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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하다 창업한 회사 '으흠'…"칙칙한 화상회의에 슈퍼파워를" [팩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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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으흠(mmhmm)의 다양한 기능을 프레젠테이션에 활용하는 필 리빈. 사진 으흠

으흠(mmhmm)의 다양한 기능을 프레젠테이션에 활용하는 필 리빈. 사진 으흠

화상회의 속 티셔츠 위로 우주가 흐른다. 천국에서 얼굴만 동동 떠다니게 하거나, 내 방에 빗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게 할 수도 있다. 파워포인트(PPT) 발표 화면도 자유자재로 만들고 조절한다. 재밌고, 편리하다. 화상회의의 진화가 이런 걸까.

필 리빈 mmhmm·에버노트 창업자 인터뷰

미국 스타트업 '으흠(mmhmm)' 이야기다. 창업 1년 만에 소프트뱅크비전펀드·세쿼이아캐피탈 등 실리콘밸리 유력 벤처캐피탈(VC)로부터 1억 달러를 투자받았다. 2명이던 직원은 그 사이 75명으로 늘었다. 비전펀드에서 쿠팡의 투자를 리드했던 리디아 제트는 으흠 이사회에 합류했다. 초고속 성장이다.

회사를 세운 이는 필 리빈(Phil Libin) 에버노트 창업자다. 2008년 모바일 메모 앱 시장을 개척하다시피한 바로 그 회사. 지금은 일반화된 기능이지만, 키워드 검색 한 번으로 메모를 찾아내는 색인과 인터넷에서 본 글·그림을 곧장 스크랩하는 웹 클리핑 기능으로 에버노트는 큰 인기를 끌었다.

으흠은 그의 다섯 번째 창업이다.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재미"라는 그가 이번에 꽂힌 아이템은 화상회의에 활기를 더할 보조도구다. 지난 6일 오전그를 줌 화상회의로 만났다. 실리콘밸리의 유명 창업자이지만 그는 현재 미국 남부 아칸소 주에 산다. 14년간 살았던 실리콘밸리를 떠날 수 있었던 건 코로나19로 화상회의가 보편화된 덕분이다. 이 회사의 다른 직원들도 미국 전역에, 전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다. 괜찮은 화상회의 도구만 있다면 누구나 원하는 곳에 살며 일할 수 있다는 걸 입증해 보이려는듯.

과거 에버노트 창업 경험이 있는 필 리빈 으흠(mmhmm) 창업자 겸 CEO. 사진 으흠

과거 에버노트 창업 경험이 있는 필 리빈 으흠(mmhmm) 창업자 겸 CEO. 사진 으흠

벌써 다섯 번째다. 왜 또 창업했나.
으흠은 사실 농담하다 만든 회사다. 창업할 계획까진 없었다(웃음). 지난해 화상회의가 크게 늘었는데, 너무 지루하길래 더 재밌게 일하려고 만들어봤다. 그런데 이걸 본 사람마다 반응이 좋아서 회사까지 차리게 됐다.
그래서 으흠으로 뭘 할 수 있나.
이제 원격근무 시대다. 그런데 화상회의는 지루하고 칙칙하다. 으흠은 비디오 소통을 좀 더 재밌고 활기 넘치게 만드는 도구다. 줌이나 구글 미트 같은 앱에서 으흠을 적용해 쓸 수 있다. 효과적인 소통을 돕는 '슈퍼파워', 그게 으흠이다.
화상으로 만난 필 리빈 으흠(mmhmm) 공동창업자 겸 CEO. 화면은 으흠이 적용된 모습. 김정민 기자

화상으로 만난 필 리빈 으흠(mmhmm) 공동창업자 겸 CEO. 화면은 으흠이 적용된 모습. 김정민 기자

왜 화상회의는 지루하고 금세 피곤해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대면 소통에 서툴다. 실제 성격도 화면에선 잘 드러나지 않는다. 화상회의 앱이 대면 소통을 대체하는 덴 성공했지만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연결하는 것까진 잘 못했다. 온라인 수업이나 화상회의를 하다보면 뭔가 좀 칙칙하고 울적한 기분이 드는 이유다. 그래서 우리는 영상 표현에 익숙한 배우와 코미디언의 행동을 연구했다. 이들이 화면 너머로 뿜어내는 분위기나 카리스마, 즉 '커뮤니케이션 슈퍼파워'를 일반인도 손쉽게 가질 방법을 찾기 위해서.
이름은 왜 으흠인가.
밥 먹으면서도 쉽게 발음할 수 있으니까? 농반진반이다(웃음). 영어 추임새 '으흠(mhm)'이 대화를 더 자연스럽게 이끌듯, 으흠 앱이 비디오 소통을 매끄럽게 도와주겠다는 뜻이다.

