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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기 먹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44호 21면

신성한 소

신성한 소

신성한 소
다이애나 로저스
롭 울프 지음
황선영 옮김
더난콘텐츠

우리 집 밥상에 언제부터 현미가 등장했는지 기억을 되짚어봤다. 1980년대 후반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는 그때부터 현미를 섞어 밥을 지었다. 계기는 바로 한 공영방송사가 방송한 재미교포 의사 이상구 박사의 건강 강의였다. 당시 이 박사 강의는 같은 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어머니도 그 프로그램의 열렬한 시청자였다. 방송 다음 날 우리 집 밥상은 ‘저 푸른 초원’이었고, 초원 밥상에는 현미가 잔뜩 섞인 거친 밥이 올랐다. 이 박사 건강론 요지는 “채식을 해야 모든 질병을 이길 수 있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였다. 이 박사는 적색육인 소고기는 물론, 돼지고기와 닭고기, 심지어 우유와 달걀도 먹지 말라고 했다. 이 박사의 강의가 이어지는 동안 육류 소비가 확 줄었다. 생산자와 판매자는 울상이 됐다. 방송사와 농림수산부에는 항의가 빗발쳤다. 관련 분야 국내 전문가의 반론도 나왔다. 이 박사의 건강론은 육식을 많이 하는 서양인에게나 들어맞을 뿐, 육류 소비가 많지 않은 한국인에는 맞지 않는다는 거였다. 식생활의 패러다임이 ‘양’에서 ‘질’로 전환하는 시절의 풍경이었다.

『신성한 소』의 저자들은 육식을 옹호한다. 채식보다 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AP=연합뉴스]

『신성한 소』의 저자들은 육식을 옹호한다. 채식보다 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AP=연합뉴스]

이 책은 이 박사의 건강론과 같은 채식 위주 식단에 대한 비판서다. 고기를, 특히 소고기를 ‘꼭’ 먹어야 한다고 다양한 근거를 들어 주장한다. 최근 채식주의자가 늘고 있다. 채식을 소개하고 권하는, 또 채식주의자 경험담을 담은 책이 많이 나오고 있다. 채식주의자도 동물성 식품의 섭취량에 따라 층위가 나뉜다. 페스코 폴로는 적색육을 뺀 식물, 닭, 생선을 먹는다. 페스코는 생선까지 먹지 않는다. 알토 오보는 채소, 유제품, 달걀만 먹는다. 동물성 식품을 전혀 먹지 않는 게 채식주의자의 대명사처럼 쓰이는 비건이다. 이 박사는 비건 식단을 권했던 셈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저자들은 왜 육류, 특히 적색육 섭취를 강력하게 권할까. 인간이 건강하게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영양소가 있는데, 그중 일부는 고기를 먹어야 얻을 수 있거나, 효율적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효율적’이라고 얘기하는 건, 예컨대 고기라면 몇 그램만 섭취하면 되는 영양소를 얻기 위해, 식물이라면 수십~수백 배를 섭취해야 하는 게 있어서다. 식물에서 얻을 수 없는 필수 아미노산이나 미네랄 등이다.

저자들은 먼저 소고기 섭취의 필요성을 영양학적으로 설명한다. 이어 최근 전 세계적으로 육식 반대의 새로운 근거로 등장한 환경 및 윤리 문제를 꺼낸다. 환경 문제로는 소가 트림이나 방귀를 통해 배출하는 온실가스, 그리고 이로 인한 지구 온난화 문제다. 또 축산 폐수 등으로 인한 토양과 수질의 오염 문제도 거론한다. 저자는 그런 문제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다만 “고기를 안 먹으면 온실가스 배출량이 (고작) 2.6% 감소한다”고 전한다. 또 먹기 위해서 동물을 죽이는 문제의 윤리적 측면을 다양하게 고찰한 뒤 “먹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은 뭘까”라고 질문을 던진다.

책 제목인 ‘신성한 소(Sacred Cow)’는 중의적이다. 인간의 생존에 중요한 영양소를 제공하는 소 그 자체를 뜻하는 동시에, ‘(특히 부당하게) 그 어떤 비판도 허용되지 않는 생각이나 관습, 제도’라는 뜻이다. 육식과 채식을 둘러싼 논쟁은 뜨겁게 진행 중이다. 이 책이 정답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어느 쪽 입장에서 서 있더라도 이 책은 그 찬반의 근거를 곱씹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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