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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이 지쳤다면, '정원'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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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식물’이라는 개념이 유행하기도 전. 몸과 마음이 지치고 힘들었던 고시생 시절 베란다 한 켠에 나만의 정원을 가꾸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은 적이 있다. 그 후 바쁜 사회인으로 지내며 점점 정원과는 멀어진 삶을 살았다. 그런 나에게 일요일 오후 찾아간 이 전시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정원은 이런 거야. 정원에 열정을 가지고 일생을 바친 사람들도 있어. 너도 잘 아는 역사 속 유명 인사들도 정원에 많은 관심을 가졌지. 자, 이제 너도 너만의 정원을 만들어봐.'

[민지리뷰] #복합문화공간 피크닉의 전시 #'가드닝'(정원 만들기)

도시인에게 정원의 의미를 생각하게 해주는 곳, '피크닉 가드닝' 전시다. 사진은 김봉찬·신준호 작가의 '어반 포레스트 가든'. 실제 식물과 만들어진 식물이 함께 흙에 묻혀 있다. 주변 빌딩 숲과 어우러져 묘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사진 정혜령]

도시인에게 정원의 의미를 생각하게 해주는 곳, '피크닉 가드닝' 전시다. 사진은 김봉찬·신준호 작가의 '어반 포레스트 가든'. 실제 식물과 만들어진 식물이 함께 흙에 묻혀 있다. 주변 빌딩 숲과 어우러져 묘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사진 정혜령]

‘가드닝’이라는 주제가 흥미로워요. 어떤 전시인가요.  

모든 사람이 정원의 의미를 한 번씩 생각해보고 각자의 정원을 가꿔보도록 권유하는 전시입니다. 가드닝(gardening)은 ‘정원 만들기’라는 뜻이지만, 직접 정원을 만드는 과정은 포함돼 있지 않아요. 전시 당일 운동화를 신고 가야 하는 게 아닐지 고민했는데, 아주 쓸데없는 고민이었더라고요.

혹시 가드닝에 특별한 관심이 있었나요.

저는 대학 시절 2년 넘게 고시 준비를 하면서 심신 안정을 위해 식물 키우기에 도전했던 경험이 있어요. 원래는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었지만, 함께 사는 가족들이 강경하게 반대해 식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그런데 재미가 붙어 키우는 식물 수가 하나둘씩 늘어났고, 나중엔 베란다 한편이 제가 키우는 화분들로 가득 찰 정도로 집중하게 됐어요. 나름의 루틴도 생겨서 스트레스가 심한 날이면 다이소에 들러서 화분·흙·씨앗·영양제 등을 한가득 사요. 그렇게 산 씨앗은 종이로 만든 미니 화분에서 발아를 시키고, 그중에서 튼튼하게 자란 식물을 남겨요. 식물이 크는 중간중간 분갈이를 하고 잎이 시들면 영양제를 넣어주고요. 처음엔 실용성을 생각해 상추·깻잎 등 먹을 수 있는 채소 위주로 심었다가 점점 허브·커피·꽃 등 다양한 종류를 키웠어요. 의도치 않게 ‘식물 애호가’가 되어 버린 거죠.

전시장에 입장하자마자 만나는 최정화 작가의 설치 작품 '너 없는 나도, 나 없는 너도 Holobiont'가 시선을 압도한다. 작품명의 홀로바이언트는 '통생명체'란 의미. 거대한 무, 당근, 양배추, 아스파라거스 등 작품이 살아 숨쉬듯 부풀어 올랐다 꺼지기를 반복한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인증샷을 갈구하는 현대인의 니즈를 초반부터 충족시켜주는구나'란 생각이 들었는데, 역시나 많은 사람이 피크닉 관련 SNS 게시물로 이곳 사진을 올린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전시장에 입장하자마자 만나는 최정화 작가의 설치 작품 '너 없는 나도, 나 없는 너도 Holobiont'가 시선을 압도한다. 작품명의 홀로바이언트는 '통생명체'란 의미. 거대한 무, 당근, 양배추, 아스파라거스 등 작품이 살아 숨쉬듯 부풀어 올랐다 꺼지기를 반복한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인증샷을 갈구하는 현대인의 니즈를 초반부터 충족시켜주는구나'란 생각이 들었는데, 역시나 많은 사람이 피크닉 관련 SNS 게시물로 이곳 사진을 올린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전시가 열리는 피크닉이란 공간도 궁금해요.

