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면서도 몰랐던 명품 이야기

콩 발효시켜 조선간장 풍미 살려, 미쉐린 셰프들도 “굿”

중앙선데이

입력 2021.07.10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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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4호 24면

[쓰면서도 몰랐던 명품 이야기] 액체 조미료 ‘연두’

샘표식품이 조선간장 현대화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만든 액체 조미료 ‘연두’. [사진 윤광준]

샘표식품이 조선간장 현대화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만든 액체 조미료 ‘연두’. [사진 윤광준]

평소 친하게 지내는 선배의 용문 주말 주택에 자주 들른다. 이 집의 이름인 ‘다헌’을 내가 지었는데, 건너편 산봉우리가 창문 프레임에 온전하게 담기는 독특한 풍광은 이 집의 자랑이다.

아미노산에 채수 더해 감칠맛
재래 장 현대화 개발 과정 부산물

어떤 음식과도 어울려 깊은 맛 내
스페인·영국·독일 등 외국서도 인기

제 공간에서 혼자만의 삶을 꿈꾸는 남자들의 큰 걸림돌은 뭘까. 우습게도 혼자 밥을 차려 먹을 자신이 없다는 점이다. TV에 나오는 나이 든 남자들이 아내에게 내뱉는 말 “밥 줘”를 떠올려보면 안다. 끼니를 제 손으로 해결해 본 적이 없으니 그 불안감은 이해 못 할 바 아니다. 라면도 제대로 끓이지 못하는 내 주변 위인들의 고민도 비슷하다. 마누라에게 기대지 않고 제힘으로 밥 챙겨 먹을 준비가 되어 있다면, 꿈의 반은 해결된 셈이다. 그놈의 밥을 해결하지 못해 기세 좋게 집 나갔다 슬그머니 다시 들어온 남자들 여럿 봤다.

용문의 선배라고 처음부터 잘했을 리 없다. 남들보다 밥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을 뿐이다. 식당에 때맞춰 가기 번거롭고, 채식주의자의 입맛에 맞는 메뉴가 없는 이유도 한몫했다. 여기에 음식 만드는 일이란 창조 행위라는 지론도 갖고 있었다. 게다가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며 다양한 음식도 먹어보았다. 혼자 얼마든지 요리할 수 있고 음식을 즐거움의 수단으로 삼겠다는 자신감도 넘쳤다.

평소 하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선배의 파스타를 먹어보고 알았다. 이후 식자재와 조리도구가 나날이 늘었다. 세상의 온갖 요리를 다 해 볼 기세였다.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기 위한 준비와 노력은 구체적이고 치밀했다.

 샘표식품이 조선간장 현대화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만든 액체 조미료 ‘연두’. [사진 윤광준]

샘표식품이 조선간장 현대화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만든 액체 조미료 ‘연두’. [사진 윤광준]

요리 솜씨는 어느덧 들깨 국수와 나물, 국물 요리까지 넘보게 됐다. 한식 명인을 초빙해 사사했고, 맛집에 들러 조리의 비밀을 알아낸 성과다. 좋은 재료를 쓰고 성의와 신명을 더했으니 어설픈 셰프보다 음식 맛이 훌륭했다. 선배는 어느 때부터인가 사람들을 불러 음식 대접하는 일을 즐기는 듯했다. 음식을 매개로 펼쳐지는 말의 성찬이 얼마나 즐거운지 알아서다. 좋은 음식과 함께하는 시간 동안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평생 남이 해 준 음식을 먹다 스스로 만드는 즐거움을 깨달은 기쁨일 것이다.

조리 실력이 높아갈수록 우리 음식의 비중을 높여갔다. 평소 손 많이 가는 반찬을 내놓는 백반 가격이 파스타 한 그릇보다 싸다는 점을 아쉬워했다. 직접 요리해 보게 된 이후의 변화다. 제철 나물과 야채로 반찬 만드는 일이 얼마나 번거롭고 손맛 내기도 어려운가를 실감했다. 단순해 보이는 음식이 외려 고도의 감각을 동원해야 맛있게 조리된다는 사실도 터득했다.

어느 날 선배가 끓여준 된장국을 먹게 됐다. 첫 숟가락을 뜨는 순간 “우와!”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평생 먹었던 된장국이 이토록 맛있게 느껴지긴 처음이다. “도대체 어떻게 끓였길래 이런 맛이 납니까?”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해준 비결이란 싱거웠다. “야채 넣고 된장 풀어 끓이다 ‘연두’만 넣으면 돼.” “된장은 알겠는데 그다음이 뭐라고요?” “연두라니까 연두.”

