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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 현실로 다가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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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태호 광장국제통상연구원 원장·전 통상교섭본부장

박태호 광장국제통상연구원 원장·전 통상교섭본부장

기후변화에 대해서는 유럽연합(EU)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많은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대응해 왔다. EU는 ‘교토의정서’의 온실가스감축 의무수준을 차질 없이 달성했고 또한 ‘파리기후협약’을 통해 온실가스배출량을 2030년까지 1990년 수준으로부터 40% 감축하겠다는 ‘온실가스감축 목표(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 NDC)’를 제출했다. 나아가 2020년 12월에는 이를 55%로 상향 조정해 발표했다. EU는 이를 위해 ‘탄소 배출권거래제(Emission Trading System: ETS)’를 에너지를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산업뿐 아니라 건물, 교통, 하수도, 농업 등에도 적용하고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율을 32%로 확대했다.

EU 2030년 온실가스감축목표 55% #국가간 탄소배출 조정 세계적 추세 #온실가스감축 구체적 로드맵 필요 #기업, 기후변화 종합대책 세워야

EU 집행위원회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종합대책인 ‘유럽 그린 딜(European Green Deal)’을 2019년 말 발표했고 그 핵심은 2050년까지 ‘탄소 순 배출량 제로(carbon neutrality)’, 이른바 ‘탄소 중립’을 달성하는 것이다. EU는 코로나 시대 이후의 경제회복을 위해서도 ‘유럽 그린 딜’ 이행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고, 2021~2027년 EU 총예산 1.85조 유로(약 2485조 원)의 30%를 여기에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6월 초 EU 집행위원회는 ‘유럽 그린 딜’의 일환인 ‘탄소국경조정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CBAM)’ 도입을 위한 제안서 초안을 공개했다. EU는 온실가스감축 측면에서 ‘공정한 경쟁여건(level playing field)’을 조성하고 나아가 다른 국가들로 하여금 온실가스감축을 독려하기 위해 CBAM을 도입하는 것이라고 그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즉 외국의 경쟁기업이 탄소배출에 큰 부담을 지지 않고 상품을 생산해 EU로 수출하는 반면 EU 기업들은 탄소배출권을 구매해서 상품을 생산한다면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경우 EU 소비자들이 가격이 싼 수입품을 선호해 EU 기업들이 불이익을 받게 된다.

나아가 EU 기업들이 탄소배출감축 정책이 느슨한 역외지역으로 생산시설을 옮겨갈 수도 있다. 즉 역외지역으로의 ‘탄소누출(carbon leakage)’이 나타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온실가스 감축노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현재 EU로 수입되는 상품에 직간접적으로 내재한 ‘탄소 발자국(carbon footprint)’이 EU 전체의 온실가스배출량의 약 20%를 차지하며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EU가 도입하고자 하는 CBAM의 기본원칙은 간단하다. 외국으로부터 물품을 수입하는 경우 EU의 수입업자가 수입 물품에 직간접적으로 내재하여 있는 온실가스 총량을 신고하고 이에 EU의 온실가스 가격을 적용한 비용을 지불하도록 하는 것이다. EU의 온실가스 가격은 EU의 탄소배출권 거래가격을 반영하여 결정된다. 만일 수입 물품을 생산한 외국기업이 자국에서 온실가스배출권을 구매한 것을 입증할 수 있으면 수입업자는 지불해야 하는 총비용에서 이를 삭감하여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EU는 일차적으로 전력, 시멘트, 비료, 철강, 알루미늄 등 탄소배출이 많은 품목에 CBAM을 적용하고 2023년부터 3년 정도 과도기간을 거쳐 2026년 1월 정식으로 발효시킨다는 계획이다. 또한 최빈개도국에 대해서는 특별한 조치를 통해 배려한다는 방침이다.

EU의 CBAM이 실제로 운영되기에는 여러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수입 물품에 직간접적으로 내재해 있는 온실가스 총량을 산출하기가 쉽지 않고, 역외국가의 탄소배출권 거래가격이 서로 다르며, 세계 많은 국가가 탄소배출권 거래제도 자체를 도입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EU의 CBAM이 수입품을 동종 국산품과 동등한 대우를 해야 한다는 세계무역기구(WTO)의 내국민대우 원칙에 어긋날 수 있고 사실상 보호무역 조치로 쓰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EU의 CBAM 도입이 온실가스감축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또한 바이든 대통령도 이미 탄소 국경 조정세 도입에 대한 검토를 지시한 바 있어 앞으로 어떤 형태로든 국가 간 탄소배출을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는 오는 11월 영국에서 개최되는 ‘제26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2030년까지의 ‘온실가스감축 목표(NDC)’를 발표하기로 했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한국이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할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정부는 탄소배출권 거래제도의 활성화를 비롯한 온실가스감축 정책 전반을 점검하고 이를 바탕으로 2030년 NDC와 나아가 2050년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 기업들도 EU의 CBAM 도입은 물론이고 앞으로 더욱 고조될 온실가스감축 압박 추세에 대비한 종합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