 건강론 요지는 “채식을 해야 모든 질병을 이길 수 있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였다. 이 박사는 적색육인 소고기는 물론, 돼지고기와 닭고기, 심지어 우유와 달걀도 먹지 말라고 했다. 이 박사의 강의가 이어지는 동안 육류 소비가 확 줄었다. 생산자와 판매자는 울상이 됐다. 방송사와 농림수산부에는 항의가 빗발쳤다. 관련 분야 국내 전문가의 반론도 나왔다. 이 박사의 건강론은 육식을 많이 하는 서양인에게나 들어맞을 뿐, 육류 소비가 많지 않은 한국인에는 맞지 않는다는 거였다. 식생활의 패러다임이 ‘양’에서 ‘질’로 전환하는 시절의 풍경이었다.
이 책은 이 박사의 건강론과 같은 채식 위주 식단에 대한 비판서다. 고기를, 특히 소고기를 ‘꼭’ 먹어야 한다고 다양한 근거를 들어 주장한다. 최근 채식주의자가 늘고 있다. 채식을 소개하고 권하는, 또 채식주의자 경험담을 담은 책이 많이 나오고 있다. 채식주의자도 동물성 식품의 섭취량에 따라 층위가 나뉜다. 페스코 폴로는 적색육을 뺀 식물, 닭, 생선을 먹는다. 페스코는 생선까지 먹지 않는다. 알토 오보는 채소, 유제품, 달걀만 먹는다. 동물성 식품을 전혀 먹지 않는 게 채식주의자의 대명사처럼 쓰이는 비건이다. 이 박사는 비건 식단을 권했던 셈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저자들은 왜 육류, 특히 적색육 섭취를 강력하게 권할까. 인간이 건강하게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영양소가 있는데, 그중 일부는 고기를 먹어야 얻을 수 있거나, 효율적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효율적’이라고 얘기하는 건, 예컨대 고기라면 몇 그램만 섭취하면 되는 영양소를 얻기 위해, 식물이라면 수십~수백 배를 섭취해야 하는 게 있어서다. 식물에서 얻을 수 없는 필수 아미노산이나 미네랄 등이다.
저자들은 먼저 소고기 섭취의 필요성을 영양학적으로 설명한다. 이어 최근 전 세계적으로 육식 반대의 새로운 근거로 등장한 환경 및 윤리 문제를 꺼낸다. 환경 문제로는 소가 트림이나 방귀를 통해 배출하는 온실가스, 그리고 이로 인한 지구 온난화 문제다. 또 축산 폐수 등으로 인한 토양과 수질의 오염 문제도 거론한다. 저자는 그런 문제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다만 “고기를 안 먹으면 온실가스 배출량이 (고작) 2.6% 감소한다”고 전한다. 또 먹기 위해서 동물을 죽이는 문제의 윤리적 측면을 다양하게 고찰한 뒤 “먹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은 뭘까”라고 질문을 던진다.
책 제목인 ‘신성한 소(Sacred Cow)’는 중의적이다. 인간의 생존에 중요한 영양소를 제공하는 소 그 자체를 뜻하는 동시에, ‘(특히 부당하게) 그 어떤 비판도 허용되지 않는 생각이나 관습, 제도’라는 뜻이다. 육식과 채식을 둘러싼 논쟁은 뜨겁게 진행 중이다. 이 책이 정답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어느 쪽 입장에서 서 있더라도 이 책은 그 찬반의 근거를 곱씹는 계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