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최상연의 시시각각

아니면 말고

중앙일보

입력 2021.07.09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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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상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8일 국회를 방문한 김부겸 국무총리(왼쪽)가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만나고 있다. 민주당과 정부는 5차 재난지원금의 범위를 놓고 이견을 노출하면서 갈등이 다시 불거졌다. 윤 원내대표는 이날 "예산은 기획재정부가 정하면 의원들이 따르는 것이 아니다"라고 당의 주도권을 강조했다. 임현동 기자

8일 국회를 방문한 김부겸 국무총리(왼쪽)가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만나고 있다. 민주당과 정부는 5차 재난지원금의 범위를 놓고 이견을 노출하면서 갈등이 다시 불거졌다. 윤 원내대표는 이날 "예산은 기획재정부가 정하면 의원들이 따르는 것이 아니다"라고 당의 주도권을 강조했다. 임현동 기자

1980년대 이주일은 어리바리한 말투의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로 코미디 황제에 올랐다. 얘기를 시작하면 주제에 집중하는 게 아니었다. 이리저리 두서없이 건너뛰다 '뭔가 보여드리겠다'고 삼천포로 빠졌다. '아니면 말고'의 '아무 말 대잔치'로 웃겼다. 실제로 뭔가 보여준 건 정치 활동 이후다. ‘횡설수설하는 13대 국회를 보면 14대엔 나도 출마할 수 있겠다’고 코미디 프로에서 너스레를 떨다가 진짜 국회의원이 됐는데 의정 활동에 열심이었다. 세비를 반납하는 등 당시로선 차별화된 행보도 보였다.
 15대 출마를 놓고 고민할 때 국회에서 그를 가끔 만나 정치판 코미디를 주고받으며 웃었다. 결국 그는 불출마를 선택했고 ‘여기엔 나보다 더 코미디 잘하는 사람들이 많다. 코미디 공부 많이 하고 떠난다’는 말을 남겼다. 연예계로 돌아가선 풍자성 강한 정치 개그로 방송위 경고를 여러 번 받았다. 뭔가 보여줬다. 세종시 아파트값 상승으로 공무원 불로소득이 10조원을 훨씬 넘는다는 경실련 발표를 보며 초보 정치인 이주일 의원을 떠올렸다. 코미디 무대나 정치판이나 '아니면 말고' 풍년이다.

'정치 중립, 민생 집중' 발표하곤
갈라치기 정책에 툭하면 '모르쇠'
세월호 '기다리라'와 뭐가 다른가

 세종 집값이 천장을 뚫은 건 여당의 천도론이 기폭제다. 1년 전 민주당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국회와 청와대도 세종시로 가야 한다"고 밝힌 뒤 대선주자들이 맞장구치자 시세가 분양가의 3배로 치솟았다. 그럼 지금은? 실제로 옮길 거라고 믿는 사람은 못 봤다. 초거대 수퍼 여당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다. 그런데 마음은 먹지 않는다. 그냥 ‘뭔가 보여드리겠다’는 거였다. 공무원들만 대박이 났다. 국토교통부 장관·차관도 앉아서 몇억 원씩 챙겼다고 한다.
 선거 때도 아니고 누가 옮기자고 조른 것도 아니다. 4월 총선에서 기록적인 승리를 거머쥔 직후에 자기들 몇 사람이 뜬금없이 내지르더니 곧장 모르쇠다. 그새 집값이 잡히지도 않았다. 100주 이상 치솟은 전세 시장은 올가을 최악의 대란을 예고하는 중이다. 국회건, 정부건 뭔가 책임 있게 발표하고 직을 걸고 추진해도 시원찮을 판에 정부도 국회도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 내일도 분명 다를 것이다.
 시늉이라도 보이며 우겨야 조금은 그럴듯해 보인다. 청와대는 얼마 전 '철저하게 중립을 지키고 민생에만 집중하겠다'고 발표했다. 생각해 보자. 야당이 반대하든 말든, 묻지 않고 임명한 게 지금 정권의 내각 멤버다. 3권 분립은 책에나 쓰여 있다. 국회는 상임위원장을 모조리 독식한 여당만의 '청와대 출장소'다. ‘방탄 법원’ 소릴 듣는 사법부가 있고 심지어 선관위 중립성까지 도마에 올랐다. 최소한 선거 주무 장관이라도 바꾸고 그런 말을 해야 먹힌다.
 그러니 80% 재난지원금, 2% 종부세 폭탄을 곧이곧대로 믿지 못한다. 그뿐 아니다. 고용 연장이다 뭐다 정책마다 갈라치기에 선심용이라고 짐작한다. 선거 여러 번 치러본 유권자다. 다 안다. 어차피 우리 편 아닌 쪽은 차라리 두들겨 패는 게 표 결집에 도움이 되기 때문일 거라고들 본다. 아니면 설명해 보라. '80%, 2% 커트라인'의 근거는 뭔가. 왜 이렇게 복잡한가. 앞뒤가 서로 뒤죽박죽인데 ‘정치 중립, 민생 집중’이라니 듣는 사람은 유체 이탈을 느낀다. 이주일 쇼라면 웃겠지만.
 ‘기다리라’는 말에 아이들은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선장은 떠났고 정부는 우왕좌왕했다. '못 믿겠다'고 두들겨 팬 뒤 등장한 정부다. 그런데 정부 말만 믿고 기다렸던 사람은 세상 물정 모르는 '딱한 사람'이 됐다. 그래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절대로 임명하면 안 될 사람만 골라서 추천한 인사검증팀도, 가정이건 나라 살림이건 거덜 낸 장관도 모두 멀쩡하다. 대통령은 '인사 실패란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한다. ‘언제나 기억하겠다’던 세월호 침몰에선 뭘 배웠다는 건가. 도대체 뭐가 다르다는 건가.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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