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 음악이 된 종묘제례악, 3D 아바타도 나와 춤추죠

중앙선데이

입력 2021.07.10 00:20

업데이트 2021.07.10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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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4호 19면

[유주현의 비욘드 스테이지] 국악 일렉트로닉 듀오 ‘해파리’

해파리는 종묘제례악을 샘플링한 ‘소무독경’에서 궁중무용 일무에 쓰이는 소품 ‘약적’과 ‘간척’을 들고 댄스 브레이크를 한다. 신인섭 기자

해파리는 종묘제례악을 샘플링한 ‘소무독경’에서 궁중무용 일무에 쓰이는 소품 ‘약적’과 ‘간척’을 들고 댄스 브레이크를 한다. 신인섭 기자

“친절하게 다가가고 싶지 않아요.”(박민희) “멋있게 보이면 궁금해서 다가오지 않을까요.”(최혜원)

17·18일 첫 대면 단독 콘서트
국악과 앰비언트·테크노 버무려
집콕 시대 ‘내적 춤추기’ 안성맞춤

박민희 “음악·룩이 함께 갔으면”
최혜원 “비주얼도 양보 안 할 것”

최근 데뷔 앨범을 낸 얼트 일렉트로닉 듀오 ‘해파리(HAEPAARY)’는 국가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이수자 박민희(38·사진 왼쪽)와 전통타악을 기반으로 하는 사운드 아티스트 최혜원(33)이 뭉친 팀이다. 국악과 앰비언트, 테크노가 버무려진 뭐라 설명하기 힘든 음악을 하는데, 묘하게 끌린다. 지루하기로 유명한 종묘제례악도 중독성 강한 클럽 음악으로 바꿔놓았다.

이들은 국립국악고와 서울대 국악과를 나온 ‘국악 엘리트’들이다. 최근 유명 영화음악감독 장영규가 이끄는 이날치의 ‘수궁가’가 센세이션을 일으키긴 했지만, 국악 엘리트끼리 이렇게 미래적이고 세련된 음악을 하는 건 본 적 없었다. 이들의 음악은 자칭 ‘시류를 상실한 리스너의 소심한 클럽파티’다. “대면 단독 공연이 처음일 정도로 시류를 상실한 코로나 시대에 클럽에도 못 가는 사람들이 집안에서 내적인 댄스를 출 수 있는 음악”(민희)이란 뜻이란다.

지난해 7월, 코로나의 한복판에서 공식 활동을 시작한 이들은 지난 3월 온라인으로 전환된 세계 최대 음악 마켓 ‘사우스 바이 사우스 웨스트(SXSW)’ 쇼케이스에 참여, 미국 공영라디오 NPR의 프로그램 ‘올 송즈 콘시더드’가 선정한 2021년 SXSW 기대주에 뽑혔다. 그간 온라인으로만 공연하다 2021 국립극장 여우락페스티벌 무대(17, 18일)를 통해 첫 대면 단독 콘서트에 나선다.

그런데 예사롭지 않다. 얼트 일렉트로닉 음악을 하면서 ‘댄스 브레이크’에 궁중무용 ‘일무’를 추고, 유리 아티스트와 디지털페인팅, 3D애니메이팅 아티스트와 협업해 깊은 바닷속 같은 공간을 연출한다. 무대를 전시장인지 공연장인지 모를 공간으로 만드는 것은 “비주얼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혜원)다.

“쉽게 말하면 전시와 콘서트가 섞인 형태인데, ‘여우락’에서 원하는 무대를 잘 꾸며보라고 제안해 주셔서 가능했어요. 영상과 유리 작품이 설치된 무대에서 노래를 하는데, 곡마다 다른 비주얼이 믹스되는 것이죠. 공연장에서만 가능한 조명을 이용해 야광 해파리가 등장하기도 하고요.”(혜원) “댄스브레이크가 오랜 로망이었는데, 아직 안무 연습을 한 곡밖에 못 했어요. 아이돌 에스파처럼 3D 아바타도 나와서 춤을 출 것이에요.(웃음) 비주얼적으로도 멋진 팀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어려서부터 내가 하는 음악에 어울리는 룩에 대한 로망이 있었거든요. 패션은 물론 무대미술, 애티튜드, 뮤비 등 부수적인 활동까지 같이 가고 싶어요.”(민희)

종묘제례악 정대업의 일부를 샘플링한 ‘소무 독경’, 남창가곡 ‘불아니’를 모티브 삼은 ‘부러울 것이 없어라’ 등 데뷔 앨범에서 “빌리 아일리시의 몽환적 테크노 느낌이 난다”고 했더니 박수치며 기뻐한다. “저희가 믹싱하면서 빌리 아일리시처럼 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거든요. 딱히 롤 모델은 없지만 여러 아티스트의 멋있는 지점을 고루 닮고 싶어요.”(민희)

