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오디세이

류현진 폼 일정해 ‘피치 터널’ 길어, 타자들 구종 판단 불리

중앙선데이

입력 2021.07.10 00:02

업데이트 2021.07.10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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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4호 26면

[스포츠 오디세이] ‘선동열 야구학’ 낸 국보 투수

‘국보 투수’ 선동열(58)이 책 한 권을 들고 나타났다. ‘선동열 야구학’(생각의힘)이라는 제목인데, 코로나19 덕분(?)에 세상에 나오게 됐다.

코로나 때문에 양키스 언택트 연수
빅데이터 바탕 야구 트렌드 공부

체격 좋아졌는데 체력은 떨어져
기본기 소홀해 강속구 투수 안나와

롤 모델 최동원 하루 2시간 뛰어
러닝·캐치볼 등 충실하게 해야

2018년 국가대표팀 감독을 끝으로 일선에서 물러난 선 감독은 올해 초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로 연수를 가기로 했다. 그런데 양키스 마이너리그 선수 3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는 바람에 미국행이 취소됐다. 그는 언택트로 연수를 하면서 지인 20여명과 ‘팀 선(Team Sun)’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야구 공부를 했다. 교수·사업가·기자 등 다양한 직종의 야구광들이 모여 최신 야구이론을 학습하고 빅데이터에 기반한 현대 야구의 트렌드에 대해 토론했다. 선 감독은 프로야구 2개 구단의 동계 캠프에 가서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선수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이런 내용을 야구전문기자인 김식 중앙일보 스포츠팀장이 정리한 게 ‘선동열 야구학’이다.

선동열 전 야구대표팀 감독이 야구공을 들고 편안한 표정으로 포즈를 취했다. 그는 “일선에서 물러나 승부 스트레스를 안 받으니 얼굴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정시종 기자

선동열 전 야구대표팀 감독이 야구공을 들고 편안한 표정으로 포즈를 취했다. 그는 “일선에서 물러나 승부 스트레스를 안 받으니 얼굴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정시종 기자

유튜브 방송국 중앙UCN 개국을 맞아 선 감독을 서울 순화동 UCN 스튜디오에 모셨다. 그는 혈색이 좋고 얼굴이 무척 밝아보였다. 말도 솔직하고 조리 있게 했다. 4년 전 대표팀 감독으로 인터뷰를 했을 때와는 전혀 달랐다. 선 감독은 “아무래도 스트레스가 없으니까 얼굴이 좋아진 것 같습니다”라며 껄껄 웃었다.

뚱한 표정이 ‘썩소’로 비쳤다면 죄송  

책의 부제가 ‘20세기 직감이 21세기 과학과 만났다’인데요.
“저희가 야구 할 때만 해도 직감으로, 직접 보면서 선수들을 가르쳤지만 지금은 데이터 없이 직감만으로는 제대로 가르칠 수가 없잖습니까. 공부라는 게 한도 끝도 없겠지만 배우면서 하고 있습니다.”
일본이나 미국은 시속 170㎞까지 던지는 선수가 나오는데 우리는 160㎞를 넘는 선수가 없는데요.
“유소년 쪽에서는 진학을 시키기 위한 훈련만 하고, 기술력만 가르칩니다. 기본기에 충실해야 하는데, 기본기는 체력적인 기본기가 첫째입니다. 요즘 선수들 체격은 좋아졌지만 체력적인 기본기가 떨어집니다. 러닝이나 캐치볼 같은 기본을 등한시하니까 강속구 투수가 나오지 않는 거죠.”
2006년 삼성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선동열 감독.

2006년 삼성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선동열 감독.

책에 ‘피치 터널’(Pitch Tunnel) 개념이 나오죠.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은 이게 길어서 유리하다고 하고요.
“투수가 공을 놓는 릴리스 포인트부터 타자가 구종을 판단할 때까지의 구간을 피치 터널이라고 합니다. 이게 길면 길수록 타자는 구종을 판단할 시간이 줄어드니까 불리하죠. 류현진은 어떤 공을 던지든 투구 동작과 릴리스 포인트가 일정하니까 터널이 더 길어지는 겁니다.”
요즘은 시프트(수비수 위치 변경)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데요.
“그것도 빅데이터 야구의 영향이죠. 김현수(LG)처럼 당겨 치는 타자다 하면 우측 수비를 좌측으로 옮기는 거죠. 투수도 그 쪽으로 치도록 유도하면 안타 줄 확률이 떨어집니다. 시프트 아홉 번 성공하고도 한 번 실패해서 안타를 주면 투수들이 기분나빠하는 경우도 있는데 지도자가 잘 설득해야죠.”
시프트가 일반화하면서 잘 맞은 땅볼 타구가 야수에게 걸리는 경우가 많아졌고, 아예 띄워서 치자는 쪽으로 바뀌는 게 ‘플라이볼 혁명’이죠.
“메이저리그에는 시속 100마일(160㎞) 이상 던지는 투수가 1500명이랍니다. 연속 3안타를 쳐야만 점수가 나는데 확률이 떨어지니 홈런 하나로 점수를 내자, 그래서 어퍼컷 스윙이 늘어났죠. 물론 플라이볼도 힘이 실리지 않으면 평범한 타구가 되고 말겠지만요.”
2017년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결승에서 일본에 패한 선동열 감독.

