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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 여성 후유증 심각…가해자 엄중 처벌해야

중앙선데이

입력 2021.07.10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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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4호 28면

1759년, 조선의 21대 왕 영조의 계비인 정순(貞純)왕후는 국가의 ‘공식적’인 중전 간택 절차를 통해 15세에 51세 연상인 재위 35년차 국왕과 부부의 연을 맺는다. 결혼을 사랑하는 남녀 간 로맨스의 결실로 보는 2021년 대한민국 청춘에게는 다소 어색한 역사적 사실이다. 하지만 262년 전 조선에서는 정순왕후가 몰락한 경주김씨 집안을 단숨에 명문가 반열에 올려놓고 본인은 왕비·왕대비·대왕대비 등 45년간 국모의 자리를 지킨 대단한 여성으로 여겨졌을 터이다.

성희롱은 뇌에 천박한 언어폭력
가임기 여성들 치명적 공포 느껴

피해자, 불안장애·불면증 등 심해
성적 자기결정권·인권 보호받아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세와 부귀영화를 누리는 중·노년기 남성이 딸 혹은 손녀뻘인 여성과 염문을 뿌리는 일은 흔하며 결혼도 한다. 막스 베버의 ‘고도의 사회학적 행위’라는 설명처럼 결혼은 당사자 간 ‘합의’에 의한 사회적 ‘계약’이며 법적 구속력이 있다. 따라서 합법적인 결혼에 대해 타인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일은 아니며 사랑 없는 결혼도 가능하다.

애초에 결혼은 자녀의 아버지 불확실성을 덜기 위해 생긴 제도인데 신석기시대에 나타나 농경사회인 고대국가에서 정착됐다. 남자가 여자와 자녀를 책임지고 부양하던 시절, 결혼은 남편이 아내와 독점적인 성관계를 통해 출생아가 친자녀임을 보장받는 계약인 셈이다. 결혼 규약에 정조 의무가 부과되고 간통이 엄격하게 금지됐던 이유다. 물론 시대적, 사회문화적 상황에 따라 일부일처, 일부다처, 일처다부 등 허용되는 결혼 방식은 다양하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비록 결혼이 공동체의 평화를 위한 슬기로운 인류 사피엔스의 지혜를 담은 규범이지만 특히 정조 의무 조항은 인간의 본성에 반한다. 일부일처를 유지하는 동물은 3~5%인데 인간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자연 본능과 이성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위험한 사랑놀이는 인류 역사와 함께 현재진행형으로 상존한다.

과학의 발달로 현대화가 진행되자 결혼을 “인간의 본성을 침해하는 폭력적 제도”라고 비판하는 시각도 나타나고 자녀 없이 사는 딩크족, 동성결혼 등 다양한 결혼 문화도 등장했다. 또 피임법의 발달로 현대인의 성행위는 결혼, 임신, 출산 등과 무관한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러다 보니 성 개방 시대라며 성을 쾌락의 도구로만 여기는 인구도 늘고, 성범죄 가해자가 합의에 따른 성행위였다고 주장하는 파렴치한 일도 종종 발생한다. 과연 현 상황을 시대의 흐름으로 지나칠 수 있는 걸까.

인간은 생존과 생활에 필요한 본능적 능력을 뇌에 입력시킨 상태로 태어난다. 출생 후 학습을 통해 이성적 판단을 담당하는 뇌(전두엽)가 발달하지만 본능을 관장하는 뇌(시상하부·변연계)의 저력은 매우 강하다. 예컨대 성희롱을 당한 여성의 앞쪽 뇌는 천박한 언어폭력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뇌의 다른 부분에서는 단 한 번의 성관계도 임신, 출산, 육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진화생물학적 경고음을 지속해서 울린다. 이런 이유로 특히 가임기 여성일 경우, 가벼운 성희롱에도 치명적인 공포심과 위협을 느낄 수 있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 ‘님포매니악(Nymphomaniac)’은 강제적 성행위에 대한 여성의 강력하고 본능적인 거부 반응을 잘 묘사한다. 영화의 여주인공 조는 성적 쾌락을 위해 수많은 남자와 섹스하는 색광녀(色狂女)다. 어느 날 길거리에서 쓰러진 그녀를 유대인 남성(셀리그먼)이 구해주자 조는 셀리그먼에게 파란만장한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고 친구가 되려고 한다. 하지만 조가 잠들 무렵 셀리그먼이 강제적인 성관계를 시도하자 조는 그를 총으로 쏴 죽이고 자리를 떠난다. 수천 명의 남자와 기꺼이 잠자리를 함께 한 성(性) 중독 여성도 죽을 만큼 섹스하기 싫은 남성은 있는 것이다.

최근 선임의 성범죄를 고발한 젊은 여군이 ‘나의 몸이 더럽혀졌다, 모두 가해자 때문이다’라는 글을 남기며 자살했다. 사건 발생 후 발급받은 진단서에는 급성 스트레스 반응·불안장애·불면증 등이 기재돼 정신과 치료가 시급한 상황이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공군은 도움은커녕 조직적인 은폐까지 시도했다. 힘든 상황에 부닥쳤을 때 헤어날 길이 없어 보이면 누구나 주변에 대해 분노심이 발생하는데 그 화살이 내부를 향하면 자살로 이어진다. 공군이 성범죄에 대해 원칙적인 대응으로 피해자를 보호했다면 이중사를 죽음으로 몰고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성문화가 변했더라도 예나 지금이나 강제적인 성범죄는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등 종류를 막론하고 피해자에게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다. 물론 피해자가 남성인 경우도 마찬가지다. 설사 성 충동이 강한 사람이라도 ‘성범죄는 반드시 응분의 처벌을 받는다’는 사실이 인식되면 강제적인 성 행동은 자제하기 마련이다. 반복되는 성범죄 소식과 피해자의 비극적 결말은 우리 사회의 성인지 감수성이 얼마나 낮은지를 보여주는 부끄러운 민낯이다. 유명을 달리한 이중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이번 일을 반면교사 삼아 대한민국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당당하게 보호받는 인권 선진국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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