‘멋’에 집착한다 싶은데, 이유가 있다. “저희는 국악 프레임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국악 베이스의 팀에 멋있는 이미지가 있었나요. 재밌거나 발랄한 팀은 있어도 시크하고 도도하고 멋있는 팀은 없잖아요.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망가지기도 하죠.”(민희) “대놓고 드러내지 않아서 그렇지, 모든 아티스트가 멋있고만 싶을 걸요. 우리는 그냥 말하는 거죠. 멋있고 싶다고. 그 전제로 일단 우리 음악을 좋아해 줬으면 하는 것이고요.”(혜원)

이들이 가져온 전통 레퍼런스인 종묘제례악과 남창가곡은 사실 남자가 부르는 노래다. 남창가곡과 여창가곡은 창법과 발성부터 다르다. “여창은 속소리라는 팔세토 창법과 진성인 겉소리를 오가면서 섬세하게 노래하는 발성이고, 남창은 그냥 겉소리로만 노래하는데, 주로 ‘꿋꿋하고 힘있게’ 같은 말들로 수식하죠. 공연할 때 태도도 여창은 다리를 모으고 무릎 하나를 불편하게 세워야 하는데, 남창은 양반 다리로 노래하고요. 태도나 발성이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가 재밌어서 하는 노래가 남창인데, 그게 쿨하고 좋아 보여서 굳이 안 할 이유도 없지 않나 싶어 하게 됐어요.”(민희)

종묘제례악은 제사를 위한 음악이고 남창가곡은 정신수양을 위해 감정이 절제된 노래인지라 태생부터 대중화와 거리가 멀지만, 이들이 대중음악으로 만들어 버렸다. “종묘제례악이 사실 되게 멋있는 음악이예요. 국악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종묘제례악을 좋아하죠. 정확한 멜로디가 없는 것도 매력이에요. 아름답기 위한 멜로디가 아니라 여기에 이 음이 있어야 되기 때문에 있는, 관념적인 음악이라는 점이 쿨한 포인트죠.”(혜원) “누구한테 잘 보이려 하는 게 아니라 자기 하고 싶은 대로 꽥꽥 그냥 부르는 건데, 남한테 잘 보이려 하지 않는다는 게 진짜 쿨하지 않나요. 종묘제례악을 재해석하려 애쓴 게 아니라 우리가 만들고 싶은 음악을 하면서 샘플링해 본다는 태도였어요. 하지만 잘 모르고 쓰는 사람과는 다르게 접근한다는 믿음이 있어요. 우린 애정이 있고 정보와 지식도 있으니, 잘 가져와서 잘 쓰자는 태도였죠.”(민희)

정가와 타악 연주를 전공한 두 사람은 뭉치기 전에도 각각 다원예술, 무용음악을 하는 창작자였다. 둘의 인연은 2017년 민희가 혜원의 솔로공연을 본 후 러브콜을 보내면서 시작됐다. “고3 때부터 팀 활동도 하고 객원으로 공연을 다녔는데 남는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스스로 공연을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에서 전통음악을 샘플링해 무대화시킨 콘서트였는데, 시행착오가 많은 공연을 언니가 좋게 봐주셨어요.”(혜원) “전에는 팀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잘 모르는 분야의 사람과 합을 맞춰봤자 화학 작용이 안 일어나면 듣는 사람도 알거든요. 그런데 혜원씨 음악은 전혀 다른 사고 체계인 장단과 비트가 같이 있는 게 너무 흥미로워서 같이 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저희가 해온 다원예술이나 무용음악은 음악이 주인공이 아니었어서, 듣기만 하는 음악도 해보고 싶었죠. 애플이나 멜론에서 유통되는 음악요.”(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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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모든 대중에게 손 내밀고 싶은 마음은 없다는 게 이들의 뚝심이다. “매니악한 대중이 골라 듣는 음악”을 “멋지게” 하겠다는 것이다. “국악을 하면서 음악이 좋아서가 아니라 나를 봐서 찾아와 주는 관객 앞에서 공연하는 일이 많았거든요. 이제야 소수의 매니어에게 어필할 만한 방법을 찾은 것 같아요.”(민희) “K팝 팬에겐 K팝을, 전통음악 팬에겐 전통음악을 추천해 줘야지, 굳이 K팝 팬을 전통음악 공연장에 부를 필요는 없잖아요. 얼터너티브라는 좁은 세계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이 ‘해파리’를 발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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