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어린이 안전 유의 의무 위반"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 내 교통사고의 처벌을 강화한 일명 '민식이법' 시행 이후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첫 사망 사고를 낸 50대 운전자가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불법 유턴하다 2세 남아 치어
전주지법 형사12부(부장 이영호)는 8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어린이 보호구역 치사)로 기소된 A씨(54)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또 사회봉사 40시간과 준법운전 강의 40시간도 명령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피고인이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어린이의 안전을 유의해야 하는 의무를 위반해 2세 어린이를 치어 사망하게 한 사건"이라며 "증거에 의하면 피고인의 이 사건 범행을 유죄로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몰던 A씨는 지난해 5월 21일 낮 12시 15분께 전주시 덕진구 반월동 한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 도로에서 불법 유턴을 하다 B군(사망 당시 2세)을 치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사고 장소 어린이 보호구역 맞다"
재판부는 '(사고 장소는) 어린이 보호구역에 해당하지 않고, 피고인도 이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A씨 측 주장에 대해 "(사고 장소가) 어린이 보호구역에 해당하는 사실은 증거에 의해 인정할 수 있고, 교통 관련자에게 부과된 의무는 어린이 보호구역 자체를 인식할 자체도 포함된다고 봐 피고인이 의무 위반을 한 것으로 판단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또 "죄질 자체는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발생한 사망 사건이라는 매우 중한 범죄"라며 "다만 피고인이 유족들에게 사죄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점과 법령을 위반해 처벌받은 전력이 없는 점, 유족들의 피해를 회복하고 합의해 유족들이 처벌을 원치 않는 점 등을 감안해 집행유예를 선고하기로 했다"고 했다.
"시속 20㎞ 이하로 운전하고 술 안 마셨지만…"
조사 결과 사고 당시 B군은 버스정류장 앞 갓길에 서 있다가 변을 당했다. B군 주위에 부모가 있었지만, 사고를 막지 못했다.
경찰은 사고 당시 B군 어머니가 버스가 오는 쪽을 바라보고 있었던 탓에 A씨 차량이 아들을 덮치는 것을 보지 못한 것으로 봤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블랙박스 분석 결과, 사고 당시 A씨의 차량 속도는 시속 9~18㎞였다. 경찰이 사고 직후 A씨를 상대로 음주 측정을 했지만, 혈중알코올농도는 나오지 않았다.
사고가 난 스쿨존은 왕복 4차선 도로로 평소에도 불법 유턴이 잦았던 곳으로 조사됐다. 전주시는 이곳에서 불법 유턴 차량에 아이가 숨지자 사고 이튿날 중앙분리대를 설치했다.
경찰, 구속영장 신청…법원 "다툼 여지" 기각
앞서 경찰은 사안이 중하다고 보고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맡은 전주지법 영장전담 최형철 형사2단독 부장판사는 "피의자 과실로 인한 교통사고로 피해 아동이 사망하는 중한 결과가 발생했으나 피의자가 사고 경위와 자기 과실을 인정했고, 증거가 충분히 수집됐다"며 "해당 범죄사실 성립 여부에 다툼의 여지가 있고, 피해자 측 과실 여부, 피의자의 전과와 주거·가족 관계 등을 고려할 때 구속 사유와 필요성이 없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A씨 사고는 민식이법 시행 이후 58일 만에 발생한 전국 첫 사망 사고다. 민식이법은 2019년 9월 충남 아산시 한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김민식(당시 9세)군의 사고 이후 발의된 법안으로 지난해 3월 25일 시행됐다. 운전자가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안전운전 의무 부주의로 13세 미만 어린이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3년 이상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검찰, 징역 4년 구형…"씻을 수 없는 아픔"
앞서 검찰은 지난달 1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피고인은 자신의 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깊이 반성하고 있고 피해자와도 합의했지만, 중대한 과실로 두 살배기 아동이 사망하는 너무 큰 피해가 있었던 점, 유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남긴 점 등을 고려해 징역 4년을 선고해 달라"고 했다.
이에 대해 A씨 변호인은 "사고 지점은 어린이 보호구역 표시가 돼 있지 않았고 운전자도 (어린이 보호구역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없었다"며 "피고인이 유족에게 사죄하고 합의한 점, 교통사고가 처음인 점 등 여러 제반 사정을 고려해 재판부가 이번에 한해 선처해 주길 부탁한다"고 했다. A씨는 최후진술을 통해 "죄송하고 면목이 없다. 큰 사고를 낸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운전할 때 50㎞ 이상을 달리지 못한다. 유족들에게 사죄드린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