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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폐지론 제기된 여성가족부, 존재의 이유 성찰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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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해 6월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여성가족위원회 당정청협의회에 이정옥 당시 여성가족부 장관(왼쪽 앞줄 둘째)이 참석했다. 그는 장관 시절 오거돈 전 부산시장과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범죄 사건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여가부는 지금 폐지론이 제기된 상태다. [연합뉴스]

지난해 6월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여성가족위원회 당정청협의회에 이정옥 당시 여성가족부 장관(왼쪽 앞줄 둘째)이 참석했다. 그는 장관 시절 오거돈 전 부산시장과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범죄 사건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여가부는 지금 폐지론이 제기된 상태다. [연합뉴스]

정치권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론이 제기되자 일부 여성계가 반발하고 있다. 포털 사이트에서 찬반 논란도 뜨겁다. 폐지론까지 제기된 것은 여가부가 그동안 박원순·오거돈 등 권력형 성범죄 사건이 터졌을 때 정치적 진영 논리에 매몰돼 여성 권익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 때문으로 보인다. 여가부는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진영 논리 따라 박원순 성범죄 등에 침묵 #정치 편향 벗어나고 양성평등 균형 잡길

이번 논란은 국민의힘 대선 주자인 유승민 전 의원과 하태경 의원이 불을 붙였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가세하면서 판이 커졌다. 유 전 의원은 보건복지부·고용노동부·법무부 등이 여성 관련 정책을 담당하고 있다며 여가부를 없애고 남는 예산으로 군 복무자를 지원하겠다고 공약했다. 하 의원은 “여가부를 폐지한 뒤 대통령 직속으로 ‘젠더갈등해소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대해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지금은 여가부가 책임 있게 일할 수 있도록 실질적 권한과 환경을 정비할 때”라고 반박했다. 역차별을 주장하는 20대 남성 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해 남녀 갈등을 부추긴다고 비판하자 유 전 의원은 “젠더 갈등은 오히려 여가부가 부추겨 왔다”고 재반박했다.

정치권의 논란과 별개로 여가부 공직자들은 부처 폐지론이 또다시 제기된 배경을 돌아보고 문제점을 자성해야 한다. 2001년 여성부로 출발한 여가부는 올해가 20주년이지만 잊을 만하면 폐지론이 제기되고 있다. 그 이유를 따져보면 자업자득인 측면도 적지 않다. 예컨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여직원을 성추행한 사건이 터졌을 때 당시 이정옥 여가부 장관은 “국민이 성인지를 집단 학습하는 기회”라는 엉뚱한 발언으로 비난을 샀다. 일본군 위안부 출신 이용수 할머니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윤미향 당시 상임대표의 비리 의혹을 제기했을 때도 여가부는 피해자 할머니의 권익 옹호에 소극적이었다. 여가부 ‘존재의 이유’에 국민이 의문을 갖게 했으니 뼈아픈 실책이었다.

여가부의 영문 명칭은 ‘양성평등가족부’(Ministry of gender equality and family)다. 지난 20년간 여가부가 적잖은 일을 했다지만, 한편으론 여성 우대 정책에 치중한다는 인상을 심어줬다. 소외당하는 20대 남성의 권익을 위해서도 사회 변화에 걸맞게 목소리를 내줘야 한다. 차제에 여가부 명칭을 양성평등가족부로 바꾸는 방안도 검토해 보길 바란다.

균형 잡힌 정책으로 양성 평등 문화가 뿌리 내린 스웨덴의 경우 더는 남녀 성을 구분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양성 평등이 구현되고 있다. 우리 여가부도 정치적 편향에서 벗어날 때 국민 모두의 지지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 과거의 한계를 극복하고 조직 혁신과 정책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