피크닉은 2018년 전시 기획사 ‘글린트’가 만든 복합문화공간이에요. 전시 공간을 중심으로 카페·바·편집숍·레스토랑으로 구성돼 있어요. 초기엔 류이치 사카모토, 재스퍼 모리슨, 페터 팝스트 등 인물 위주 전시를 하다가, 작년부터 ‘명상’ ‘가드닝’ 같은 개념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어요. 위치는 서울의 중심부라 할 수 있는 지하철 4호선 회현역 근처. 직접 가봐야만 알 수 있는 느낌을 이야기한다면 ‘서울의 여러 모습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주변에 남산 서울타워와 옥상에 빨래가 주렁주렁 걸린 낡은 주택부터 고층빌딩까지 다채로운 건물들이 만드는 풍경이 색다르고 따뜻해요. 게다가 피크닉의 건물 자체가 외부와 연결되는 것처럼 보여 그 모두가 피크닉 공간처럼 느껴졌습니다.

피크닉의 전경. 이곳은 그냥 지나가다가 불쑥 들릴 만한 장소는 아니다. 골목 안쪽 깊숙이 자리해 방문 목적을 가지고 일부러 찾아가야 한다. 밖에서 보면 평범한 벽돌 건물처럼 보인다.

피크닉의 전경. 이곳은 그냥 지나가다가 불쑥 들릴 만한 장소는 아니다. 골목 안쪽 깊숙이 자리해 방문 목적을 가지고 일부러 찾아가야 한다. 밖에서 보면 평범한 벽돌 건물처럼 보인다.

전시 가드닝은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예약 서비스를 통해서만 예약할 수 있다. 사진은 네이버 예약 화면.

전시 가드닝은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예약 서비스를 통해서만 예약할 수 있다. 사진은 네이버 예약 화면.

전시 내용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가드닝 전시는 올해 4월부터 시작했어요. 10월까지 6개월간 해요. 전시를 보기 위해서는 네이버 예약을 반드시 해야 합니다. 인기가 많은 편이라, 제 경우엔 일주일 전에 예약했는데도 잔여석이 거의 없었어요. 가격은 일반 성인 기준 1인당 1만8000원입니다(13세 미만은 1만3000원).
전시는 전반부에 정원에 대한 작가들의 재미있는 해석이 들어간 작품을 보여줘요. 정원은 다채로운 색깔의 채소 모양 풍선 인형의 모습으로, 실제 흙에 반쯤 묻혀있는 커다란 열무 모양의 조각으로, 흙과 뿌리와 낙엽이 어지럽게 섞여 있는 형태를 표현한 3D 영상으로도 표현돼요. 똑같은 소재인 정원을 가지고서도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다음은 조경 활동에 평생을 바쳐 온 두 명의 조경가 거트루드 지킬과 정영선씨에 대한 이야기로 연결돼요. 사진과 친필 작업 노트를 통해 그들이 정원에 대해 남긴 이야기와 어떤 고민을 거쳐서 어떤 공간을 탄생시켰는지를 보여 줍니다. 전시는 루프톱에서 마무리되는데, 이곳은 관람객 자신에게 집중하는 공간이에요. 몇 가지 간단한 질문으로 자신의 성향에 잘 맞는 정원이 어떤 정원인지 알아가는 테스트를 할 수 있습니다. 또 산책로가 조성돼 있어 아름다운 정원과 서울 풍경을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요.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로 잘 알려진 정재은 감독의 영상을 상영하는 방이었어요. 영상은 방 벽을 꽉 채우는 거대한 화면에 꽃이 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는 풍경과 삽으로 김매는 과정, 나무를 타고 올라가 일일이 가지치기를 하는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줘요. 스토리도 없고 속도도 느릿하지만, 하염없이 빠져 보고 있게 됐어요.

구기정 작가의 작품 '초과된 풍경'. 흙·낙엽·이끼가 뭉쳤다 흩어지는 모습을 담은 사진과 영상이 화면을 통해 나오는데, 넓은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현실의 정원 모습과 뒤엉켜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낸다.

