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부가 제일 싫어하는 마을, 전쟁도 비껴간 첩첩산중 이곳

중앙일보

입력 2021.07.08 05:00

업데이트 2021.07.08 09:24

행복농촌②충북 단양 보발1리

충북 단양 보발1리는 소백산 북쪽 자락 마을이다. 해발 500~700m에 자리한 마을에서 소백산의 우아한 능선이 잘 보인다. 최승표 기자

충북 단양 보발1리는 소백산 북쪽 자락 마을이다. 해발 500~700m에 자리한 마을에서 소백산의 우아한 능선이 잘 보인다. 최승표 기자

충북 단양은 요즘 20~30대 여행자에게 인기다. 패러글라이딩을 즐기고 '카페 산'에서 시원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신 뒤 만천하 스카이워크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저녁에는 단양강 잔도길을 걸으며 야경을 즐긴 뒤 단양구경시장에서 마늘 닭강정을 먹는다. 그러나 이런 여행만 가능한 건 아니다. 전쟁 통에도 화를 면한 깊은 산골에 틀어박혀 푹 쉴 수도 있다. 가곡면 보발1리 같은 곳에서 말이다.

소백산 우아한 능선이 한눈에 

보발1리는 시골치고 크다. 인구는 160명에 불과하지만 7개 마을이 보발천 주변 산자락에 흩어져 있다. 멀리 떨어진 마을끼리는 2시간을 걸어가야 할 정도로 첩첩산중이다. 가장 번화한 마을은 보발본동이다. 가곡초등학교 보발분교와 마을회관이 있다. 그러나 변변한 슈퍼마켓 하나 없다. 봄, 가을에 제법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는다. 소백산 자락길 5코스가 이곳을 지나는데다 보발재, 구인사로 이어지는 길이 좋아서 산악자전거를 즐기는 사람도 많다. 소백산 자락길에서 가장 전망 좋은 곳을 찾아가 보니 국망봉~비로봉~연화봉으로 이어지는 우아한 능선이 한눈에 담겼다.

소백산 자락길 5코스가 보발1리를 지난다. 길을 걸으며 감상하는 파도 같은 산세가 일품이다. 최승표 기자

소백산 자락길 5코스가 보발1리를 지난다. 길을 걸으며 감상하는 파도 같은 산세가 일품이다. 최승표 기자

보발본동 서쪽에는 성금마을과 말금마을이 있다. 해발 500m 마을까지 올라가는 비좁은 1차선 산길은 운전하기가 쉽지 않았다. 박남진(55) 이장이 "우체부가 제일 싫어하는 마을"이라며 웃었다. 성금마을 입구에는 단양에 하나뿐인 시묘막(侍墓幕)이 있다. 돌아가신 어머니 묘 곁에 한 평 남짓한 움막을 짓고 3년을 지낸 아들 김기선씨의 효심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말금마을에는 희한한 나무가 많다. 우선 산비탈에 소나무 두 그루가 있다. 선 나무, 누운 나무다. 수령 200년에 달하는 소나무 한 그루는 우직하게 서 있고, 다른 한 그루는 옆으로 누워 있다. 100년 세월을 산 옻나무 아래서는 약수가 솟는다. 나무에서 물이 나오는 건 아니겠지만 괜히 물맛이 더 달큰하게 느껴진다.

말금마을에 있는 선 나무, 누운 나무. 수령 200년이 넘는 소나무다. 최승표 기자

말금마을에 있는 선 나무, 누운 나무. 수령 200년이 넘는 소나무다. 최승표 기자

피난민 보듬어 준 마을 

보발천을 기준으로 성금마을·말금마을 건너편에는 피화기마을이 있다. 용산봉(943m) 중턱, 해발 500~700m에 자리한 마을이어서 역시 차 몰고 올라가는 게 만만치 않다. 멀미가 날 정도로 지그재그 커브 길이 이어진다. 이렇게 산간벽지에 있으니 한국전쟁의 화(禍)도 비껴갔을 테다. 그래서 마을 이름이 피화기(避禍基)다. 실제로 이곳에 살던 화전민은 전쟁이 난지도 몰랐다 하고, 1·4 후퇴 당시 피난민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안전하게 마을에서 지낼 수 있었다고 한다.

한국전쟁의 화도 비껴간 피화기마을에는 보발1리에 흔치 않은 펜션이 있다. 최승표 기자

한국전쟁의 화도 비껴간 피화기마을에는 보발1리에 흔치 않은 펜션이 있다. 최승표 기자

피화기마을에서 볼 수 있는 너와집. 과거 화전민이 이런 집에서 살았다. 최승표 기자

피화기마을에서 볼 수 있는 너와집. 과거 화전민이 이런 집에서 살았다. 최승표 기자

편의시설이 없어 불편하지만 도리어 그 점이 매력적이다. 도시생활에 찌든 사람이 느긋하게 쉬면서 안식을 누리기 좋다. 마을 구경도 재미있다. 화전민이 생활하던 너와집, 신령스러운 엄나무가 지키는 서낭당도 남아 있다. 소백산은 안 보여도 북쪽 태화산 방향 산세가 근사하다. 마을에서 숙소를 운영하는 김은경(55)씨는 "약 5년 전 여행 왔다가 반해서 정착했다"며 "겨울에 눈이 오면 완벽하게 고립되는데 이런 곳이 국내에 드물지 않나"고 말했다.

코로나19 탓에 현재는 위축돼 있지만 보발1리 주민은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한다. 덕분에 2020년 행복농촌 콘테스트에서 문화·복지 부문 은상을 받았다. 사진 보발1리

코로나19 탓에 현재는 위축돼 있지만 보발1리 주민은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한다. 덕분에 2020년 행복농촌 콘테스트에서 문화·복지 부문 은상을 받았다. 사진 보발1리

보발1리는 2016년부터 농림축산식품부, 충청북도가 주관한 공모전에서 여러 차례 상을 받았다. 단지 천혜의 자연 속에 마을이 들어앉아서는 아니다. 주민이 힘을 합쳐 경관을 가꾸고, 사진·풍물 등 동아리 활동도 하며 마을에 활기가 돌도록 했기 때문이다. 박남진 이장은 "코로나 때문에 모임이 위축됐지만 지금도 서로 농사일은 많이 돕는다"며 "최근 부쩍 늘어난 귀농·귀촌인도 원주민과 잘 어울려 지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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