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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피살 공무원 형 "김정은에 편지…사고현장 방문 간청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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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에 의해 사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형 이래진씨. 정수경 PD

북한군에 의해 사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형 이래진씨. 정수경 PD

지난해 북한군에 의해 사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형 이래진(56)씨가 주홍콩북한영사관·주몽골북한대사관을 통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보내는 서한을 발송했다고 8일 밝혔다.

지난 2월 4일 이인영 통일부 장관과 면담에서 직접 전달을 부탁했지만 이뤄지지 않아 북한 대사관을 통하는 방법을 찾았다는 것이다.

이씨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난 5월 통일부에 서한 발송 여부를 문의하자 '북측과 연락이 잘 안 된다'는 이유 등으로 보내지 않았다는 답을 들었다"며 "그런데 정부가 최근 들어 남북 간 소통이 이뤄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작 서한은 전달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나서지 않으니 재외 북한 대사관 및 영사관의 연락처를 직접 개인적으로 구해 메일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래진씨가 주홍콩북한영사관·주몽골북한대사관 등에 보낸 이메일. [사진 이래진씨]

이래진씨가 주홍콩북한영사관·주몽골북한대사관 등에 보낸 이메일. [사진 이래진씨]

"통일부에 전달 요청했지만 보내지지 않아" 

이 씨가 김 위원장에 서한을 보낸 목적은 동생이 사망한 현장이라도 가볼 수 있게 해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다.

김 위원장을 수신인으로 한 A4용지 3장 분량의 서한에서 이씨는 "대한민국 정부가 아닌 개인의 자격으로 그리고 유가족의 대표로서 위원장님께 간절히 청한다"며 "행여나 동생의 시신이 있는지, 사고현장을 저 혼자만이라도 방문해서 동생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하고 쓰디쓴 소주 한 잔이라도 뿌려주고 싶다"고 호소했다.

이어 "사고현장을 방문해 북 당국으로부터 (동생 사고 당시) 마지막 과정을 직접 듣고 싶다"며 "김 위원장님의 부디 넓으신 마음으로, 못난 형의 바람을 들어주시길 간청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사고 후 김 위원장께서 친히 남녘 동포들에게 사과하는 마음을 담은 편지를 주신 데 깊은 감사를 드린다"면서도 "국가 간의 이해충돌은 있을지 모르겠으나 따뜻한 동포애의 마음은 열려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 위원장의 통 큰 아량을 베풀어주시길 바라며 힘없는 소원을 올린다"라고도 했다.

실제로 지난해 6월 북한이 대북 전단 살포에 반발해 남북 간 통신선을 전면 차단한 뒤 남북 간 연락 채널이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서해 상에서 한국 국민이 북한군에 의해 사살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지 1년이 다 되도록 정부가 북한에 공동 조사를 촉구하는 것 외에 이렇다 할 후속 조치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지적도 제기된다.

유족들은 김 위원장 앞 서한 전달을 비롯해 사고해역 방문, 북측 당국자 면담, 방북 의사 타진 및 성사 시 신변 보장 등을 요구해왔다.

이래진씨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보냈다고 밝힌 서신 일부. [사진 이래진씨]

이래진씨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보냈다고 밝힌 서신 일부. [사진 이래진씨]

8일 청와대 분수광장에서 북한군에 의해 사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형 이래진씨(왼쪽)가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과 서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8일 청와대 분수광장에서 북한군에 의해 사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형 이래진씨(왼쪽)가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과 서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해경 월북프레임 급급…文, 책임 물어달라" 

한편 이씨는 이날 오후 2시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어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표한 결정문을 보고 참담하기 그지없는 심정이었다"며 "해양경찰이 월북 프레임을 씌우기에 급급해 일탈을 자행하고 부실·거짓 수사를 한 사실이 드러났으니 관련자들의 형사 책임을 물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약속했던 책임자 처벌과 수사를 즉각 이행하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고발과 강력한 대통령의 메시지가 필요하다"며 향후 수사는 해경이 아닌 검찰이나 특수수사팀에서 관장하고, 김홍희 해경청장·윤성현 해경청 수사정보국장·김태균 해경청 형사과장 등 책임자를 즉각 해임하라고 요구했다.

유족 이래진씨와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 [국회사진취재단]

유족 이래진씨와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 [국회사진취재단]

이날 회견에는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함께했다. 그는 "인권위 결정문을 보면, 해경이 악의적인 월북설을 정당화하기 위해 없는 일까지 지어내 고인을 명예 살인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며 "피가 거꾸로 솟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국민 보호 의무를 외면하는 국가나 대통령은 존재 이유가 없다"며 "문 대통령이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철저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명확히 지시하라"면서 더불어민주당의 사과를 촉구했다.

이씨의 동생은 지난해 9월 서해 북단 소연평도 해상에서 실종됐다가 북한군에 의해 사살됐다. 해경은 사건 경위에 대해 현실 도피 목적으로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발표했다. 그가 사망 전 자신의 급여는 물론 금융기관·지인 등에게 돈을 빌려 수억원 대의 인터넷 도박을 했으며, 1억원대 채무로 인해 정신적 공황 상태를 겪었다고도 했다.

이에 전날 인권위는 채무 상황 등 사생활 정보를 공개한 것은 유족의 인격권과 명예를 침해한 행위라고 판단하고, 해경청장 등 관련자들을 경고 조치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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