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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의 '더 모닝']'시그널 무시'가 초래한 코로나 대폭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 홍익대 인근 거리에서 7일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김부겸 국무총리. 정부는 늘 '선제적 대응'을 말하지만 결과는 언제나 '사후적 땜질'입니다. [뉴스1]

서울 홍익대 인근 거리에서 7일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김부겸 국무총리. 정부는 늘 '선제적 대응'을 말하지만 결과는 언제나 '사후적 땜질'입니다. [뉴스1]

 “6월 24일 오전 10시 나는 장도영 정보국장(대령, 훗날 육참총장)에게 ‘적의 공격이 임박한 거로 판단됩니다. 일반 참모들을 소집해 주십시오’라고 요청했다.” 2014년에 중앙일보가 연재한 김종필(JP) 전 국무총리의 증언록 ‘笑而不答(소이부답)’의 한 대목입니다. 육군본부 정보국 소속 김종필 중위는 1949년 말부터 다음 해 6월 25일에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직전까지 여러 차례 북한의 남침 징후를 보고했습니다.

그해 6월 북한군 배치 변화 등의 수상한 조짐이 있었지만 국군 수뇌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24일 JP의 요청으로 소집된 군 간부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승만 정부도 북한의 남침 가능성을 낮게 봤습니다. “저들이 쳐들어올 리 없다는 전제하에 지휘관을 교체하고, 비상경계도 풀면서 사실상 전선을 공백 상태로 만든 겁니다. 24일 밤 사단장급 지휘관들은 새로 만든 장교 구락부에 가서 파티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어진 JP의 증언입니다.

당시 상황이 기록된 옛 소련 문서에는 김일성이 6월 10일에 전쟁 준비가 됐다고 소련에 알리고 6일 뒤에 전쟁 개시 재가를 받은 것으로 나옵니다. 바로 그 6월 10일에 북한은 북에 있던 조만식 선생과 한국에서 체포된 남로당 간부 김삼룡ㆍ이주하를 교환하자고 제의했습니다. 하루 전인 6월 9일에는 남북 정당 연석회의 개최를 제안했습니다. 이런 북한의 움직임은 ‘쳐들어올 리 없다’는 믿음으로 연결됐고, 6월 중순에 국군의 3분의 1이 동시에 농번기 휴가를 갔습니다. 한국전쟁 발발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필시 병화(兵禍)가 있을 것입니다.’ 임진왜란 직전 통신사로 일본에 갔다 온 황윤길이 선조에 이렇게 보고했습니다. 선조는 함께 일본에 다녀온 김성일에게 의견을 물었고, 그는 “그러한 정상은 발견하지 못하였는데 윤길이 인심이 동요되게 하니 사의에 매우 어긋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선조는 황윤길의 말을 무시했습니다. 선조실록에 기록된 역사입니다.

모든 재앙에는 전조가 있습니다. 미국 보험회사 통계 분석사 허버트 하인리히는 대형 사고가 터지기 전에는 29회의 사전 징후가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하인리히의 법칙’입니다. JP나 황윤길 같은 눈 밝은 사람이 위험 징후를 포착합니다. 하지만 결정권자가 현명해야 그런 사람이 쓸모가 있습니다. 불편한 말 듣기 싫어하고 ‘희망적 사고’에 빠져 있으면 그저 잡음일 뿐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델타 변이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어 우리나라도 해외 유입 차단과 국내 확산 방지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지난달 24일 브리핑에서 한 말입니다. 이날 언론들은 4일 전인 20일 정부가 밝힌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 방침에 정 청장이 반대 의사를 밝히는 소신 발언을 한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상관들은 확진자 급증 사태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그 달 말까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위험을 알리는 시그널은 또 있었습니다. 네이버에 등록된 한국 언론의 기사 수를 따져 보니 6월 셋째 주(14∼20일)에 ‘델타 변이’를 언급한 기사가 1045개가 나옵니다. 그다음 주(21∼27일)에는 그 수치가 3707개로 증가합니다. 6월 20일부터 30일까지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 방침의 문제를 지적하거나 전문가들의 우려를 전하는 기사가 120개 이상 검색이 됩니다. 확진자가 줄어들지 않는 데다 변이까지 유입된 상황이라 성급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소귀에 경을 읽었어도 그 정도면 대충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을 것 같습니다.

사족 같아 보이지만,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정은경 청장이 거리두기 완화 방침에 대한 우려 또는 반대 의사를 대통령, 총리, 장관에게도 밝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를 잘 아는 몇 사람에게 물어보니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고 합니다. 성격상 대놓고 "아니 되옵니다"를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에 맞서다 해임 위기를 여러 차례 겪은 앤서니 파우치 미국 백악관 수석 의료고문이 떠오릅니다.

수도권 감염의 39%가 변이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라고 합니다. 머지않아 하루 확진자가 2000명이 넘을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옵니다. 관련 기사를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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