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독박육아가 이혼사유인데…남편이 양육권 달래요

중앙일보

입력 2021.07.08 07:00

[더,오래] 배인구의 이상가족(113)  

이혼 후 양육자가 되려면 아이를 데리고 있어야 한다는 변호사의 조언을 받고 아이를 확보한 남편. 아이 기저귀 한번 갈아주지 않았던 남편에게서 아이를 데려오기 위해 재판을 시작했다. [사진 pixabay]

이혼 후 양육자가 되려면 아이를 데리고 있어야 한다는 변호사의 조언을 받고 아이를 확보한 남편. 아이 기저귀 한번 갈아주지 않았던 남편에게서 아이를 데려오기 위해 재판을 시작했다. [사진 pixabay]

남편에게 이혼을 구하는 소장을 보냈습니다. 합의로 이혼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재판을 시작한 것은 내가 아이를 키우고 싶어서입니다. 그런데 이혼을 결심한 이유는 독박육아를 하면서 남편으로부터 받은 스트레스 때문입니다. 참 아이러니하죠. 내게는 지금 5세가 된 아들이 있는데, 육아휴직 중에는 당연히 혼자 아이를 키웠고, 복직한 후에도 독박 육아는 계속되었습니다. 아이의 기저귀 한 번 갈아주지 않았고, 아이가 어떤 분유를 먹는지도 모르던 남편이 이혼하자고 하니 아이는 놓고 나가라고 하더군요.

그때 내가 실수를 했습니다. ‘그래 어디 한 번 너도 독박육아의 고통을 맛 좀 봐라’ 하는 생각으로 친구네 집에 간 것이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혼자 끙끙 앓을 거라는 나의 기대와 달리 남편은 즉시 아이를 데리고 본가로 가버렸고, 아이를 시부모님께 맡긴 채 장거리 출퇴근을 감행했습니다. 다음날 내가 아이를 데리러 시가에 가니 시부모님은 나를 문전박대하셨고, 그 이후부터 아이를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경찰에 신고를 해보았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알았습니다. 남편은 이미 이혼을 준비하고 있었고, 이혼 후 아이의 양육자가 되려면 아이를 데리고 있어야 한다는 변호사의 조언을 받은 후 아이를 확보한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이럴 수가 있나요. 아무런 애정과 사랑 없이 아이를 대해 상처를 주더니 이제 완전히 본인의 소유물로 취급하는 남편이 어떻게 양육자가 될 수 있나요. 아이를 보기 위해, 아이를 데려오기 위해 재판을 시작하지만 아이가 보고 싶어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너무 원통해서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양육자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배인구 변호사가 답합니다
정말 어려운 문제입니다. 저는 이혼 사건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사항이 양육자를 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례자와 같은 질문은 처음이 아닙니다. 사례자의 경우와 같이 평소 육아에 전혀 관심과 애정이 없었음에도 이혼이 논의되자 양육권을 주장하면서 자녀를 서로 확보하려는 부모도 있고, 평소에도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는데, 자녀가 어린 경우 거의 엄마가 양육자가 된다면서 아이를 납치하다시피 데리고 간 후 양육권을 주장하는 부모도 있습니다. 아이를 사랑해 양육자로 지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오로지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양육자 분쟁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 상대적으로 법원이 쉽게 양육자를 정할 수 있습니다. 부모가 양육자의 자격을 경쟁하는 경우(비록 평소에 양육에 소홀했다고 하더라도), 단순히 현재 아이를 데리고 있다는 사정만으로 또는 별거 당시에 아이를 확보했다는 이유만으로 양육자로 정해도 되는지 법원도 고민이 깊겠죠. 그래서인지 소송을 할 때 양육하던 부모 일방이 아닌 상대방을 양육자로 지정하는 판결도 여러 번 보았습니다.

아이를 사랑해서 양육자로 지정되어야 함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양육자 분쟁을 하는 경우도 있다. [사진 pxhere]

아이를 사랑해서 양육자로 지정되어야 함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양육자 분쟁을 하는 경우도 있다. [사진 pxhere]

다른 한편, 네덜란드 정부는 2014년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부모 자격 재평가에 관한 정부위원회를 조직했고, 위 정부위원회가 2016년 12월 7일 ‘21세기 자녀와 부모’라는 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위원회가 본 궁극적으로 모든 아이가 누려야 할 ‘좋은 부모됨(good parenting)’의 7가지 핵심요소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무조건적인 개인적 헌신, ② 육아관계에서의 영속성, ③ 육체적인 복지를 위한 돌봄, ④ 독립적이고 사회적이고 또한 사회적 참여를 하는 사람으로의 양육, ⑤ 가족내에서 자녀의 양육을 조직화하고 모니터링, ⑥ 부모와 자녀 간의 정체성을 창출, ⑦ 다른 부모를 포함한 자녀에게 중요한 사람들과 접촉할 순간들을 확보.(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2021년 6월 발간한 가정상담 26쪽에서 인용)

위 핵심요소는 비단 네덜란드에서만 통용되는 생각은 아니겠죠. 사례자가 지금까지 독박육아를 하면서 아이에게 헌신한 사정을 열심히 소명하면 어떨까요. 재판과정이 많이 힘들고 어렵겠지만 잘 헤쳐 나가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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