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딸 납치" 2000만원 협박…70대 구한건 '수표'였다

중앙일보

입력 2021.07.09 14:53

업데이트 2021.07.09 15:22

보이스피싱 이미지. 중앙포토

보이스피싱 이미지. 중앙포토

70대 노인을 상대로 한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범죄가 '수표(手票)'에 발목이 잡혔다. "딸이 납치됐다"며 2000만원을 인출한 이 노인은 은행 직원의 대처와 경찰의 범행 장소 예측으로 범죄 피해에서 벗어났다.

9일 중앙일보 취재에 따르면 서울 양천구에 사는 A씨(79·여)는 지난 7일 오전 11시쯤 "딸이 납치됐으니 2000만원을 준비하라"는 협박 전화를 받았다. A씨는 남편에게 "딸이 납치돼 돈을 찾으러 가야 한다"고 말한 뒤 집 근처 새마을금고 목4동지점을 찾았다. A씨는 은행 직원에게 "현금 2000만원을 인출하겠다"고 요청했지만, 은행 직원은 '분실 위험' 등을 이유로 "현금이 아닌 수표로 드리겠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A씨는 이곳에서 현금과 수표를 각각 1000만원씩 찾았다.

하지만 "수표 1000만원도 현금으로 바꾸라"는 사기범의 요구에 따라 A씨는 다시 노량진동 새마을금고로 향했다. 그런데 이 지점엔 현금이 부족해 A씨는 수표 500만원만 현금화했다. A씨는 남은 수표도 현금으로 바꾸라는 보이스피싱범의 요구로 한남동 새마을금고로 이동했다.

그 사이 이날 오후 1시 15분쯤 경찰에는 "시어머니가 보이스피싱을 당한 것 같다. 딸이 납치됐다며 2000만원을 갖고 어딘가로 나갔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시아버지로부터 얘기를 들은 A씨의 며느리가 시어머니와의 전화 연결이 불발되자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경찰은 제3자 위치추적을 통해 A씨가 한남대교 북단으로 이동 중인 것을 확인했다. 경찰은 피해자가 택시를 탔을 것이라고 보고, 70대 여성이 승차한 택시를 검문했다. 또 환전을 위해 수표 발행처인 새마을금고를 다시 방문할 것이라 예상하고 한남대교에서 가장 가까운 지점으로 출동했다.

서울 용산경찰서 전경. 중앙포토

서울 용산경찰서 전경. 중앙포토

서울 용산경찰서 관계자는 "해당 지점을 수색하던 경찰관이 은행 창구에서 사기범과 전화통화를 하며 수표를 바꾸던 피해자를 발견해 보이스피싱 사실을 알렸다"며 "현금을 일부 송금한 상태였지만 바로 지급정지를 해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A씨에게 수표 인출을 권했던 목동 새마을금고 직원 장대성(38) 대리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연세가 있으시니 분실 우려나 어르신 안전 등을 고려해 원래는 전액 수표로 드리려 했지만, 현금이 꼭 필요하다고 해 어쩔 수 없이 절반만 수표로 바꿨다"며 "수표 때문에 시간이 지체돼 보이스피싱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