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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초원 저리가라, 고사리가 빚어낸 장관

중앙일보

입력 2021.07.09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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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다자우길 ④ 남해바래길

경남 남해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고사리밭이 있다. 출입이 제한됐던 고사리밭이 이제 문을 열었다. 고사리 채취가 끝난 7월부터는 마음껏 고사리밭 사이를 걸을 수 있다. 남해바래길 4코스 고사리밭길의 선물 같은 풍경이다.

경남 남해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고사리밭이 있다. 출입이 제한됐던 고사리밭이 이제 문을 열었다. 고사리 채취가 끝난 7월부터는 마음껏 고사리밭 사이를 걸을 수 있다. 남해바래길 4코스 고사리밭길의 선물 같은 풍경이다.

여기에 땀과 눈물로 빚은 절경이 있다. 대관령 배추밭도 아니고, 남도 차밭도 아니다. 고사리밭이다. 고사리 따위가 만들어낸 풍경이 뭐 그리 대단할까 싶으면, 경남 남해로 내려오시라. 그리고 해안 언덕을 따라 한없이 이어진 고사리밭을 걸어보시라. 해종일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초록의 세상에서 우리네 아버지가 흘렸던 땀을 기억하시라. 막 채취를 끝낸 국내 최대 고사리밭의 비경을 공개한다.

국내 최대 면적의 남해 고사리밭
전체 4.3㎢, 여의도 크기 맞먹어
길이 16㎞ 사잇길 7월 완전 개방
능선 너머 푸르른 바다와도 조화

바다로 가는 길

남해바래길 완주자들. 6월 22일 남해바래길 완주 인증서 수여식이 열렸다.

남해바래길 완주자들. 6월 22일 남해바래길 완주 인증서 수여식이 열렸다.

다자우길(다시 걷자 우리 이 길)이 네 번째 걸은 길은 남해바래길이다. 경남 남해군이 2010년 조성한 트레일로, 남해의 리아스식 해안을 따라 구불구불 길이 이어진다. 이름에서 ‘바래’는 남해 사투리다. 어머니가 갯가로 나가 파래·미역·조개 따위를 채취하는 일을 남해에서 ‘바래’라 했다. 남해바래길은 바다로 일 나가던 어머니를 기억하는 길이다. 하여 남해바래길은 대부분 바다와 바투 붙어 있다.

남해바래길

남해바래길

남해바래길은 지난해 11월 기존 코스를 수정하고 연장해 ‘남해바래길 2.0’을 개통했다. 모두 19개 코스(본선 16개, 지선 3개)로, 전체 길이는 231㎞다. 가천다랭이마을, 금산 보리암, 미조항 등 남해의 이름난 관광지를 두루 거친다. 6월 말 현재 남해바래길 2.0 완주자는 115명이다. 개장한 지 8개월 만에 115명이 231㎞ 길을 다 걸었다는 뜻이다.

부산에서 해남까지 남해안을 잇는 남파랑길이 남해바래길과 여러 구간이 겹친다. 남파랑길 90개 코스 중에서 36∼46코스가 남해바래길과 같은 길이다. 남해 해안을 바깥에서 도는 바래길 11개 코스가 고스란히 남파랑길로 지정됐다.

고사리 세상

6월 말 고사리밭 풍경. 고사리 채취 막바지, 농부는 좀처럼 굽힌 허리를 펴지 않았다.

6월 말 고사리밭 풍경. 고사리 채취 막바지, 농부는 좀처럼 굽힌 허리를 펴지 않았다.

고사리밭길은 남해바래길 4코스의 다른 이름이다. 지난해 11월 남해바래길 2.0을 완성할 때 새로 조성했다. 전체 길이는 16㎞로, 크고 작은 산을 부지런히 넘어야 한다. 코스 안에 슈퍼나 식당도 없다. 산행 준비하듯이 단단히 각오해야 한다.

고사리밭이 들어선 자리는 경남 남해의 창선도 오른쪽 해안 구릉 지대다. 남해 읍내보다 바다 건너 삼천포가 더 가까운 지역이다. 남해도에서 죽방렴으로 유명한 지족해협을 건너면 창선도의 행정구역 창선면이다. 창선면 고사리밭의 면적은 4.3㎢. 여의도 전체 면적이 4.5㎢이니, 여의도만 한 고사리밭인 셈이다. 고사리밭에 들면 실감할 수 있다. 산이고 언덕이고 죄 고사리밭이다. 고사리 세상이다.

고사리밭은 고사리산이기도 했다. 고사리밭길은 여러 개의 고사리산을 오르내리는 길이었다.

고사리밭은 고사리산이기도 했다. 고사리밭길은 여러 개의 고사리산을 오르내리는 길이었다.

이른 아침 고사리밭. 푸른 고사리 사이로 비치는 붉은 흙과 능선 너머로 드러나는 파란 바다가 한껏 채도를 끌어 올린 채 반짝이고 있었다. 이 이국적인 풍경이라니. 스위스 알프스 초원이 떠올랐고, 이탈리아 토스카나 포도밭이 겹쳐졌다. 고사리 따위가 이런 기적 같은 장관을 빚어내다니.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만 봤다.

11분의 1의 농사

이른 아침 드론으로 촬영한 고사리밭 전경.

이른 아침 드론으로 촬영한 고사리밭 전경.

창선도 주민이 고사리 농사를 지은 건 30년 정도다. 태풍 피해를 본 감나무 농가가 대신 고사리를 키운 게 시작이었단다. 지금은 1100여 농가가 고사리를 키운다. 고사리밭은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됐었다. 고사리밭 전경이 여태 공개되지 않았던 이유다.

고사리밭은 고사리산이기도 했다. 고사리밭길은 여러 개의 고사리산을 오르내리는 길이었다.

고사리밭은 고사리산이기도 했다. 고사리밭길은 여러 개의 고사리산을 오르내리는 길이었다.

지난해 남해군 관광문화재단이 고사리 농가를 찾아가 밭 사이 농로를 걸을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조건이 따랐다. 고사리를 채취하는 3월부터 6월 사이에는 출입이 제한된다. 관광문화재단이 지정한 인솔자와 함께 소수 인원만 고사리밭에 들어갈 수 있다. 7월부터 제한이 풀렸다. 한 번 채취가 끝난 고사리가 벌써 무릎까지 올라왔다. 다음 달이면 허리까지 올라온단다.

창선농협 김상찬 상무에 따르면 창선면의 연 고사리 생산량은 150톤이다. 창선면이 전국 고사리 생산량의 약 30%를 담당한다. 이때 기준은 밭에서 꺾은 고사리가 아니다. 밥상에 오르는 마른 고사리가 기준이다. 생(生)고사리 11㎏을 꺾어야 건고사리 1㎏이 나온다. 흙에 기대 사는 일이 늘 이렇다. 인간이 빚은 풍경이 천혜의 자연보다 더 눈에 밟히는 까닭이다.

길 정보
남해바래길

남해바래길

남해바래길 4코스 고사리밭길은 16㎞ 길이로, 남해군 관광문화재단은 6시간 정도 걸린다고 소개한다. 난이도가 별 5개 기준별 4개로 매우 높은 편이다. 남해바래길은 전용 앱이 있다. 앱을 작동하면, 코스 정보부터 안내 전화번호까지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위치 추적 기능이 있어 길 잃을 염려가 없다. 남해바래길 전 코스를 완주하면 인증서를 받을 수 있다. 동대만 간이역을 지나 고사리밭으로 들어가면 종점 적량마을까지 식당은커녕 가게도 없다. 물을 넉넉히 챙겨야 한다. 남해바래길 탐방안내센터 055-863-8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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