으흠엔 사무실이 없다. 으흠을 배출한 리빈의 4번째 회사(인공지능 스타트업 '올터틀즈') 때부터 코로나19를 계기로 사무실을 아예 없애버렸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일본 도쿄, 프랑스 파리에 있던 사무실을 없애고 직원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살고 싶은 곳을 찾아 떠났다. 그러나 성과를 내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1년 만에 비전펀드·세쿼이아 등 쟁쟁한 VC가 투자했다.
많은 스타트업이 창업 후 4~5년간 어떻게 하면 투자자 눈에 들 것인지만 신경쓴다. 하지만 소비자 눈에 들면 투자자를 설득하거나 감동시킬 필요가 없다. 우린 지난 1년간 소비자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만 집중했다. 그랬더니 다른 회사는 5년 걸릴 일(대형 투자유치)이 1년 만에 일어났다.
한국에선 으흠을 아는 이가 많지 않은데, 미국에선 많이 쓰나.
지난해 11월에 맥(Mac) 버전을 출시했고, 윈도우 버전은 몇 주 전에 나왔다. 지난 두 달간 수십 만명이 썼다. 약 60%가 미국 사용자다. 그 다음으로 일본 사용자가 많다. 조만간 한국어 포함 더 많은 언어를 지원할 예정이다. 으흠은 누구나 쓸 수 있다. 코미디언들이 으흠으로 소아암 어린이들에게 웃음을 준 사례도 있고, 포춘 500대 기업의 CEO가 으흠으로 이사회·투자자 미팅도 한다. 
코로나가 끝나면 대면회의로 돌아가지 않을까.
코로나 시대의 비디오 소통은 '어쩔 수 없으니 하는 것'이었다. 코로나가 끝나면 소비자는 하는 수없이 써야했던 서비스에선 손을 뗄 거다. 그때가 바로 '강요된 비디오'(forced video) 시장이 끝나고 '긍정적 비디오'(positive video) 시장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화상으로 만난 필 리빈 으흠(mmhmm) 공동창업자 겸 CEO. 화면은 으흠이 적용된 모습. 김정민 기자

화상으로 만난 필 리빈 으흠(mmhmm) 공동창업자 겸 CEO. 화면은 으흠이 적용된 모습. 김정민 기자

긍정적 비디오 시장?
화상회의 중에서도 사람들이 정말 좋아하는 서비스들만 살아 남을 거란 얘기다. 구글·줌 등이 비디오 플랫폼의 질을 올려놓은 건 맞다. 그러나 비디오 시장을 세련되고 창의적인 곳으로 만든 기업은 거의 없다. 으흠은 비디오 산업에 활력과 창의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에버노트가 MS오피스에 머물러있던 생산성 산업을 쿨하게 바꿔놨던 것처럼.
다른 화상회의 앱과 으흠의 차별점은.
으흠은 줌·구글 미트·유튜브 등 어느 플랫폼에서나 쓸 수 있다. 으흠은 그들과 직접 경쟁하지 않는다.
왜 다른 앱들이 으흠을 받아들였을까. 가상배경 같은 건 자체 개발할 수도 있는데.
큰 회사가 플랫폼을 만들고 스타트업이 그 안의 콘텐트를 채워넣는 건, 늘 있던 일이다. 지금은 큰 비디오 회사들이 앱스토어 같은 대형 플랫폼으로 거듭나기 위해 우리 같은 개발사를 받아들이는 시기다. 비디오 산업 생태계가 커지고 있단 증거다.
으흠(mmhmm)이 지원하는 각종 효과들. 사진 으흠

으흠(mmhmm)이 지원하는 각종 효과들. 사진 으흠

한국 시장에 관심이 많다고.
한국 문화와 음식의 오랜 팬이다.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가 '킹덤'인데, 더 멋진 모자(갓) 쓴 '왕좌의 게임' 같다. 애타게 시즌 3을 기다리고 있다. 최근엔 넷플릭스에서 '경이로운 소문'과 '승리호'를 재밌게 봤다. 떡볶이도 정말 좋아한다. 기업가로서는 한국인들의 창의성을 눈여겨 보고 있다. 재능있는 인재들과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물건을 만드는 게 목표인 우리로선, 한국인들의 창의성을 우리 제품에 반영하고 싶다.
화상으로 만난 필 리빈 으흠(mmhmm) 공동창업자 겸 CEO. 화면은 으흠이 적용된 모습. 그가 살고 있는 미국 아칸소주 동네 배경이다. 김정민 기자

화상으로 만난 필 리빈 으흠(mmhmm) 공동창업자 겸 CEO. 화면은 으흠이 적용된 모습. 그가 살고 있는 미국 아칸소주 동네 배경이다. 김정민 기자

에버노트 얘길 좀 해보자. 노션(Notion)이 나오면서 '혁신적인 노트의 상징'에서 밀린 것 같은데.
에버노트를 6년 간 경영했지만 지금은 관여하는 게 없다. 그래서 뭐라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생산성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노션, 롬(Roam), 에어테이블(Airtable) 등 에버노트 다음 세대가 나왔다는 건 정말 기쁘다. 에버노트 이전까진 아무도 생산성을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걸로만 여겼지.
'연쇄 창업'의 원동력은 뭔가.
회사 세우는 데 특별한 취미가 있는 건 아니다. CEO 명함에도 관심 없다. 사실 몇 번 사임하려고도 했다. 나는 그냥 '세상에 있었으면 싶은 것'을 만드는 게 좋다.
으흠이 세상에 필요한 이유? 으흠을 통해 뭘 하고 싶나.

첫째, 세상을 보다 평등하게 만들고 싶다. 모든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서 같은 속도로 일하고 살아가는 환경은, 역설적으로 더 불평등하다. 하지만 비디오로 소통하는 세계에선 자신이 있을 곳(시공간과 속도)을 직접 정할 수 있다.
둘째, 세상을 보다 인간답게 만들고 싶다. 전세계 직장인들은 비인간적인 환경을 견디며 살고 있다. 매일 왕복 2~4시간 통근하면서 10~12시간 동안 같은 건물에서 같은 사람들만 만나다가, 잠들기 직전 겨우 잠깐 자녀와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이제는 4억~5억명이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시간에 근무할 수 있게 됐다. 코로나가 만든 변화다. 비디오 소통의 효율과 재미가 커진다면 삶이 더 인간다워질 거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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