구기정 작가의 작품 '초과된 풍경'. 흙·낙엽·이끼가 뭉쳤다 흩어지는 모습을 담은 사진과 영상이 화면을 통해 나오는데, 넓은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현실의 정원 모습과 뒤엉켜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낸다.

작품 '초과된 풍경'의 다른 쪽 모습. 벽에 그린 정적인 이미지와 화면 속에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나무의 흔들리는 모습이 하나로 합쳐졌다 다시 분리되는 신비로운 느낌이다.

작품 '초과된 풍경'의 다른 쪽 모습. 벽에 그린 정적인 이미지와 화면 속에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나무의 흔들리는 모습이 하나로 합쳐졌다 다시 분리되는 신비로운 느낌이다.

이곳을 즐기는 노하우가 있을까요.  

루프톱 정원 입구에 있는 ‘정원 성향 테스트’를 꼭 해보길 추천해요. 9가지 정원 유형 중에서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정원을 제안해주거든요. 최근 유행했던 MBTI 테스트도 결국에는 본인을 잘 알고 싶은 욕구에서 시작한 거잖아요. 자신이 정원과 얼마나 가까운지, 어떤 형태의 정원이 나에게 가장 적합할지에 대해 알려줄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로웠어요.
테스트는 정원 만들기에 가장 진심인 사람부터 정원 만들기에 소질이 없는 사람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어요. 예를 들어 본인이 만일 ‘식물을 잘 기르고, 반려 식물을 늘리고 싶고, 관리에 시간을 많이 쓸 수 있다’를 선택했다면 ‘매일 2시간씩 식물을 돌보는’ 유형이 나와요. 사례로 제시하는 사진도 식물원인지 온실인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식물로 가득 찬 공간을 꾸미는 모습을 보여줘요. 만약 ‘식물을 잘 못 기르고, 집에 채광과 통풍이 좋은 공간이 있고, 기르기 쉬운 식물을 들이고 싶은’ 사람이라면 텃밭 작물을 추천해줘요. 부담 갖지 말고 키우기 쉬운 방울토마토 모종부터 시작해본다면 텃밭을 가꾸면서 일종의 루틴이 생겨 생활이 보다 안정될 수 있다고 제안해요. 몇 년 전 고시를 준비하던 시절의 저에게 딱 적합한 결과죠.
반면 정원 만들기에서 많이 멀어져 있는 사람도 있겠죠. 안타깝게도 지금의 내가 해당하더라고요. ‘식물을 잘 기르지 못하고, 집에 채광과 통풍이 좋은 공간이 없고, 규칙적으로 관리할 자신이 없다’고 선택한 저에게는 ‘꽃 구독 서비스’가 결과로 나왔어요. 테스트를 시작하기 전에는 베란다 텃밭, 분재식물을 추천해줄 줄 알았는데, 현실적인 결과에 당황하면서도 납득하게 됐어요. 얼마 전엔 ‘꽃 히아신스 손쉽게 키우기’ 키트를 친구에게 SNS 선물하기로 받아서 잠시 키운 적이 있는데, 선물해준 친구에게는 미안하게도 정작 몇 주 못 가 죽이고 말았거든요.

전시의 끝 무렵 만날 수 있는 '정원성향 테스트'. '나는 식물을 잘 못 기른다'로 시작하는 간단한 질문 몇 가지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새 자신에게 딱 맞는 정원 형태를 발견하게 된다.

전시의 끝 무렵 만날 수 있는 '정원성향 테스트'. '나는 식물을 잘 못 기른다'로 시작하는 간단한 질문 몇 가지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새 자신에게 딱 맞는 정원 형태를 발견하게 된다.

나는 ‘꽃 구독’을 추천 받았다. 50제곱미터(15평) 빌라에서 꽃 구독을 하는 사람의 사례를 제시해, 보다 나에게 직접 와닿는 느낌이었다.

나는 ‘꽃 구독’을 추천 받았다. 50제곱미터(15평) 빌라에서 꽃 구독을 하는 사람의 사례를 제시해, 보다 나에게 직접 와닿는 느낌이었다.