오뚜기 같은 모양의 병에 담긴, 간장도 아니고 조미료도 아닌 ‘요리 에센스’란 이름이 붙은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멸치를 비롯해 별의별 다시를 쓴 된장국도 연두만큼 인상적이진 않았다. 믿을 수 없었다. 대단한 맛의 비밀을 알아낸 듯 잊어버리지 않도록 연두, 연두를 뇌까렸다.

연두는 70년 넘게 간장을 만들어온 샘표식품이 개발한 액체 조미료다. 비교될 만한 제품도 없다. 가장 가까운 것이 있다면 액체 젓갈쯤 되지 않을까. 멸치나 황석어, 까나리를 발효시켜 걸러낸 액젓은 짠맛과 감칠맛을 더해준다. 대체 불가의 깊은 맛 때문에 애용하지만, 역한 냄새로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식품이기도 하다. 연두는 생선 대신 콩을 발효시켜 만들었고 쿰쿰한 냄새까지 없앤 액젓이라 할 만했다.

콩을 발효시켜 만들었다면, 왜 다른 메이커들은 이런 걸 만들어내지 못했을까. 다헌에서 비롯된 연두의 호기심은 기어코 이를 만든 연구소와 본사를 찾게 했다. 연구소의 규모와 수준은 상상을 초월했다. 발효과학의 체계적 뒷받침이 연두를 만든 밑심 임을 알았다. 연두는 재래 장(醬)의 현대화 과정에서 얻어진 부산물이었다.

조선간장은 메주와 소금물만으로 빚는다. 분해되고 발효와 숙성을 거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100년 넘은 간장은 찐득한 겔 상태로 바뀌고 짠맛에 더해진 단맛마저 느껴질 정도다. 깊은 맛은 대체 불가의 독특함이 있다. 샘표식품은 이 조선간장을 현대화시키기로 결정한다.

콩에서 맛의 원천인 아미노산을 추출하고 펩타이드로 깊은 맛을 더한 조선간장의 풍미가 재현됐다. 전국의 종가를 돌아다니며 씨 간장을 입수해 얻은 데이터가 총 동원될 만큼 정성을 들인 성과다.

문제는 정작 시장에서 환영받지 못했다는 데 있다. 과거의 향수를 지닌 세대는 깊은 맛과 풍미에 열광했지만 가격이 비싸 구매를 꺼렸다. 과거의 기억이 없는 신세대는 평소 먹던 진간장을 더 선호했다. 조선간장의 부활을 꿈꾸었던 부동의 1위 메이커는 의외의 반응이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개발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성과를 얻는 반전이 벌어진다. 조선간장 제법으로 얻어진 아미노산에 채수를 더해보니 세련된 감칠맛이 난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붙는 힘이 약한 끈적이를 역발상으로 활용해 성공한 3M의 포스트잇과 다르지 않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은 세대가 조선간장의 맛을 다른 측면에서 접근한 결과였다. 간편하게 깊은 맛을 내는 연두는 우리 장의 전통이 없었다면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연두를 알아본 사람은 외국의 미쉐린 셰프들이었다. 그들에겐 간장의 선입견이 없다. 어떤 음식과도 어울려 세련된 풍미를 더해준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셰프들은 재료의 고유한 맛을 해치지 않고 음식의 풍미가 높아진다는 점에 큰 점수를 주고 있다. 자신의 요리에 적용한 맛이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그 여파는 스페인과 영국, 독일에서 소개된 연두의 인기로 확인된다. 유난히 맛있는 채소와 수프의 비결이 무엇인지 알게 된 거다.

연두를 써 보니 공감의 지점이 많이 생긴다. 다헌에서 맛본 된장국의 맛은 이제 나도 낼 수 있다. 짠맛 신맛 쓴맛 단맛의 기본 맛에 더해진 감칠맛이 큰 역할을 한다는 걸 알았다. 우거지와 된장의 맛은 그대로 남고 담백한 풍미가 더해져야 원하던 맛이다. 쓴맛이 느껴지던 된장국에 연두를 넣어봤다. 매끄러운 단맛이 더해진 감칠맛이 물씬 느껴졌다. 조선간장의 진화가 여기까지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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