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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20년 전 남의 땅에 쓴 산소, 그 주인이 이장 요구한다면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용우의 갑을전쟁(38)

요새는 시신을 화장하거나 납골당에 모시는 경우가 흔합니다만 과거에는 임야에 매장하고 묘를 세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공동묘지 등의 개념도 별로 없어 묘를 설치할 선산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은 주로 다른 사람의 임야에 조상의 시신을 매장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물론 막무가내로 매장하기보다는 토지 소유자로부터 허락을 받고 조상의 분묘를 설치했지만 그래도 계약서 등 근거 자료를 남겨두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이마저도 무상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지요.

그런데 시간이 흘러 개발 호재 등으로 토지 가치가 상승하면서 매각할 때나 토지와 분묘의 소유자가 바뀌면 그때야 비로소 분묘 이장을 청구하는, 굴이 분쟁이 발생합니다. 물론 수십 년, 아니 수백 년 전에 분묘가 설치된 당시 사정을 밝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럴 때 분묘의 연고자가 주장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분묘기지권의 시효 취득이었는데요. 분묘의 연고자는 20년간 분묘를 평온·공연하게 점유하였다는 사실만 입증하면 별도의 등기 없이 타인의 토지에 분묘를 사용할 수 있는 분묘기지권을 취득 시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토지 소유자는 더는 연고자에게 조상 묘를 이장하라는 굴이 청구를 할 수 없게 됩니다. 물론 평장, 암장된 경우와 같이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외형이 없는 경우에는 취득 시효가 인정될 수 없습니다(대법원 1996. 6. 14. 선고 96다14036 판결).

개발 호재 등으로 토지 가치가 상승하면서 매각할 때나 토지와 분묘의 소유자가 바뀔 때 분묘 이장을 청구하는, 굴이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사진 pxhere]

개발 호재 등으로 토지 가치가 상승하면서 매각할 때나 토지와 분묘의 소유자가 바뀔 때 분묘 이장을 청구하는, 굴이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사진 pxhere]

그런데 2000년 전부 개정된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2001년 1월 13일 후에 토지 소유자의 승낙 없이 설치한 분묘의 연고자는 더는 토지 소유자 등에게 토지사용권이나 분묘의 보존을 위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게 됐습니다. 이법 시행 후인 2001년 1월 14일부터는 타인의 토지에 설치된 묘에 대해 분묘기지권의 시효 취득을 주장할 수 없게 된 것인데요. 타인의 토지에 동의 없이 함부로 분묘를 설치할 수 없게 된 겁니다.

그러면 2001년 1월 13일 이전에 설치된 분묘의 경우엔 어떨까요. 2017년 대법원은 치열한 논의 끝에 그 전에 설치된 분묘는 여전히 20년의 시효 취득을 주장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대법원 2017. 1. 19. 선고 2013다17292 전원합의체 판결). 분묘기지권의 시효 취득이 오랜 기간 지속해온 관행 또는 관습으로 여전히 법적 규범으로 유지된다고 본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게 끝이 아닙니다. 분묘기지권의 취득 시효가 인정된다면, 지료 즉 토지의 사용료인 지료를 내야 하는지 낸다면 언제부터의 지료를 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또 발생합니다. 물론 조상 묘를 모시기 위해 남의 땅을 이용했다면 당연히 토지의 사용료를 지불하는 게 당연해 보이는데, 실제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일단 분묘를 설치할 때 무상으로 토지를 사용하기로 하는 약정이 있었다면 지료를 청구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분묘기지권을 취득한 연고자(분묘기지권자)가 분묘를 무상으로 사용하기로 한 약정이 있었다는 것은 입증해야 합니다. 타인의 토지를 사용하는 경우 점유자는 차임, 지료 등 토지 사용의 대가를 지급하기로 약정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를 증명할 자료를 남겨두는 일은 거의 없을 겁니다.

