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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글쟁이 스님, 운치 있는 산문집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44호 20면

낡아가며 새로워지는 것들에 대하여

낡아가며 새로워지는 것들에 대하여

낡아가며 새로워지는
것들에 대하여
원철 지음
불광출판사

서울에 산다 해서 ‘수도승’이라 자처하는 조계종의 글쟁이 원철 스님이 산문집을 냈다. 『낡아가며 새로워지는 것들에 대하여』라는 책 제목처럼 저자는 특유의 안목과 필력으로 ‘낡음’ 속에서 ‘새로움’을 길어 올린다.

원철 스님은 여행지인 한국·중국·일본·베트남 등에서 역사 속 한 점들을 만난다. 그 점 속에 인물이 있고, 장소가 있고, 스토리가 있고, 삶에 대한 통찰이 있다. 현장에서 몸소 찾아낸 스토리들이 하도 새롭고 구체적이라, 독자로 하여금 아무도 밟지 않은 숲에서 계속 첫발을 디디며 걷는 듯한 기분에 젖게 한다.

가령 한양 도성을 관통하는 청계천의 발원지는 인왕산 수성동 계곡이다. 지명인 ‘수성(水聲)’은 글자 그대로 ‘물소리’란 뜻이다. 추사 김정희도 ‘수성동 계곡에서 비를 맞으면서 폭포를 보았다’는 제목의 시를 남겼다고 한다. 중인 출신이면서도 정조에게 발탁돼 규장각 서리로 일했던 존재 박윤묵은 “큰 비가 수십 일이나 내려 (…) 개울이 빼어나고 폭포가 장대하며 예전에 보던 것과 완전히 다른 것처럼 느껴진다”고 수성동 물소리를 평한 바 있다.

저자는 실제 폭우가 쏟아진 뒷날, 수성동 물소리를 듣고자 이른 아침 계곡을 찾는다. 그건 추사가 들었고, 존재가 들었던 역사 속 한 점과의 만남이기도 하다. 콸콸콸, 계곡을 차고 나가는 물소리만큼 ‘찰나’를 드러내는 소리가 있을까.

원철 스님은 “수성(水聲)이란 이름을 통해 찰나 속에서 영겁을 보고자 하는 바람을 알게 모르게 반영한 것”이라고 작명에 깔린 인간의 열망을 지적한다. 이처럼 저자는 역사와 현장과 감성을 버무리며 낡음에서 새로움을 찾아낸다.

어찌 보면 사학자의 글 같고, 어찌 보면 순례자의 글 같고, 어찌 보면 문인(文人)의 글 같다. 그래서일까. 책장을 넘길 때마다 세 가지 맛이 번갈아 온다. 그 맛은 담백하고, 운치 있고, 정겹다. 직접 발로 뛰며 채집한 역사 속 소소한 일화들이라 편편이 생동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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