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서울로7017…한국 ‘도시재생’ 일본인들도 관심

중앙선데이

입력 2021.07.10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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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4호 27면

전 아사히신문 기자의 ‘일본 뚫어보기’

일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온라인 수학여행’에 한국의 도시재생 명소들이 소개된다. 서울역고가도로를 개조한 서울로7017.

일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온라인 수학여행’에 한국의 도시재생 명소들이 소개된다. 서울역고가도로를 개조한 서울로7017.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으로 해외여행이 어려워진 가운데 한국관광공사 후쿠오카지사가 일본 학생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수학여행’을 기획했다. 7월에 서울편, 8월에 부산편을 진행할 예정이다. ‘여행’ 당일은 온라인으로 실시간 방송하지만 그때 보여 줄 몇 가지 영상을 사전에 녹화했다. 나는 현지 리포터로 참여하고 촬영을 준비하면서 도시재생에 대해 공부하게 됐다.

문화비축기지·감천문화마을 등
옛것 살리며 새 가치 만들어내
일 학생 온라인 수학여행에 소개

일 고속도·터널 등 노후화 진행
맹목적 경제 성장의 희생 반성
‘지속가능한 도시’ 만들기 배워야

이번 온라인 수학여행의 주제는 ‘SDGs’다. 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는 지구환경이나 경제활동 등을 지속가능하게 하기 위해 모든 유엔 가입국이 2030년까지 달성하기로 한 목표다. 2015년 유엔총회에서 결의됐다. 한국에서는 SDGs에 대해 모르는 사람도 많지만, 일본에서는 꽤 많이 보도되고 있어서 학생들의 관심도 많은 듯하다.

SDGs에는 성평등 달성이나 지속가능한 에너지 제공 등 17가지 목표가 있다. 이번 수학여행에서는 특히 ‘지속가능한 도시와 인간 거주’에 해당하는 도시재생에 관한 곳을 소개하기로 했다. 서울은 청계천, 서울로7017, 문화비축기지, 부산은 초량 이바구길, 감천문화마을 등이다.

미술관이 된 부산 감천문화마을. 김경빈 기자

미술관이 된 부산 감천문화마을. 김경빈 기자

서울의 도시재생 프로젝트는 2018년에 ‘리콴유 세계도시상’을 수상했다. ‘높은 삶의 질과 함께 포용적이고 창의적이며 지속가능한 도시’로 평가받았다고 한다. 청계천이 대표적인 도시재생 사례다. 내가 한국에 처음 유학 왔던 2002년엔 친구들과 종로에서 밥을 먹는 기회가 많았는데 지금 청계천이 복원된 자리는 어둡고 무서운 분위기였다. 1976년에 만들어진 고가도로가 낡아서 위험하다고도 들었다. 그런데 2005년에 다시 유학 왔을 때 고가도로가 철거되고 원래 있던 청계천이 복원됐다. 도심의 오아시스처럼 밝아진 분위기로 싹 바뀌었다.

청계천의 복원에 대해서는 일본에서도 많이 알려졌고 한국에 놀러 와서 청계천에 가고 싶어 하는 일본 친구들도 많다. 가면 대부분 친구는 “대단하다. 한천을 이렇게 복원할 수 있다니…”하고 감탄한다. 나 또한 크리스마스에 일루미네이션을 보러 간 것 등 청계천에 관한 추억은 많다.

서울로7017은 서울역 주변 보행로다. 1970년에 만들어진 차를 위한 서울역고가도로를 2017년 사람을 위한 보행로로 개조했다. 꽃이 많은 예쁜 거리로 재탄생한 다음 해외 방송에도 많이 소개됐다고 한다. 2017년에는 한국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리메이크한 일본판 드라마가 방송됐는데 이 드라마에도 서울로7017이나 청계천이 등장했다.

올해 방송한 인기 드라마 ‘빈센조’에서도 주인공 빈센조 까사노(송중기)가 밤에 서울로7017을 걸어가는 장면이 있었다. 일본에서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고 인기를 얻은 드라마다. 서울로7017 배경에 보이는 옛 서울역이 조명을 받아 아름답게 비쳤다. 오래된 것을 부수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옛것을 살리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것이 서울 도시재생의 특징이다. 옛 서울역도 ‘문화역서울284’라는 전시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석유탱크가 문화시설로 변신 놀라워