루프톱에 마련된 한옥 스타일의 마루. 전시 관람으로 지친 상태라면 잠시 이곳에 앉아 쉬어도 좋다.

루프톱에 마련된 한옥 스타일의 마루. 전시 관람으로 지친 상태라면 잠시 이곳에 앉아 쉬어도 좋다.

루프톱 정원은 전시의 마무리를 장식하는 공간이다. 위치가 위치인지라 정원 너머로 남산타워부터 고층 건물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루프톱 정원은 전시의 마무리를 장식하는 공간이다. 위치가 위치인지라 정원 너머로 남산타워부터 고층 건물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전시 기획자를 칭찬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고요.

건물 기본 구조를 활용해 최적화된 전시 동선을 만들어낸 점에 대해 가장 칭찬하고 싶어요. 건물이 전시를 위해 지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건물의 구조와 전시의 동선이 잘 어울려요. 1층에서 시작해서 한 층씩 올라갔다가 마지막에 루프톱에서 정원을 본 다음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 번에 지하 기념품샵으로 내려가서 선물을 받고 나가면 돼요. 입장에서 퇴장까지 효율적이고 깔끔했어요. 사실 전시를 관람할 때 동선이 헷갈리면 전체적인 경험 자체가 안 좋은 경우가 많아요. 다음 전시를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한참 헤매거나, 다른 관객들과 동선이 겹쳐서 작품을 감상하다가 길을 양보해야 하는 경험이 쌓이면 몹시 피곤해지거든요.

만족도를 점수로 매긴다면요.

저의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7점입니다. 주제 의식과 콘텐트 두 가지로 나눠서 각각 4점, 3점을 주고 싶습니다. 먼저 가드닝이라는 아이템을 풀어낸 방식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요. 단순히 정원 만들기 체험이나 예쁜 정원을 보여주기에서 그치지 않고, 관람객이 스스로 자신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 신선해요. 저를 포함해 도시 거주자 중 정원을 실제로 가꾸고 있거나, 정원이 삶의 일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예요. 이 전시는 '가드닝은 정말 좋은 것이다' 라고 강요하는 대신 가드닝을 둘러싼 예술가의 해석, 조경가의 치열한 문제 인식, 역사 속 인물의 정원에 대한 애정을 보여줘 자연스럽게 가드닝에 관해 관심을 갖게 해요. 마지막엔 가드닝이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줘 관객에게 깨달음을 끌어냅니다. 아쉬운 부분도 있어요. 중반부의 조경사 거트루드 지킬부터 시작해 여러 유명 인사들이 남긴 정원에 대한 말이나 경험을 보여주는 전시요. 전시의 다른 부분에서는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데 반해 단순한 나열식 소개에 그치는 느낌이었어요. 차라리 수가 적더라도 정원에 조예 깊은 인물을 중심으로 깊이 있는 내용을 보여주었다면 더 좋았을 거예요.

대학 시절 직접 기른 식물들. 맨 왼쪽 위의 사진은 씨앗을 발아시키는 모습이고, 나머지는 직접 길러낸 식물들이다.

대학 시절 직접 기른 식물들. 맨 왼쪽 위의 사진은 씨앗을 발아시키는 모습이고, 나머지는 직접 길러낸 식물들이다.

어떤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나요.

도시에서 자취하면서 매일 바쁜 삶에 치여 사는 사회 초년생들이 전시의 타깃 고객이 아닐까 싶어요. 생활에 치여 살다 보면 화분이든 꽃다발이든 식물을 일상의 일부로 포함시킨다는 결정 자체가 부담일 수 있거든요. 혼자 산다면 본인이 책임져야 하는 대상이 늘어난다는 생각이 더욱 큰 부담이 될 수 있고요. 주중에는 일 때문에 바쁘고, 주말엔 쉬거나 친구들을 만나 수다도 떨지만 한편으로는 항상 어딘지 공허함을 느껴질 수 있죠. 그런 사람이 가드닝 전시를 통해 정원 만들기를 보다 가까이할 수 있다면 일상에서 잔잔한 충족감을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지리뷰는...

자신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소비로 표현되는 시대. 소비 주체로 부상한 MZ세대 기획자·마케터·작가 등이 '민지크루'가 되어 직접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공간·서비스 등을 리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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