그렇다고 모두 유상으로 보고 분묘기지권자에게 분묘를 설치할 때부터 소급해 그 이후의 지료를 모두 지급하도록 한다면 어떨까요. 그러면 분묘기지권자는 토지 소유자의 지료 결정 청구에 따라 설치 이후의 지료를 일시의 지급해야 하고, 상당한 기간 내에 이를 지급하지 않으면 토지 소유자가 분묘기지권 자체의 소멸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토지 소유자가 법원에 지료 결정 청구를 해 지료 금액이 판결로 확정될 때까지는 분묘기지권자가 지료 지급을 지체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분묘기지권 소멸청구를 할 수 없습니다(대법원 1994. 12. 2. 선고 93다52297 판결 참조). 지료 금액을 결정하는 판결 확정 후 분묘기지권자가 상당한 기간(통상 2년 이상) 지료 지급을 지체해야만 토지 소유자가 비로소 분묘기지권 소멸 청구를 할 수 있습니다.

분묘의 연고자가 주장할 수 있는 분묘기지권의 취득 시효에 대한 인정여부는 상황에 따라 다양하기 때문에 잘 모르는 토지를 매수했을 경우 세심한 검토가 필요하다. [사진 pxhere]

분묘의 연고자가 주장할 수 있는 분묘기지권의 취득 시효에 대한 인정여부는 상황에 따라 다양하기 때문에 잘 모르는 토지를 매수했을 경우 세심한 검토가 필요하다. [사진 pxhere]

대법원은 과거 분묘기지권을 시효로 취득하는 경우 분묘기지권자의 지료 지급의무가 분묘기지권이 성립됨과 동시에 발생한다고 하거나(대법원 1992. 6. 26. 선고 92다13936), 분묘기지권자가 지료를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로 판단해 다소 혼선을 빚은 적도 있었습니다(대법원 1995. 2. 28. 선고 94다37912 판결).

최근 대법원은 이러한 혼선을 전원합의체 판결로 정리하고 이와 다른 대법원 판례를 변경했습니다. 4년간의 고민 끝에, ‘분묘를 평온·공연하게 점유하여 분묘기지권을 시효로 취득한 경우 분묘기지권자는 토지 소유자가 토지 사용의 대가를 청구하면 그때부터 지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대법원 2021. 4. 29 선고 2017다228007 판결). 즉 분묘기지권을 시효로 취득했다면 지료를 청구해야 비로소 지료를 받을 수 있게 되고, 지료를 청구하지 않았다면 지료를 받을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물론 이에 대해 지료를 청구하지 않아도 당연히 지료는 유상으로 발생한다거나 무상이어야 한다는 다른 의견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판결은 2001년 1월 13일 이전에 설치된 분묘에 대해서만 적용됩니다. 그 이후에 설치된 분묘에 대해서는 법상 취득 시효가 완성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2001년 1월 14일 동의 없이 설치된 분묘는 시효 취득될 수 없지만, 2001년 1월 12일 동의 없이 설치된 분묘는 시효 취득될 수 있습니다. 이때에는 20년이 지난 2021년 1월 12일에 비로소 시효가 완성됩니다. 물론 이 경우도 지료를 법원에 청구해야 비로소 그때부터의 지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과거의 것은 안됩니다. 하지만 시효 완성 전에 토지 소유자와 분묘의 연고자 사이에 굴이 분쟁이 있었다면 역시 시효 취득될 수 없습니다. 평온·공연하게 취득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2001년 1월 13일 후에 분묘를 설치했거나 토지분쟁이 있어 토지 시효 취득이 인정되지 않을 경우 통상 10년의 소멸 시효가 적용되기 때문에 역산해 10년 치의 지료 상당의 부당이득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반면 2021년 1월 12일 이후 분묘기지권의 취득시효가 완성되었다면, 청구 시점 이후의 지료만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따라서 잘 모르는 토지를 매수했다면 나도 모르는 분묘가 설치가 있는지, 분묘가 설치된 시점은 언제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분묘기지권의 취득시효가 완성되었다면 하루라도 빨리 지료를 청구해야 유리할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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