2017년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결승에서 일본에 패한 선동열 감독.

선 감독은 특유의 뚱한 표정 때문에 오해를 많이 받았다. 선수가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면 ‘썩소’를 보내는 장면이 자주 화면에 잡혔다. 그는 “인상 쓰고 있는 것보다는 웃는 게 낫다고 봤고, 선수를 비웃으려고 한 건 아닌데 오해가 있었다면 죄송합니다”라며 웃었다.

선동열은 손가락이 짧은 투수로 유명했다. 직접 손 길이를 재 봤더니 나보다 확실히 짧았다. 선 감독은 “키에 비해 손발이 많이 작습니다. 투수로서는 큰 단점인데 그걸 극복하기 위해 개발한 게 ‘선동열표 슬라이더’죠”라고 했다.

그가 야구공 그립을 잡으면서 설명했다. “손가락이 작다 보니 중지에만 힘을 주고 검지는 중지에 살짝 갖다 대기만 하는 정도로 잡습니다. 보통 투수들은 이렇게 공을 꽉 잡지 않죠. 삼성 감독 시절에 용병 선수가 슬라이더 좀 가르쳐 달라고 하기에 ‘너 이렇게 꽉 잡고 던질 수 있냐’ 하니까 안 된대요. ‘그럼 못 가르쳐 준다’ 그랬죠. 허허.”

구종 달라도 릴리스 포인트 일정해야

1992년 해태 시절 역투하는 선동열. [중앙포토]

1992년 해태 시절 역투하는 선동열. [중앙포토]

멘토이자 롤 모델이 고(故) 최동원 선배라면서요.
“맞습니다. 고교 시절부터 저 선배님처럼 던지고 싶다고 생각하며 노력했어요. 82년 세계야구선수권 앞두고 두 달간 합숙을 하면서 선배님 던지는 걸 봤는데 진짜 감탄밖에 안 나와요. ‘형님은 어떻게 그런 볼을 던질 수 있어요?’ 물었더니 러닝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어요. 단체운동 끝나면 꼭 혼자서 두 시간은 뛰더라고요.”
천하의 선동열도 야구가 싫고 마운드가 무서운 적이 있었나요.
“당연하죠. 일본(주니치) 진출 첫해 개막전부터 실패를 하고, 무리하게 힘으로 던지다 보니 밸런스가 무너져 2군으로 떨어졌어요. 아침에 일어나 유니폼을 입는 게 겁이 나고, 마운드에 서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까지 들었어요. 2군 투수코치 한 분이 ‘내가 어드바이스 할 테니까 따라 해 볼래요?’라면서 기본 중의 기본인 ‘스텝 앤 스로’(야수가 공을 잡은 뒤 송구하는 동작)을 하라고 했어요. 처음엔 황당했는데 그걸 반복하다 보니 국내에서 던지던 폼이 다시 나오더라고요.”

국보 투수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자주 나온 말, 그건 ‘기본기’였다.

선발 전날 정삼흠과 소주 10병, 양주 5병 먹고 완봉
선동열은 해태 타이거즈 시절 ‘말술’로 유명했다. 고려대 동기 정삼흠(MBC 청룡)과의 선발 맞대결 전날 술 대결 일화는 지금도 전설로 내려온다. 1987년 9월 1일, 다음날 광주 경기 양팀 선발이었던 선동열과 정삼흠은 저녁부터 새벽까지 대작을 했다. 경기 결과는 선동열의 5-0 완봉승. 정삼흠은 5실점 하고 7회 강판됐다.

선 감독이 들려주는 당시 상황. “광주 호텔의 사우나에서 만났는데 저는 정삼흠이 다음날 선발인 줄 몰랐어요. 저녁 같이 먹자고 해서 광주 근교 식당에서 둘이서 소주 10병 정도 마셨죠. 저는 들어가려고 하는데 한잔 더 먹자고 해서 카페 가서 양주를 다섯 병 마셨어요. 다음날 낮 경기여서 힘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운이 좋았죠. 지금이라면 절대 그렇게 못 마십니다. 허허허.”

‘농구 대통령’ 허재와의 술 대결도 유명하다. 농구대잔치 시절 광주에 경기를 온 허재가 선동열과 술 대결 도중 견디다 못해 도망갔다는 설이 있고, 선동열이 지인을 동원해 인해전술을 썼다는 설도 있다. 선 감독의 증언이다. “허재가 도망가지는 않았고요. 아마 술은 허 감독이 더 셀 걸요. 그날 저녁에 커피숍에서 만났는데 ‘형 소주나 한잔 하자’고 해서 밤새 마셨죠. 다음날 낮 경기에서 허재가 펄펄 날더라고요. 혼자서 60점 가까이 넣어서 신기록을 세웠다고 들었어요.”

※인터뷰 영상은 유튜브 채널 〈ucn스포츠〉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인터뷰 전문은 월간중앙 8월호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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