마포 문화비축기지. 백종현 기자

마포 문화비축기지. 백종현 기자

이번에 내가 처음 알게 된 곳은 문화비축기지다. 우선 그 비주얼을 보고 놀랐다. 석유탱크가 문화시설로 변신한 것이다. 마포구 월드컵경기장 근처에 있다. 1973년 석유파동 이후 석유를 비축하려고 만들어진 석유비축기지였는데 2002년 한일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안전 문제로 폐쇄됐다. 그대로 10년 이상 방치됐다가 시민공모 아이디어로 2017년에 문화비축기지로 재탄생했다. 원래 있던 5개의 석유탱크는 전시나 공연이 열리는 문화공간이 됐고, 해체된 탱크의 철판을 활용해서 새로 만들어진 탱크풍 건물은 카페나 회의실 등 시민들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특이한 외관의 문화비축기지는 촬영 장소로 인기가 많다. 지난해 방송한 드라마 ‘스타트업’에서는 주인공 서달미(수지)와 남도산(남주혁)이 출근하는 회사 ‘샌드박스’ 외관으로 나왔다. 드라마를 보면서 어디서 찍었는지 궁금했는데 문화비축기지에서 찍고 CG를 활용해서 그럴싸하게 만든 것이었다. 드라마에 나오면서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마포 문화비축기지. 김경빈 기자

마포 문화비축기지. 김경빈 기자

이번 수학여행 때 소개하는 곳은 아니지만 도시재생으로 주목받는 세운상가도 드라마 ‘빈센조’에 등장했다. 그것도 주된 무대 ‘금가프라자’로 나왔다. 도시재생으로 새로 태어난 곳들은 촬영지가 되는 경우가 많다. 색다른 느낌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해외여행이 가능하게 되면 한국 드라마 팬들이 해외에서 많이 찾아오지 않을까 싶다.

청계천, 서울로7017, 문화비축기지의 세 곳의 공통점은 1970년대에 만들어진 구조물의 안전성이 문제가 되고 2000년 이후 탈바꿈했다는 점이다.

성동구에 있는 청계천박물관의 전시를 보고 배운 것은 한국에서는 1990년대에 ‘탈개발주의’ 시대가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계기가 된 것은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다. 이 두 사고는 당시 일본에서도 크게 보도됐고 TV를 통해 본 영상은 충격적이었다.

거의 잊어버렸던 사고를 떠올린 건 영화 ‘벌새’ 때문이다. 국내외에서 수많은 상을 받고 화제가 된 ‘벌새’는 1994년이 배경이며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주인공 소녀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린 경제성장 뒤에 생긴 희생들이 소녀의 시선으로 그려진 영화다. 일본에서도 지난해 개봉돼 호평을 받았다.

영화 ‘벌새’ 작년 일본서 개봉돼 호평

영화 ‘벌새’의 배경이 된 성수대교 붕괴 사고현장(위)과 드라마 ‘빈센조’의 한 장면(왼쪽). [중앙포토]

영화 ‘벌새’의 배경이 된 성수대교 붕괴 사고현장(위)과 드라마 ‘빈센조’의 한 장면(왼쪽). [중앙포토]

인기 시사 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2’에서는 최근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에 대해 다뤘다. 방송을 보니 그날 여러 번 붕괴의 징조가 있었는데 고객과 직원을 대피시키지 않았고 결국 많은 사상자를 냈다. 조금이라도 더 영업하고 수익을 올리려는 욕심 때문이었다고 한다.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처럼 청계고가도로나 서울역고가도로가 붕괴됐더라면’이라고 상상하면 끔찍하다. 큰일 나기 전에 철거 또는 보행로로 전환한 것은 90년대의 희생을 교훈으로 삼은 결과였다. 그래서 2014년에 세월호 침몰 사고 때 “90년대도 아니고 지금 한국에서 이런 사고가 일어나다니…”하고 충격을 받은 사람들도 있었다.

일본은 원래 자연재해가 많아 뭐든 튼튼하게 만드는 편이지만 2012년에 일어난 사사고(笹子) 터널 사고는 지금도 기억난다. 야마나시현에 있는 사사고 터널의 천장이 무너져서 차가 천장 밑에 깔리고 화재가 발생하고 9명이 목숨을 잃었다. 일본에서도 역시 고도성장기에 고속도로나 터널을 잇따라 만들었고 이제 노후화가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지자체의 예산 부족으로 점검이나 수리가 불충분한 상태라는 지적도 있다.

코로나19 확산의 위험을 무릅쓰고 도쿄올림픽을 개최하는 것도 역시 경제를 우선으로 하기 때문이다. 맹목적인 경제성장으로 인한 희생에 대한 반성으로 시작한 서울의 도시재생을 배우면서 거울에 비치는 일본은 그런 면에서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것 아닌지 생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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